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사설] 3·1절에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1절 98주년을 맞은 어제 광장에서 펼쳐진 장면을 보는 심경은 착잡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그룹이 극명하게 나뉘어 시위를 벌이는 광경은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는 오후 2시부터 광화문광장 남쪽 세종대로사거리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고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방면으로 행진하며 탄핵 반대 구호를 외쳤다. 3시간 격차를 두고 탄핵을 촉구하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도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진행한 뒤 청와대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시위를 벌였다. 양측의 행사 시간대와 행진 경로가 다르고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 1만6000여 명이 투입됐지만 자칫 심각한 충돌 위험도 있었다.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을 기려야 할 날에 국민이 양쪽으로 갈라진 현실은 70년 전 광복 직후 3·1절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당시 이념으로 좌익과 우익이 갈려 기념식을 따로 개최할 만큼 심한 대립을 보였는데 비슷한 모습이 재현되는 것을 목격하며 국민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몰아간 최초 원인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있지만 탄핵 정국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어제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은 촛불 집회에, 여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태극기 집회에 각각 참석했다. 문 전 대표는 촛불을 3·1운동에 비유하는 등 자극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헌재 최후 변론이 끝난 만큼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 군중을 선동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지금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경제와 외교·안보 등 전 분야에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헌재 탄핵 심판 이후 혼란은 더 극심해질 수 있다. 이럴 때 정치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여야 정당과 대선 주자들은 대부분 헌재 결정에 승복할 것이라고 천명했는데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지지 세력에 촛불과 태극기 집회를 중단하고 자중할 것을 호소하는 용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국론 분열을 막고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