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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임의진의 시골편지]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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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마마한 강아지가 배를 내놓고 누워서 드르렁 콧노래. 불황과 탄핵정국으로 사람 세상은 어디서나 피죽바람인데 개 팔자가 상팔자, 조금씩 약이 오를 정도다. 동네에 청소차가 건전가요를 틀어놓고 달려오면 그때서야 부스스 일어난다. 이름에도 아예 잠이 들어 있는 프란시스 잠, 자연생활을 예찬한 예이츠 같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요새 주워들었다. 하나같이 밍밍하고 나른한 낮잠을 몰고오지. 우리 대중가요는 걸그룹 일색이고 영어 가사도 절반쯤. 해외 팬들 땜에 그러는가. 어려워서 못 따라 부르겠는데 중·고딩 친구들은 대단해. 인디음악은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시상 트로피를 팔아 월세를 내야 한다니 원. 대중가요 가사들은 대부분 러브스토리. 가끔 진지한 고민이 담긴 가사와 멜로디 좋은 노래들이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요새 뜨는 노래는 역시 건전가요. 고생이 많으신 태극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 ‘좋아졌네’ ‘잘살아보세’ 이런 노래들, 징그럽게 가난하던 시절 건전가요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사전에 의하면, 국가의 음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관변단체의 주도하에 창작되어 불린 노래. “이리 보아도 좋아졌고 저리 보아도 좋아졌네.” 급기야 이 세대는 박정희 작사·작곡 ‘나의 조국’을 애국가만큼 따라 부르게 되는데,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에 새 역사 창조하여…” 노래인지 염불인지 마하반야 바라밀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5공 시절과 맞물려 건전가요 축에 진입. 최근엔 박사모에서 민중가요 가수 안치환의 히트곡 ‘위하여’를 느닷없이 합창. 이 노래는 정체를 모르고 따라서 부른 케이스다. 여하튼 국민화합에 일조한 노래가 되었구나. 나는 불건전 가요를 좋아하는 불건전 인간인가. 노래방 가서 찬송가 찾는 재수 없는 목사가 아니어서 업계에 죄송하다. 그런데 노래방은 수천만년 된 거 같다. 누가 좀 델꼬가줘잉. 국민이 승리하는 날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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