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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웃고 떠들다 놀러가고…여기 학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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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앉은뱅이책상 놓인 작은방 왁자글

세월호, 참사, 기억, 공감 이야기

“친구 같은 선생님에 마음 가는 아이

공교육 아쉬운 부분 여기서 채워”

대안교육 고민하다 2014년 설립

20여명 강사조합원, 수평적 관계

한달 수업료 9만~17만원, 학생 170여명

학생 중엔 생협조합원 자녀들 많아



한겨레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 상가건물 2층 작은 방에 심우열 아카데미쿱 이사장과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다섯이 둘러앉았다. 심씨가 한자로 ‘아닐 비’(非)와 ‘어려울 난’(難)자를 적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본떠 만든 글자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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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협동조합학원’ 아카데미쿱

▶ 아이들이 질문을 잃어갑니다. 초중고 아이들 절반은 학교 수업 중 질문하는 횟수가 일주일에 세 번 이하라 합니다. 학교에선 성적을 강조하지만 수업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의 성적이 좋을 리 없습니다. 학교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어갑니다. 지친 아이들의 어깨를 누가 다독일 수 있을까요.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틈에서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코가 알처럼 생겨서 코알라 아녜요?” “헉, 나 태어나서 그거 처음 생각해봤어!” “어! 판다.” “난 판다 이렇게 그리는데?” “어 이건 뭐야?” “심탈모 선생님!” “하하하하하.”

30대 초반의 남자 어른 하나와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 하나, 남자아이 넷. 어른과 아이들의 말은 쉴 틈이 없다. 앉은뱅이책상에 놓인 교재엔 이미 낙서가 한가득이다.

“이제 시작하자. 오늘 배우는 단어는 ‘비난’과 ‘비판’입니다.” ‘선생님’ 심우열(30)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아이’ 예린이가 받았다. “다음 시간에 배울 단어는 ‘강요’와 ‘비판’입니다. 하핫.” “아나운서 같아! 다음편 예고!” “다음 시간에 계속! 투 비 컨티뉴드.” “예린인 아나운서 할래?” “아니요!”

아이들의 말은 폭포수다. 쉴 새 없이 쏟아진다. 틈마다 심씨가 ‘진도’를 나가보지만 여의치 않다.

“여러분 중에 비판이란 말을 태어나 처음 들어본 사람?” “없는데… 요즘에 그거 최순실 때문에 많이 들어봤습니다.” “대통령이 말 사줬어!” “대통령이 아니라 삼성이 사준 거야.”

갑자기 ‘국정 농단’이 화제다. 대화는 정신없이 이어졌다.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동. 동네 상가건물 2층 작은 방이 왁자했다. 수업이라기엔 내내 웃고 떠드는 시간. 심씨가 작성한 수업 소개 자료는 단출했다.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한 ‘초등 한문교양반’ 수업의 ‘심화 단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언행을 돌아본다. 비판과 비난을 받았을 때의 느낌을 친구들과 공유한다. 이 ‘돌아봄’과 ‘공유’가, 수업의 어느 순간에 이뤄지는 것인지 알아차리긴 어려웠다.

심씨가 한자 맞히기를 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책상 한가운데로 몰려들었다. 자기 몸보다 큰 책상 위로 아예 몸째 올라온 아이도 있었다. 심씨가 적은 한자가 무엇을 본뜬 것인지 맞히는 게임이었다. 한자는 ‘아닐 비’(非)와 ‘어려울 난’(難). “힌트를 주세요!” “양쪽이 똑같지?” “새야 새.” “이건 어떤 새일까?” “펭귄?” “오리?” “공작새?” “금강앵무!” “비둘기!” “참새!”

순식간에 답이 나왔다. 아이들은 그렇게 1시간 남짓 떠들고서야 겨우 ‘진도’를 마쳤다. 이제 간식시간이다. 바나나, 핫도그, 요구르트를 나눠 먹으며 아이들은 또 떠들었다. 간식을 먹고 나선 인근 놀이터로 갔다. 술래가 된 아이가 도망치는 다른 아이와 심씨를 쫓았다. 술래가 되지 않으려는 심씨와 아이들이 놀이터 미끄럼틀을 오르내렸다.

