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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경향의 눈]호모 프롤레타리아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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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기계와의 경쟁은 숙명일지 모른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SF 고전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 원숭이와 닮은 인류는 사냥도구로 사용하던 뼈다귀를 하늘을 향해 던진다. 이것은 곧 우주선으로 바뀐다. 영화는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인 ‘호모 하빌리스’가 진화해온 200만년이 넘는 시간을 단 몇 분으로 놀랍게 압축시켰다. 영화가 그린 상상 속의 섬뜩한 기계문명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경향신문

도구를 만드는 인간이 쟁기나 낫을 만들던 원시 단계에서 벗어나 공장제 생산능력을 갖춘 것은 채 300년도 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공장은 1771년 잉글랜드 크롬퍼드에 세워졌다. 그 공장에서는 면직물에서 나오는 먼지를 뒤집어쓴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노동을 했다. 그들은 성인 남성들이 조작하는 기계 앞에서 하루 13시간 동안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일했다.

방직업과 양모공장에서 기계 사용이 늘어나면서 직공들은 일자리를 빼앗겼고 임금도 하락했다. 이들 직공과 하급노동자는 기계만 부수면 종래의 좋은 노동조건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계파괴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산업자본가와 정부의 가혹한 탄압으로 이들은 무참히 진압되고 말았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에 의해 쫓겨나는 처지를 면치 못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전신, 증기기관, 인쇄술, 제철, 중공업 등 인간에게 의존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힘센 손과 경험 많은 두뇌를 필요로 했다. 자동화가 기술을 앞지르지 못하면서 숙련된 노동자들은 공장을 운영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대우받았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와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도입돼 생산성을 높였으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필수적인 생산요소였다.

그러나 ‘생각하는 기계’가 현실화하면서 일자리는 새로운 위협에 놓였다. 지금 제조업에서 조선과 해운 부문의 감원태풍이 불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과당경쟁의 결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돼오던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의 출현은 현대중공업의 일자리 감소와는 차원이 다른 일자리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달리 현대기아차는 아직 일자리의 안전지대로 남아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시장 8500만대 가운데 788만대를 팔았다. 세계 자동차업계 5위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안전지대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자동차는 전자제품으로 변하고 있다. 검색업체인 구글이나 네이버 등 자동차와 무관하게 보였던 업체들도 뛰어들고 있다. 반자율 자동차가 이미 선을 보였고 자율자동차 운행은 머지않았다. 자동차 기술의 총아라 할 수 있는 내연기관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공유경제가 발달하면 자동차는 ‘껌값’이 될 수도 있다. 제조·개발 인력의 일자리는 안전하지 않다. 그것은 어느 순간 ‘훅’ 하고 올 것이다.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미국의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은 시애틀에 신개념의 식료품매장인 아마존고를 열었다. 외형상으로는 일반 식료품매장과 다를 바 없지만 운영은 지금껏 지구상에 없던 시스템이다. 고객이 상품을 카트에 담은 뒤 문을 나서면 컴퓨터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등록되며 비용은 신용카드에서 자동 결제된다. 매장에는 계산대도 계산원도 없다. 일반 대형마트는 80~90명이 필요하지만 이곳에서 필요한 직원은 6명이 전부다. 이 시스템으로 미국 내 식료품이나 소매 매장에서 350만명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열린 다보스포럼은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15개국에서 500여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장 위험한 일자리는 화이트칼라이며 사무행정직의 3분의 1이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기계는 단순히 인간의 팔다리가 돼 노동을 대신 하는 노동기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능을 초월해 스스로 진화해 가는 기점(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이 오면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인공지능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고 사람은 더 이상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기계의 발달은 끊임없이 인간의 빈자리를 채워왔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자리마저 넘보고 있다. 기계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됐고, 노동계급에는 해고통지서가 발부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의 말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거의 노동자가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는 안갯속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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