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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상톡톡 플러스] 한국에선 양보하면 '손해'? 베풀면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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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인격을 짓밟는 저급한 행태부터 고쳐야 한다. 남은 무시해도 되는데 자신이 무시당하는 건 참지 못하는 이들이 적잖다.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게 똑똑한 것이고, 그게 통하는 한국 사회는 이젠 바꿔야 한다.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20대 취업준비생 A씨)

"수입차를 타고 다니면 보복운전도 안 당하고, 뒷차량은 경적도 안 울린다. 하지만 경차를 몰고 다니면 경적은 물론 욕설, 보복운전 등 엄청난 무시를 당한다. 전형적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다."(30대 직장인 B씨)

"한국인이 멸시를 참지 못하는 것은 사회체제나 교육은 공통체주의를 강조하는 데 비해 실제 사회는 개인주의화됐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존중받고, 자신의 인생을 살길 바라는데 실제는 그러지 못하니 타인을 쉽게 멸시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못 견뎌 하는 것이다."(40대 자영업자 C씨)

세계일보

깊어진 경기불황으로 사회가 점차 각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멸시당하거나 손해보면서는 못 산다'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에서 비롯된 현상이며, 거리낌없이 상대에게 멸시를 주는 문화의 풍토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2월부터 90일간 난폭·보복운전자를 집중 단속·수사한 결과 732명을 적발했다. 보복운전자들의 과반(167명·55.7%)이 상대 차량의 진로변경과 끼어들기 때문에 앙갚음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경적과 상향등(27.3%·42명)과 서행운전(10.3%·31명)도 보복을 부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한 보복운전 형태는 고의적인 급제동(42.3%·12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밀어붙이기(21%·63명)나 폭행 및 욕설(13.3%·40명) 등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행동에 나서기 전 한번만 숨 고르기를 했다면 참을 수 있는 일인데도, 결국 분노가 난폭·보복운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쌓이고 쌓인 분노, 난폭운전으로 이어져

이처럼 화를 누르지 못한 범행은 운전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한 50대 남성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전북 전주지법은 지난해 3월 주민이 자신을 비난하자 마을 공동우물에 살충제를 넣은 혐의(음용수 유해물 혼입)로 기소된 D(54)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주민과 사이가 좋지 않던 D씨는 2015년 9월18일 오후 8시쯤 전북 임실군 한 마을의 우물에 다량의 살충제를 부어 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세계일보

평소와 다르게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자 이를 의아하게 여긴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D씨는 “한 주민이 마치 내가 봉지 커피를 훔쳐간 것처럼 말해 홧김에 공동우물에 살충제를 풀었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소한 다툼에 그동안 쌓인 분노와 울분이 터져 나와 범행으로 이어진 사례이다.

◆개인주의 심화, 과잉 경쟁…타인 멸시 풍토 개선해야

이 같은 범죄는 공동체주의 약화와 개인주의 심화, 성과 중심의 과도한 경쟁 등이 반영된 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충족되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입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억눌렸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범죄로까지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실제 각종 폭력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를 조사해보면 '상대가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순간 화가 치솟아 앙갚음하고 싶었다'고 진술하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경찰 측은 전했다.

세계일보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체면을 중시하면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유독 참지 못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울러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불만의 근원은 사회적인 불평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도록 '분배의 틀'을 다시 만들고, 부(富)와 권력의 차이를 절대화해 남을 쉽게 멸시하는 기존 문화의 풍토를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주문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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