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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알아보니]여성들의 고스펙이 저출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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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혼인 건수는 30만건, 출생아수는 40만명을 기록했다. 혼인율과 출산율 모두 사상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10년간 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 하락 추세를 돌리진 못했다. 높은 주거비나 고용 불안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것은 물론 출산·육아휴직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산만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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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에서 시민들이 임산부석을 비우고 앉아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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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쌓기 해결하면 혼인 늘어난다?

국책연구 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4일 저출산 대책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을 주제로 ‘제13차 인구포럼’을 열었지만 비슷한 논란에 휘말렸다. 결혼 연령을 앞당기기 위해 휴학과 연수를 다녀온 이들에게 취업시 불이익을 주고 고학력 여성들의 ‘하향결혼’을 유도하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이 소셜미디어에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 이같은 방안을 제안한 사람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이다. 그는 기혼자들의 출산율 변화는 크지 않지만 혼인 자체가 크게 감소한 것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혼인률을 높이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 그는 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불필요하게 스펙을 쌓으면서 결혼 시장에 늦게 들어오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혼자가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을 줄이면 결혼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배우자를 탐색하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가상현실 같은 기술을 대학에 보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건사회연구원-보도자료]『제13차 인구포럼: 주요 저출산대책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 개최
▶[SBS뉴스]"휴학하면 채용 불이익" 제안…황당한 저출산 대책


■결혼은 ‘시장’, 출산은 ‘짝짓기’ 문제

원 연구위원은 연금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 박사이다. 그는 이번 포럼에서 발표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에서 결혼을 시장으로 보고, 출산을 ‘짝짓기’와 같은 생물학적 문제로 바라봤다. 그러나 결혼을 개인의 선택이 좌우하는 시장의 문제로 본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층이 취업과 연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못 만나서가 아니다. 취업난, 치솟는 주거비용과 사교육비, 고용불안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도 출산·육아 휴직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도 여전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SBS CNBC와의 인터뷰에서 원 연구위원의 발표 내용과 관련해 “취업이 안되고 고용이 불안정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개인의 스펙의 문제라든지, 연애에 대한 욕구의 문제라든지, 파트너를 찾는 선호의 문제로 규정한다는데 굉장히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라는 근본 문제부터 먼저 해결한 뒤 개인적인 부분으로 다가가는 단계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저출산의 원인을 혼인률과 ‘기혼자 출산율’로 구분하는 것도 잘못됐다. 결혼을 꺼리는 것은 결국 결혼 이후의 양육 부담까지 고려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두 요소는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배우자 탐색 기술을 보급하자는 제안도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실업 상태를 고수한다는 ‘탐색적 실업’ 같은 경제학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탐색 기간을 줄인다는 것과 혼인률을 높이기 위해 탐색기간을 줄인다는 발상은 서로 이어져있다.

패미위키에서는 이를 두고 “근본적 원인을 망각하고 단지 배우자 탐색을 효율화하면 혼인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일차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라며 “더 큰 문제는 사회 구성원을 바라보는 인식이다. 행복추구권을 갖는 개개인의 인격체가 아니라 국가에 필요한 노동력이자 노동인구 증가를 위해 효율적인 출산을 해야 하는 출산 기계로 보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고소득 여성 하향선택할 수 있게 ‘음모수준’으로 문화콘텐츠 개발?

원 연구위원은 여성들이 ‘하향결혼’을 피하지 않도록 문화적 콘텐츠 개발을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고도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SBS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영역을 사회가 가치관을 바꿔줌으로서 개인이 선호를 바꾼다면 좋은 영역과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패미위키는 이에 대해 “국가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바꾸려 하는 시도는 독재 국가에서의 체제 유지 수단 등으로 시도되어 왔다”라며 “특히 ‘음모수준의 은밀히 진행’ 운운은 플라톤의 우생학적 품종계량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국가>에서 수호자 계급(guardians)의 건강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우수한 남녀가 짝을 이뤄 아이를 낳도록 해야 하는데, 대중이 이를 알면 저항할 것이므로 ‘복권 추첨’ 형식을 가장하여 ‘은밀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적은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원 선임연구위원의 이런 발상은 소셜미디어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Choux_bie_Deathqp00o’는 “‘음모 수준으로 철저하게 기획’ 무슨 지능 높은 짐승 잡는 덫 설치하는 겁니까? 도대체 여성을 무엇으로 보기에 이따위 막말을 연구랍시고 내놔요”라고 항의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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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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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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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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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사회연구원의 게시판에도 25일 오후 현재 비판글이 250건 이상 이어졌다. 한 시민은 ‘유리 천장에 부딪힐까봐 아예 취업도 못하게 유리 문을 만드시려나 봅니다’라는 글에서 “‘여자들이 취업못하면 시집가겠지’하는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아닙니까? …진짜로 출산율을 높이고 싶고, 결혼을 장려하고 싶으시면요. 결혼을 하면 더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정책을 연구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밝혔다. 지난 24일 올라온 일부 비판 게시글은 ‘답변완료’로 표시됐지만 ‘제기한 문제점을 해당 연구원’에게 전달하겠다는 정도였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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