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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공감!문화재] 금처럼 귀한 금(錦)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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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머리카락 같아요!’

시커먼 유물 사진을 보며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이다. 머리카락처럼 시커먼 사진의 정체는 국보 제11호 백제 미륵사지석탑 사리공에서 출토된 금직물(사진)이다. 무려 1400년 정도 된 셈이라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직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금강, 금산, 금수산의 지명은 비단처럼 곱다 하여 ‘비단 금’(錦)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다. 중국 한나라 사람 유희가 지은 ‘석명’(釋名)에는 금(錦)은 金과 帛이 합쳐진 글자로, 금직물은 제직하는 데 너무 힘이 들어 금과 같은 값어치를 지닌 비단이라고 전한다.

고대의 금(錦)직물은 경사(날실)나 위사(씨실)에 두 가지 이상의 색실을 사용하여 다채로운 무늬를 짠 비교적 두툼한 고급 견직물의 한 종류이다. 염료가 귀하던 시절에 선명하게 염색한 색실은 자체만으로도 화려했으며, 경사나 위사에 한올의 실을 엮어 짜는 것도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수백 가닥의 색실을 번갈아 가며 문양을 짰으니 아마도 당시의 최고급 손기술이었음에 분명하다. 오죽하면 금처럼 귀하다 하여 금직물이라 불렀을까.

미륵사지 금직물은 경사 방향에 색실을 더해 문양을 짰기 때문에 경금직물이라 하며, 흑색 바탕에 적자색과 황색 실로 파선이 대칭을 이루는 테두리 문양을 갖추고 있다. 안타깝게도 1400년의 장고한 시간만큼 딱딱하게 굳어 있어 테두리 안쪽에 그려진 문양은 알 수 없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그저 새까맣게 보이는 한낱 직물 조각이지만, 금직물에 대한 제직기술과 문양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는 신라를 거쳐 일본까지, 서쪽으로는 소그드,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이집트 콥트 직물까지 연결되는 당시에는 가장 ‘핫한 아이템’이었다. 우리는 바로 미륵사지 금직물을 통해 백제가 실크로드의 한 갈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안보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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