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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고로 몸 마비된 이탈리아 남성, 스위스서 '조력 자살'로 생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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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이 최후를 정할 자유 달라" 안락사 논쟁 촉발

“파비아노는 사랑에 둘러싸인 남자였고 여자친구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과 늘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매우 아팠고 그런 조건에선 더는 살 수 없었습니다. 한 시간 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해외로 나와야 했던 것은 슬픈 일입니다.”

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40세 이탈리아 남성이 ‘조력 자살'이 허용된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2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DJ 파보'로 불리는파비아노 안토니아노가 스위스 한 병원에서 여자친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음악 DJ를 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던 그는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눈까지 먼 상태에서 누워만 지내야 했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이탈리아에서 그는 세르지오 마티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지난달 편지를 보냈다.

”적어도 고통 없이 죽는 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최후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안락사법이 제정되기를 호소했다.

지난 주말 해당 법률안에 대한 토론이 세 번째 연기되자 파비아노는 이탈리아를 떠나 지난 25일 스위스를 찾았다. 스위스까지 그를 동행한 이탈리아 전 국회의원이자 존엄사 활동가인 마르코 카파토는 페이스북에 파보의 운명 사실을 전했다. 파비아노의 여자친구도 마지막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자 추모 메시지가 올라왔다.

조력 자살은 안락사와는 다르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료진 등이 생명을 끊음으로써 환자를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연장 치료가 의미가 없을 경우 영양 공급이나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조치다. 조력자살은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환자가 가족 등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 조력 자살이 허용된 나라는 스위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있다. 외국인에게까지 조력 자살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가 유일하다.

국내에선 연명 치료 중단이라는 아주 국한된 소극적 안락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현행 법률에는 안락사 자체가 불법이지만 의학전문매체 비온뒤에 따르면 스위스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옹호단체인 디그니타스에 2012년 이후 한국인 18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있다.

파비아노의 죽음을 놓고 가톨릭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인구 노령화에 따라 가족과 함께 마지막 생을 품위 있게 마감하는 데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국내에서도 안락사 허용 범위에 대한 의료계 안팎이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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