놀고 먹고 여행 가고

심씨는 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의 이사장이다. 아카데미쿱은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2014년 설립한 ‘협동조합 학습공동체’다. 대학 재학 시절 심씨가 ‘서울대 리더십 콘퍼런스’와 사범대 수업에서 만난 이들이 주축이 됐다. 협동조합이다 보니 일반 학원처럼 원장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강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수평적 관계를 맺는다. 강사들 간의 ‘협동’이 자연스럽다. 아카데미쿱은 얼핏 평범한 과외교습소 같지만, ‘국영수’를 가르치는 대신 통합교과형 수업을 하고 친구들과 협동해야 하는 과제 풀이를 한다. 대상은 초등학생과 중학생. 초등 저학년은 ‘옛이야기’, 고학년은 ‘한문교양’과 ‘자연’, 중학생은 ‘인문학’과 ‘고전교양’, ‘자연’으로 반을 나눴다. 한 반 인원은 5~8명. 일주일에 1회 3시간 수업으로 아이들의 자기주도 학습 능력과 자기효능감, 협동심을 기르는 게 목표다. 종종 아이들과 강사가 함께 국내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20여명의 강사 조합원이 서울 12개 지역에서 170여명의 학생을 가르치며 수업마다 상세한 일지를 만들어 학부모와 나누고 한 달에 한 번 간담회를 연다. 수업이나 간담회는 주로 다른 협동조합의 빈 공간을 활용해 비용을 던다. 수업료는 한 달 9만~17만원. 어디든 협동조합에 가입된 조합원이면 1만~2만원을 할인해준다. 학부모가 장소를 내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기도 하니 서로 좋다. 학생들 중엔 특히 아이쿱생협 조합원 자녀가 많다.

심씨는 “일종의 ‘그룹과외 알선’이라 보면 되지만 가르치는 방식이나 내용이 다르다. 교과목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와서 수업만 듣고 가는 게 아니라 같이 놀고 먹고 여행도 가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강사들이 작성하는 수업일지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 친구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내면의 변화 같은 것들이 담긴다.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16일, 경기 성남 아이쿱생협 강의실에서 연 초등 한문반의 수업보고서(수업일지)는 1만38자의 글자가 A4 용지 6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초등학교 6학년 시은이와 5학년 요환이 윤식이, 4학년인 지오 선후 은수가 한 반이다. 1주기였던 만큼 각자 ‘세월호’에서 연상되는 것들을 나누고 한자어인 표제어의 의미를 정리하고 토론하는 것이 이날 계획이었다. 표제어는 ‘참사’(慘事)와 ‘기억’(記憶), ‘공감’(共感). 강사는 아이들과 단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사’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참혹한 사건”으로, ‘기억’은 “말과 글의 형태로 늘어져 있는 정보들을 잘 정리해 항상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정리했다. ‘공감’은 “다른 사람과 함께 느끼는 것”이다. 강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려줬고, 아이들은 안타까움에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날 수업 중엔 작은 사달이 일기도 했다. 요환이가 실수로 옆자리 지오의 코코아가 든 잔을 엎은 것이다. 요환이는 얼떨결에 사과했지만, 왜인지 쏟아진 코코아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치우려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지오가 “형도 같이 청소해야 한다”며 다그치자 요환이도 맞받아 화를 냈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은 이 일을 ‘코코아 참사’라 불렀다.

‘참사’를 불러온 아이들의 이야기는 수업일지에 남았다. “오늘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요환이가 자신의 단점을 직시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코코아를 엎지르고 나서도 분명히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한 발 물러나 갑자기 책을 꺼내 읽었다.” “지오는 자신의 기분을 직시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당시 기분을 요환이에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나는 지오가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능력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꽤나 뛰어나다고 느꼈다.”

한겨레

실내 수업을 마친 심우열씨와 아이들이 인근 놀이터로 놀러와 술래잡기를 했다. 술래가 된 아이가 도망치는 다른 아이와 심씨를 쫓아 미끄럼틀을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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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대치동에서 경남 대안학교로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아이의 내면을 함께 살피고 고민해주니 학부모들의 신뢰도 높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믿음직한 어른 덕에 아이도 자신감이 생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은실(48)씨는 아카데미쿱이 만들어진 2014년부터 두 아이를 맡겼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는 아예 대안학교인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로 진학한다. 김씨는 “생협을 통해 알게 된 분의 소개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우리 부부가 추구하는 교육관과 매우 잘 맞았다. 친구이면서 멘토인, 권위적이지 않은 선생님을 통해 대안교육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김씨의 아이들은 대치동이라는, 학교 성적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풍토가 만연한 지역에서 자랐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는 부모와 선생님에게 무언가 부족한 아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김씨의 아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땐 성적이 떨어져 자신감을 잃었지만, 아카데미쿱의 수업에 나간 뒤 점차 달라졌다. 어느새 성적도 좋아졌다. “학교나, 과외, 학원 선생님들은 아이 입장에선 다들 권위적이고 뭔가 지식을 가르치려 애쓰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선생님이 자기 얘기를 한도 끝도 없이 들어주는 거예요. 아이들은 어른이라면 자기랑 다르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는데 이런 어른도 있구나, 그러면서 마음을 놓는 것 같았어요.”

