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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신발은 1년전 구입한 등산화만 신어요"…40대 가장 한숨(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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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배 끊은 것은 건강 아닌 돈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옷 산 게 언제였는지"…소비부진 심각

(서울=연합뉴스) 유통팀 = "옷은 마지막으로 산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고 신발은 1년 전에 산 등산화만 신고 있어요."

서울에서 4살짜리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4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 자신에 대한 소비를 확 줄였다.

김씨는 "아이 두 명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빚까지 냈다"며 "조금이라도 더 아껴보려고 최근엔 담배까지 끊었다"고 말했다.

많은 직장인이 김 씨처럼 생활비 부족으로, 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지출을 크게 줄이고 있다.

이렇게 소비를 꺼리는 행위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이는 소득악화를 초래해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 냉장고 파먹고, 외식 줄이고, 골프 끊고…눈물겨운 '긴축'

직장인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4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냉장고 파먹기'를 한다.

냉장고 파먹기란 새로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속에 방치된 남은 음식이나 식재료로 요리해 먹는 것을 말한다.

박 씨는 "마트에서 장을 보면 한 번에 20만 원 이상 드는데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 그만큼 아낄 수 있다"며 "냉장고를 뒤져서 있는지도 몰랐던 재료가 나오면 무엇을 해먹을지 하나씩 적고 실천한다"고 말했다.

박 씨의 '긴축 재정'은 몇 년 전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더 심해졌다.

박 씨는 "대부분의 지출은 9살 아들 사교육비이고, 나는 5년 전에 산 외투 한 벌로 이번 겨울을 버텼을 정도로 소비는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혼자 거주하는 직장인 윤 모 씨는 이번 겨울에 백화점에는 아예 가지 않고 저렴한 SPA(제조·유통 일괄형)브랜드에서 꼭 필요한 옷만 샀다.

윤씨는 "과거에는 저녁도 밖에서 사 먹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집에서 해먹거나 퇴근길 백화점 식품관에서 할인 판매하는 것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사는 직장인 이 모(39) 씨의 경우 최근에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 이자 부담 때문에 외식비를 크게 줄였다.

이 씨는 "외식을 1주일에 3~4번에서 1번 정도로 줄였다"며 "4인 가족이 외식 한번 하면 10만 원인데 집에서 해먹으면 2만~3만 원으로 크게 절약된다"고 말했다.

자가용을 없애거나 취미생활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직장인 한 모 씨는 "작년 말에 차를 팔고 새로 사려고 보니 차량 가격 수천만 원에다 유류비까지 생각하니 너무 아깝다"며 "차가 없어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이 훨씬 경제적이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직장인 이 모 씨는 "아이가 생겨 지출이 급격하게 늘었다"며 "미래를 대비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 취미로 하던 골프를 끊었다"고 아쉬워했다.

연합뉴스

한산한 백화점[연합뉴스 자료사진]



◇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 소비 감소로

젊은 시절 노후 대비에 소홀했거나, 노후 대비를 서둘러야 하는 70대 이상, 50~60대의 소비 위축은 더 심각하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거주하는 정 모(73·여) 씨의 현재 수입은 두 아들로부터 받는 용돈 150만 원이 전부다.

짧은 직장 생활 후 결혼과 함께 20대에 이미 퇴직해 생활을 남편 월급에 의존하다 10여 년 전 역시 국민연금 미가입자인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자, 사실상 정 씨의 수입은 '제로'가 됐다.

국민연금 가입은 자신과 무관한 일인 줄만 알았고, 이후 국민연금 지역 가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실행에 옮길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거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서울의 30평 작은 아파트와 고향의 땅은 두 아들을 결혼시킬 때 팔거나 담보로 잡혔기 때문에 수입에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임플란트 등 큰 의료비는 자녀들이 부담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손자 군것질거리 등을 조금씩 장 보고, 친구 모임에 나가 차나 식사를 함께 하며, 감기 등의 잔병 치료를 받는 지출만으로도 150만 원은 금방 소진된다.

따라서 정 씨는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다리가 불편해도 웬만해서는 택시를 타지 않고, 새 옷을 사는 일도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직장인 김 모(53) 씨는 최근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등록금으로 수백만 원을 썼다.

소득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 아들 등록금 등 돈 쓸 일이 많아지자, 김씨는 외식과 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지는 1년이 넘었고 영화를 보면 항상 하곤 했던 외식도 남의 일이 됐다.

김씨는 "은퇴가 가까워져 오니 슬슬 노후가 걱정되기는 하는 데, 목돈 쓸 일은 더 많아져 사소한 것부터 아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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