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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아시안게임] UAE 피겨 라리 "히잡쓰고 평창에서 연기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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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묘한 매력의 히잡 스케이터
(삿포로=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3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 빙상장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최초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자하라 라리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17.2.23 hama@yna.co.kr



(삿포로=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꿈은 평창 올림픽에 나서는 것이죠. 꿈이 이뤄지면 정말 근사할 거에요."

낮기온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아랍에미리트(UAE). 겨울 스포츠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열사(熱沙)의 땅'에서 나 홀로 '얼음 왕국'을 꿈꾸는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자흐라 라리(22)가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무대에서 피겨 팬들에 조용한 감동을 주고 있다.

23일 오후 일본 삿포로의 마코마나이 실내링크.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여자 싱글이 시작된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눈길을 끈 선수가 있었다.

바로 UAE를 대표해서 출전한 라리였다.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낯선 UAE 출신 선수라는 점도 있지만 히잡을 쓰고 출전한 모습 역시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라리는 국제 대회에서 유일하게 히잡을 쓰고 출전하는 선수다.

24명의 출전선수 가운데 8번째로 출전한 라리는 온몸을 감싸는 짙은 회색의 드레스에 카키색 히잡을 쓰고 은반에 섰다.

배경 음악이 흐르고 라리는 첫 번째 점프 과제인 트리플 루프를 시도했지만 두발로 착지하고 회전수도 부족했다.

연이어 시도한 트리플 살코 역시 제대로 뛰지 못했고, 쇼트프로그램의 기본과제인 더블 악셀(공중 2회전반)마저도 소화하지 못했다.

두 차례 콤비네이션 스핀은 각각 레벨 2와 레벨 1에 머물렀고, 스텝 시퀀스도 레벨2에 그쳤지만 라리는 관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UAE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피겨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팬들의 감동을 자아내서다.

총점 23.31점의 저조한 성적을 받은 라리는 24명 가운데 19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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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히잡 스케이터
(삿포로=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3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 빙상장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최초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자하라 라리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17.2.23 hama@yna.co.kr



경기가 끝난 뒤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라리의 표정은 밝았다.

무엇보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 자체가 쉽지 않은 중동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자 피겨 선수가 됐고, 또 UAE를 대표해서 처음으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종목에 섰다는 자부심이 강하게 드러났다.

"연습 때는 잘했는데 연기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좀 더 연습하고 더 큰 대회들을 많이 치러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러면 좀 더 나아질 거 같아요."

라리는 12살 때 처음 피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만 연습했고, 본격적으로 피겨 선수로 입문한 것은 5년 전이다.

그는 "UAE에는 외국인 피겨 선수들이 있다"라며 "자국 선수만 따지면 6명밖에 없지만 피겨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라고 웃음을 지었다.

'UAE에서 여자 피겨 선수로 사는 삶이 고단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라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라리는 "솔직히 말해서 어렵다"라며 "UAE에는 겨울 스포츠가 없었다. 피겨는 최신 스포츠"라며 "시작이 어려웠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했다. 지금은 국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100%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힘든 점은 계속 자극을 줄 수 있는 경쟁자들이 있어야 하는 데 UAE에는 그런 상대가 없다는 것"이라며 "항상 스스로 동기부여를 한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 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리는 특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2년 전만 해도 UAE에서는 여성이 이슬람 율법 때문에 스포츠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라며 "최근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활발해졌고, 내가 피겨 종목을 맡고 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으로부터도 히잡을 쓰고 경기에 나서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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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피겨 스케이터
(삿포로=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3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 빙상장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최초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자하라 라리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17.2.23 hama@yna.co.kr




라리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이다. 그것도 1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히잡을 두르고 경쟁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오는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야 하지만 지금의 성적으로는 사실상 무리다.

이 때문에 라리는 오는 9월 마지막 올림픽 자격 대회인 네벨혼 트로피를 겨냥하고 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출전권을 한 장도 확보하지 못한 나라의 선수들은 네벨혼 트로피에서 1~6위에 들면 올림픽 티켓을 따낼 수 있다.

라리가 평창행에 성공하면 UAE 국가대표로는 최초로 동계올림픽에 나가게 되고, 히잡을 쓴 여성 선수로도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다.

라리는 "나의 꿈은 올림픽 출전"이라며 "오는 9월 네벨혼 트로피에서 꼭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따고 싶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너무나 근사할 것이다. 평창 올림픽 무대에 히잡을 쓰고 꼭 출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하겠다"라고 다짐했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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