역시 대치동에서 공동육아를 경험했던 박형실(47)씨는 “공동육아 때 기대했던, 공교육에서 채워지기 힘든 부분을 아카데미쿱을 통해 얻고 있다”고 했다. “부모 노릇도 처음 해보니 아이에 대해 얘기해주는, 아이와 접촉하는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 얘기를 목말라해요. 그런데 일반 학원은 아무래도 아이를 계속 다니게 하려고 해주는 얘기가 많잖아요. 근데 여기선 좋은 얘기 안 해줄 때가 더 많아요. 그런 면에서 믿고 얘기할 수 있는 교육자, 아이에 대해 솔직히 말해주는 교육자로 (아카데미쿱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어요.”

주변 엄마들에게 이런 방식의 교육을 적극 권한다는 박씨는 아카데미쿱이 오히려 더 ‘대안적’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대안이라면 확실히 대안의 성격을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자연 교육 하면서 원소기호 가르치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협동의 가치, 이런 걸 꼭 이 수업에서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사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이게 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있는 어떤 형태의 모임이든 아이들에겐 의미가 있다고 봐요.” 박씨는 한 달마다 열리는 간담회에 꼬박꼬박 참석해 수업 내용이나 교재 관련 의견을 적극 내놓는다. 강사가 아이들에게 세월호 다큐를 보여줬다면, 관련해 더 좋은 시청각 교재를 추천하고 다른 부모들과 의견을 나눈다. 부모들의 참여가 아이들의 ‘성장’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칼자루를 쥐여주자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싸우고 웃고 즐거워하다 갈등하는 시간들은 아이들에게 성장의 시간이다. ‘놀이로서의 관계 맺기’는 한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성적을 중심으로 한 학교와, ‘국영수’만 가르치는 학원에선 이런 경험을 하기 어렵다. 온실 안에서 길러진, 병충해에 약한 힘없는 화초가 되기 쉽다. 화초는 생기를 잃고 흥미도 잃는다.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가 최근 9~19살 학생 3429명을 상대로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질문을 한 횟수를 조사했더니 1주일에 3회 이하였다는 학생이 과반인 58.4%였다. 질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학생도 16.2%나 됐다. 수업에 적극적이었다고 할 만한, 질문을 열 번 이상 한 학생은 18.3%였다.

아이들에게 질문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초등학교 4학년들은 ‘뭘 질문해야 할지 몰라서’, ‘창피 당할까봐’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 중학교 2학년들은 아예 ‘관심과 흥미가 없어서’라 답했다. 위축된 아이들이 질문을 꺼리다 결국 수업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는 것이다. 아이들에겐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아카데미쿱과 같은 형태의 ‘놀이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초부터 강사 조합원으로 참여해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한자 수업을 하고 있는 조현성(25)씨는 “처음엔 이게 과연 수업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장난처럼 내뱉는 말을 진지하게 듣게 되고 아이들 관심을 수업의 주제로 엮어가면서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과소평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한 가지 잣대로 획일화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우열 이사장도 아이들의 ‘마음’과 ‘태도’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진도나 숙제 같은 것을 너무 따지게 되면 아이들과 결국 싸우게 되더라구요. 아이들이 새로운 걸 받아들일 때 어떤 마음과 태도인지가 중요해요. 하루 공부하고 말 게 아니라 평생 자기 삶을 순조롭게 만들기 위해 하는 거라면 초중학생 단계에서부터 그런 태도나 마음을 연습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른들 손에 이끌리기보다 아주 작은 것부터도 자기 손으로,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삶의 칼자루를 아이들이 직접 쥐게 하는 것. 그게 진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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