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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스포츠 인사이드] 썰매 1위를 추락시킨 건 팀 내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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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 원윤종·서영우 그 팀내에 무슨일 있었나]

- 석달전 썰매 뒤집힌 사고후 내분

장비·주행 코치 격렬한 말다툼… 장비 코치父子 "같이 못해" 이탈

- 봅슬레이界 "한국 평창메달 버려"

팀떠난 父子는 최고 엔지니어

선수들도 썰매 걱정에 경기 위축… 내분사태 방관한 연맹 책임 커

지난해 12월 3일 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2016~2017시즌 첫 봅슬레이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한국 팀 에이스 파일럿(조종수) 원윤종이 탔던 4인승 썰매가 트랙 훈련 중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대표팀은 올 시즌부터 현대차가 자체 제작해 기증한 썰매와 기존 썰매를 번갈아 쓰고 있다. 허리에 부상을 당한 원윤종은 주종목인 2인승 월드컵 출전을 강행했지만, 부상 여파로 2차 주행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고 최종 3위에 올랐다.

경기가 끝난 그날 밤, 썰매 관리를 맡던 장비 담당 코치 한슐리·파비오 쉬즈 부자(父子)가 주행 담당 코치인 에릭 스테판 알라드를 찾아갔다. 부자는 "주행 방법을 잘못 가르친 게 아니냐. 왜 갑자기 실수가 나왔느냐"고 따졌다. 알라드도 격분해 "애초에 썰매 관리를 잘못해 뒤집힌 것 아니냐. 제대로 일하는 게 맞느냐"고 맞섰다. 이들의 다툼은 한참을 계속됐다고 한다. 결국 장비 담당 부자는 팀을 떠나버렸다. 처음엔 "집안에 일이 있다"고 했지만 나중에 "알라드 코치와 같이 일할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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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 불모지에서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른 원윤종-서영우조의 이야기는 팬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그러나 대표팀 내에서 코치 사이에 벌어진 내분은 이들의 추락을 불러왔다. 지난 18일 독일 쾨닉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주행하고 있는 원윤종·서영우의 모습. 이들은 이 대회에서 21위에 그쳤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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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한국 봅슬레이의 추락이 시작됐다. 사건의 발단이 된 월드컵 1차 대회 3위를 마지막으로 올 시즌엔 시상대에 서본 적이 없다. 지난 18일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선 21위까지 밀렸다. 지난 시즌 1위였던 세계 랭킹도 올 시즌엔 7위가 됐다. 감정싸움으로 인한 코칭스태프 내분이 추락을 불렀다는 이야기다.

쉬즈 부자는 2014~15시즌부터 한국팀에 합류했다. 당시 주행코치는 영국 출신의 노장 지도자 맬컴 로이드(당시 67세) 코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팀 화합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로이드 코치가 지난해 1월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올 시즌을 앞두고 대체자로 알라드 코치를 선임한 뒤부터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팀 서열상으론 알라드가 쉬즈 부자보다 선임이다. 그러나 48세인 알라드 코치보다는 61세인 한슐리 쪽이 경험도 나이도 많았다. 아들 파비오(33)는 다혈질 성격 탓에 종종 알라드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연맹 관계자는 "두 코치진의 대립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사이였던 이들이 휘슬러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갈라섰다는 것이다.

장비 담당 엔지니어 2명 때문에 팀이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는 걸까. 봅슬레이 관계자들은 "담당자가 쉬즈 부자였다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봅슬레이는 앞·뒤가 서로 연결돼 있는 구조다. 이 연결 부분을 얼마나 조이느냐에 따라 커브를 탈출할 때 충격과 속도가 달라진다. 전 세계 트랙의 특성을 연구해 연결고리 조임 정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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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는 썰매 날의 온도까지 조절해야 할 만큼 민감한 종목이다. 날 온도가 높으면 썰매가 트랙 얼음을 너무 녹여 기록 손해를 본다. 이런 모든 지식이 장비 코치가 가진 '노하우'에서 나온다.

한슐리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캐나다팀에서, 2014년 소치 때는 스위스팀에서 일하며 각각 은메달을 따는 데 공헌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였다. 이 때문에 쉬즈 부자가 한국팀을 떠나자 봅슬레이계에선 "한국이 평창 메달을 버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본지는 이와 관련, 쉬즈 부자와 이메일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휘슬러 사건이 선수들에게 미친 영향은 한둘이 아니다. 일단 원윤종은 당시의 부상 후유증에서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멘털'에도 타격을 받았다. 지난 시즌엔 썰매만큼은 안심하고 탔는데, 지금은 '제대로 속도가 날까' '혹시 뒤집히는 일은 없을까' 걱정을 하게 됐고, 이것이 경기방식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여기다 '성적 부진으로 팀이 분열됐다'는 부담감, '세계 1위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등도 겹쳤다.

이세중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원윤종이 좋은 파일럿이지만 천재적인 파일럿까지는 아니다. 팀의 주춧돌이 빠져나갔으니 부진에 빠진 것"이라고 했다. 봅슬레이연맹은 27일 회의를 열고 대안을 논의했다. 2017~18시즌과 평창올림픽을 대비해 한슐리·파비오 부자의 복귀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은 불투명하다.

결과적으론 내분이 벌어지는 동안 사태를 방관한 봅슬레이연맹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평창에서 가장 메달이 유력한 봅슬레이 대표팀 내부에 균열이 생겼고, 장기간에 걸쳐 반목이 계속됐는데도 '외국인 간의 감정 다툼'이라고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협회 내외에선 한국 썰매 역사상 첫 세계 1위 팀이자, 평창 금메달 1순위 후보를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올림픽까지는 1년이 남았지만 정작 봅슬레이 시즌은 끝나가는 상황"이라며 "빨리 팀을 수습해 선수들이 훈련에 전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윤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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