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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일제 강점으로 사라진 조선의 '국새'…29점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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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도난 사실 공개…소재 확인된 국새는 7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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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금보]
고궁박물관이 소장 관리하고 있는 태조금보. 2011.01.11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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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난 사실이 공개된 '조선왕보'(朝鮮王寶)의 이미지. 거북이 모양이며, 은으로 만든 뒤 도금했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옛 국새(國璽)와 보새(寶璽)를 총독부에 인계했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하고 약 6개월이 흐른 뒤인 1911년 3월 3일, 일제가 국새를 빼앗았다. 국새는 왕이나 황제가 사용한 도장이자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식. 당시 일본의 차관인 고미야 사보마쓰(小宮三保松)가 총독부에 넘긴 국새는 공식적으로는 6점이다.

구체적으로는 '대한국새'(大韓國璽) 1점, '황제지보'(皇帝之寶) 1점, '대원수보'(大元帥寶) 1점, '제고지보'(制誥之寶) 1점, '칙명지보'(勅命之寶) 2점이다. 이 가운데 '대원수보', '제고지보', '칙명지보' 중 1점은 해방 직후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아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하고 있으나, 나머지 3점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문화재청은 일제가 약탈한 사실이 명확한 국새 3점을 포함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국새 29점을 최근 도난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28일 밝혔다.

도난당한 국새는 '조선왕보'(朝鮮王寶)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 '위정이덕'(爲政以德) 등 조선시대 국새 10점을 비롯해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와 '명덕지보'(命德之寶) 등 개화기 국새 11점, '대한국새'와 '황제지새'(皇帝之璽) 등 대한제국 국새 8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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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황제지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새가 원래 소장처에서 사라진 문화재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 향후 소재가 파악되면 찾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도난 사실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05년을 전후한 시기에 황실의 도장과 부신(符信, 두 조각으로 쪼갠 증표)을 정리한 책인 '보인부신총수'를 검토해 오늘날 없는 국새들을 도난 문화재로 분류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국새는 모두 7점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제외한 4점은 2000년대 이후 국내로 돌아와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그중 '황제어새'(皇帝御璽, 제1618-1호)는 2008년 국립고궁박물관이 재미교포로부터 구입했고, '황제지보'(皇帝之寶, 제1618-2호)와 '유서지보'(諭書之寶, 제1618-3호), '준명지보'(濬明之寶, 제1618-4호)는 2014년 미국 정부가 돌려줬다.

성인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은 "미국에서 4점을 환수했다는 사실로 봤을 때 국새 중 상당수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새는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보물급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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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유서지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화재청은 국새 29점과 함께 어보(御寶) 47점의 도난 사실도 밝혔다.

국새가 왕과 황제가 통치를 위해 사용한 도장이라면, 어보는 임금이 세상을 떠난 뒤 종묘에 안치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이다. 어보는 국새보다 크지만, 제작 기법은 덜 정교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 확인된 도난 어보는 1408년 만들어진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지보'(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之寶)부터 1907년 완성된 '순명황후지보'(純明皇后之寶)까지 제작 시기가 다양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새와 어보는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상징일 뿐만 아니라 조형미가 뛰어난 예술품"이라며 "하루빨리 유물들이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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