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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여적]흡연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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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가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적이 있다. 경기침체로 생업인 원고 집필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담배가 창작의 유일한 벗인데 인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소설가 오상순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뱃불을 댕겨 세수할 때나, 식사할 때나 쉬지 않고 담배연기를 입에 달고 다녔다. 하루 20갑 정도를 피웠다고 한다. 그는 ‘선운’이라는 호를 버리고 담배꽁초에서 딴 ‘공초’를 택했다. 그는 ‘나와 담배’라는 시에서 “나와 담배는/ 이음 동곡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라고 예찬했다. 또 소설가 김동인은 “백리가 있고도 일해가 발견되지 않는 것이 담배”라며 담배를 멀리하는 사람을 “가련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더울 때는 양미를 주고, 추울 때는 온미를 주며, 우중에 연초 연기는 시인에게 시를 줄 것이며, 암중 연초는 공상가에게 천리를 줄 것”이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오상순과 김동인이 찬미하던 담배는 ‘백해무익’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정부의 흡연 규제도 강해지고 있다. 금연지역은 서울 전역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한다. PC방, 식당, 지하철역, 공공기관, 아파트 등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흡연이 가능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당국이 설치한 흡연부스는 몇 개 되지 않으며 그것도 불결한 ‘너구리굴’이거나, 좌우가 뚫려 ‘무늬만 흡연부스’다. 흡연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뒷골목을 찾아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워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흡연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설 땅이 좁아진 흡연자들이 스모킹카페로 모여들고 있다. 흡연카페가 영업이 가능한 것은 흡연이 금지된 일반음식점이 아니라 자판기영업으로 등록해 법망을 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흡연카페를 금연 사각지대로 간주, 금연시설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정부가 지난해 흡연자들로부터 걷은 담배세수는 12조5000억원에 이른다. 흡연자의 ‘흡연시설 확충과 흡연권 보장 요구’가 부당하지만은 않다. 흡연자들은 충분히 세금을 냈다. 이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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