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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세계는지금] 7억9500만명 굶주림 고통 …동시다발 기근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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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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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지금 비극에 직면해 있다. 대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와 예멘, 남수단, 소말리아 4개국이 극심한 기아로 고통 받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한 것이다.

지구촌이 전례 없는 기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엔 관계자와 각국 외교관들은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근이 발생한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일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해 전 세계 인구 9명 중 1명에 해당하는 7억9500만여명이 굶주리고, 이 중 33%가량은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의 절반 이상이 영양결핍 탓인 것으로 나타났다.

◆16개 개도국 인구 4명 중 1명 이상이 영양결핍

WFP가 2015년 발간한 ‘2014∼2016년 기근 지도’(Hunger Map)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잠비아·나미비아·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북미의 아이티, 북한 등 5곳은 영양실조 인구가 전체의 35%를 차지해 ‘(영양결핍) 매우 높음’으로 분류됐다. 또 이들 국가는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가 2년 동안 1~53% 증가하는 등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국민이 전체 인구의 25% 이상∼35% 미만을 차지하는 ‘(영양결핍) 높음’ 국가는 차드 등 11곳에 달했다. 기근 지도에서 ‘높음’과 ‘매우 높음’에 해당하는 16개국을 살펴보면 아프리카 12개국, 아시아 3곳, 중앙아메리카 1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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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현재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의 남수단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남수단 정부와 유엔은 남수단 북부 2개 지역에 ‘기근’(famine)을 선포했다. ‘기근’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의 최고 단계인 5단계에 해당한다. 유엔은 특정 지역에서 전체 가구의 20% 이상이 극심한 식량 부족을 겪고, 영양실조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으며, 하루 기준 인구 1만명당 2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경우 해당 지역에 ‘기근’을 선포한다. 남수단의 기근 선포는 2011년 소말리아 이후 6년 만이다. 남수단 국가통계국장은 “남수단 인구의 40%에 달하는 490만명이 긴급 식량과 영양 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별도의 조치가 없을 경우 오는 7월쯤에는 550만명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예멘, 소말리아 국민도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현재 나이지리아 510만명, 예멘 1412만명, 소말리아 620만명이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비 랜저 OCHA 사헬지역 조정관은 “(영양실조를 겪는) 이들은 거의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곧 찾아올 우기도 또 다른 걱정”이라며 “극심한 허기에 시달린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 견디지 못하고 쉽게 죽는다”고 덧붙였다.

◆기근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전쟁’이 주요인

국제구호단체들은 이들이 겪는 기근이 대부분 전쟁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가뭄이 들이닥친 소말리아나 허리케인 ‘매슈’로 피해를 본 아이티처럼 자연재해로 식량난을 겪는 사례가 드물게 보고되지만 대부분 빈곤이 심한 국가들은 최근 몇 년간 치열한 내전으로 삶의 터전이 파괴된 경우가 많다. 조제 그라지아누 다 시우바 FAO 사무총장과 어서린 커즌 WFP 사무총장 역시 “분쟁은 기아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작물, 가축, 농업 인프라를 파괴하고 시장을 혼란에 빠뜨려 식량안보에 큰 위협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에서는 2013년 12월부터 살바 키르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세력 간 내전이 발생해 현재까지 30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세르주 티소 FAO 남수단 대표는 “심지어 농기구까지 전쟁 중에 모두 소실돼 식량 생산 시스템이 완전히 황폐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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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병이 양손에 자동소총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나비날개를 맨 모습이 분쟁현장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시장의 동화(FMFT) 제공


예멘도 3년째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수니파 정부와 시아파 반군의 내전이 본격화하면서 1만여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이 집과 농장 등 생활 터전을 잃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달 유엔 안보리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부터 10분마다 예멘의 5세 이하 아동 1명이 사망하고 있다”며 “영양실조 아동이 전체 64%로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지역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경우다. 2002년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한 보코하람은 2009년부터 이슬람 신정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표로 곳곳에서 무력투쟁을 벌였다. 최근 8년간 보코하람에 희생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은 180만여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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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구역 지정·선제적 대응 등 다양한 방식 필요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금모금과 같은 단순한 방법보다는 분쟁종식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개입 등 종합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국제 시민단체 월드헝거에 따르면 분쟁을 일으키는 단체는 해당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의로 식량과 물을 오염시키고 시장에 나오는 상품의 수를 제한한다. 국제기구나 구호단체를 통한 각종 지원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따라 기근 조짐이 보이는 지역을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일단 ‘안전구역’으로 만든 뒤 서서히 식량 원조 범위를 넓혀가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호단체 옥스팜의 마크 골드링 대표는 “현장에서는 구호단원들이 식량을 가지고 가더라도 안전 문제 때문에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에티오피아의 경우 1985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국제사회와 지방정부가 합심해 안전을 확보하면서 사정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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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민병대 소년병이 양손에 자동소총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나비날개를 맨 모습이 분쟁현장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시장의 동화(FMFT) 제공


아울러 기근이 예상되는 지역을 미리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2014년 발간된 유니세프 - 월드 프로그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보이는 지역을 미리 파악해 자금을 투입할 경우 전체 구호 비용을 절반 정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라 판툴리아노 국제개발연구소(ODI) 연구원은 “현재 발생하는 위기 지역의 80%는 예측가능했다”며 “지속적으로 구호기금은 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체식량 개발 등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농작 기술을 이전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국제지원기구들은 옥수수와 콩 가루를 혼합해 영양 성분을 강화한 ‘슈퍼 시리얼’이나 영유아의 영양실조를 막기 위해 조리 없이 바로 섭취할 수 있는 이유식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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