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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머리 깎아주는 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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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평식씨, 가위·면도기 차에 싣고 양로원 다니며 37년간 이발 봉사

"체력만 되면 10년 더 할 수 있어"

조선일보

/권경안 기자


광주광역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선평식(67·사진)씨는 20년 이상 쓴 이발용 가위와 면도기, 솔, 이발복과 하얀 천 등이 담긴 가방을 트렁크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한 달에 세 번, 양로원 두 곳과 경로당 한 곳을 번갈아 가며 방문해 노인 20~30명의 머리를 다듬어 준다. 오전 6시부터 점심 무렵까지 쉬지 않고 "사각 사각" 무료 이발 봉사를 한다. 어르신들 머리가 단정해지면 선씨의 표정도 밝아진다.

그는 "이젠 이 일이 생활"이라면서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이발 일을 배웠다. 군대에서 이발병으로 복무했고 광주에서 택시를 배울 때도 시간이 나면 동네 어르신들 머리를 깎아 드렸다. 그때가 1980년 3월. 쉬지 않고 37년을 달려온 셈이다.

최근에 찾은 광주광역시 동구의 천혜 경로원에선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아침 일찍부터 선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렸네.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려고 했어." 한 할머니는 그의 손을 붙잡고 반가워했다. 선씨도 반갑게 "할머니, 잘 사셨소"라고 인사말을 정겹게 건넸다.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도 "딸이 내 머리를 보고 예쁘다고 해서…"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뵈어온 분들을 만나고 다음에 또 보자고 하면서 나올 때 마음이 뿌듯해요." 선씨는 "이발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가면 아내가 술상을 마련해 놓고 기다린다"면서 "고생하셨다며 아내가 주는 소주 한 잔이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선씨도 이젠 5~6시간씩 계속 서서 이발을 하다 보면 허리가 욱신거린다고 했다. 택시 운전도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다리가 아파온다. 그는 "틈틈이 걷기 운동을 한다"며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양로원을 찾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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