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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자칼럼]‘4대강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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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아들이 자기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아들을 심하게 탓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빵집 주인이 새 유리를 사면 유리창 수리 업자는 돈을 벌게 된다. 수리업자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곳에서 소득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빵집 아들은 마을의 소득과 고용창출에 기여했다. 그러니 창을 깬 것은 마을경제로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경향신문

빵집 주인은 신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리창을 사느라 신을 사지 못했다. 아들이 유리창을 깬 것은 빵집 주인의 지출 방향만 바꾸었을 뿐 새로운 소득을 창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신발장수는 신발을 팔지 못했으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라고 명명된 유명한 경제학의 우화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1850년에 쓴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나오는 얘기다.

아직도 4대강 사업이 좋은 사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 당시 고용이 창출됐다거나, 백제보를 통해 가뭄이 심각한 충남 보령댐에 물을 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바스티아는 이런 사람들을 ‘사이비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강 정비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정비가 필요한 강에는 그 수요에 맞게 돈을 썼으면 됐다. 10분의 1인 2조원 정도였다면 차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말이 쉬워서 1조원이지, 1조원은 작은돈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하루 3000만원씩 쓴다고 해도 무려 100년간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런 돈 22조원을 강바닥에 썼다. 그것도 국채를 발행해 빚까지 내서 말이다. 그 돈은 시급히 써야 할 데가 많았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간부는 “김대중 정부 때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47조원을 썼고, 그 덕에 IT강국이 됐다”며 “4대강 대신 신성장동력에 과감하게 투자했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 그까짓 것 한번 질펀한 돈잔치를 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2012년 이후 유지비로 매년 5000억원씩, 이미 2조5000억원을 더 썼다. 수자원공사가 빌린 8조원의 이자, 생태하천 등 4대강 사업 구간 관리, 준설토 관리 등을 합친 액수다. 예정에 없던 새 계산서도 제출됐다. 녹조 관리다. 거기다 향후 지출이 확정된 비용 등을 모두 따지면 전체 사업비는 30조원에 이를 수 있다. 차라리 보를 부수고 물길을 터주자고 애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안된다고 한다. 이미 쓴 돈이 얼마냐는 것이다. 이면에는 4대강 사업 실패를 인정할 수 없는 자존심도 있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는 경제성이 없었다. 연료소모량은 많고 탑승인원은 적었다. 하지만 콩코드를 만든 영국과 프랑스는 운항을 중단하지 못했다. 콩코드는 양국의 자존심이었다. 개발에 많은 자금도 투자됐다. 2003년 콩코드는 운항 27년 만에 중단을 선언했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콩코드의 오류’라 부른다. 매몰비용(이미 쓴 비용)에 집착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콩코드의 오류’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4대강 사업은 새 경제용어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깨진 유리창과 콩코드, 두 오류를 합친 ‘4대강의 오류’라고 말이다. 4대강 사업은 시작도 잘못됐고, 끝도 잘못되고 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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