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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세계포럼] 후회하지 않을 대한민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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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 아쉬운 순간들

만일 다른 선택했더라면…

촛불·태극기 세력 충돌상황

대통령 결단 등 해법 모색해야

누구에게나 다시 쓰고 싶은 과거 장면들이 있다.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때로 고통스러워 잊고 싶은 순간도 있다. 다시 선택한다면 다른 장면을 연출할 것 같기도 하다. 개인뿐이 아니다. 집단에도 마찬가지로 선택을 돌이키고 싶은 국면들이 있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시계를 4개월 넘게 멈추게 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야말로 그렇다. 복기해 보면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을 때 정권은 본질을 외면한 채 박근혜 대통령이 규정한 ‘국기 문란’을 단죄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비선실세 실상을 파헤쳤더라면 작금의 대혼란은 피했을 것이다.

세계일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임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 불통하면서 우 전 수석과만 소통한다는 비판에 귀 닫은 채 그를 감싸고만 돌았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언론 취재 과정에서 최씨와 미르재단 이름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니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검찰은 왜 미르·K스포츠재단 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을까. 그렇게 시작한 수사팀을 4명에서 15, 22, 32명으로 계속 늘리지 않았는가. 임명권자인 대통령 수사라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면 김수남 검찰총장은 특검 도입을 자청하는 게 나았다.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불발은 엉뚱하게 야당 간 책임공방으로 번졌다. ‘선 총리교체, 후 탄핵’이 이뤄졌더라면 특검팀 활약상을 더 지켜볼 수 있었을까. ‘김병준 총리 카드’를 받아들였다면 탄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나간 일들이다. 만일이라는 가정은 소용없다. 그래도 어떤 과거이든지 오늘을 있게 한 밑거름이다. 오늘의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최상의 선택을 하려고 매순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날지 모르는 상황일진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어제 서울 도심에서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그들 손에 들린 태극기는 저마다 의미가 극명하게 갈렸다. 98년 전 대한독립을 외치며 함께 흔들던 태극기가 분열의 상징이 된 것이다. 조만간 대한민국호에 닥쳐올 거대한 풍파를 예고한다. 10일쯤 후 나올 헌재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을 탄핵 찬반 어느 쪽도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 “기각되면 혁명”이라는 구호는 섬뜩하기만 하다. 이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갈지, 난파선으로 표류할지 앞으로 선택에 달렸다.

불신의 사회라지만 모든 걸 의심의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헌재가 인용 결정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거부한 채 ‘삼성동 칩거정치’를 펴며 보수세력 결집을 꾀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박 대통령은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국민 80%가 탄핵을 찬성하는 상황이니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법의 실마리를 먼저 푸는 건 어떨까. 헌재 결정 전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3차 대국민 담화 때 각오라면 스스로 결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 결단이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무거운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헌재는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을 강행할지, 아니면 각하할지 고민해야 한다. 특검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은 대통령을 강제수사할지, 대선 후로 늦출지 기로에 선다. 정치권과 여론은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야 할지,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뜨겁게 논쟁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주자들이야말로 난제 중의 난제를 떠안게 된다.

어제 목격했듯 ‘촛불열차’와 ‘태극기열차’가 마주보며 질주하고 있다. 이러다간 나라가 두쪽 날 판이다. 박 대통령이 그끄저께 헌재 최종변론에 낸 의견서에서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나가겠다고 한 대목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까.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대한민국 전체가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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