건국이념과 헌법정신을 기려야 할 날에 국민이 양쪽으로 갈라진 현실은 70년 전 광복 직후 3·1절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당시 이념으로 좌익과 우익이 갈려 기념식을 따로 개최할 만큼 심한 대립을 보였는데 비슷한 모습이 재현되는 것을 목격하며 국민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몰아간 최초 원인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있지만 탄핵 정국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어제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은 촛불 집회에, 여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태극기 집회에 각각 참석했다. 문 전 대표는 촛불을 3·1운동에 비유하는 등 자극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헌재 최후 변론이 끝난 만큼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 군중을 선동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지금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경제와 외교·안보 등 전 분야에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헌재 탄핵 심판 이후 혼란은 더 극심해질 수 있다. 이럴 때 정치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여야 정당과 대선 주자들은 대부분 헌재 결정에 승복할 것이라고 천명했는데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지지 세력에 촛불과 태극기 집회를 중단하고 자중할 것을 호소하는 용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국론 분열을 막고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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