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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팩트] 김정남이 외교관?… 北의 5가지 억지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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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인지 신원 확인 안돼… 법 위반 했다고 볼 수 없어" / “눈 점막, 손 피부와 달라 약물 쉽게 투과” / 말레이 경찰 “독살이라 단정한 적 없는데…” / 공동조사 하자는 北…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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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법률가위원회는 23일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한국과 말레이시아 당국을 싸잡아 비난하며 여러 주장과 의혹을 내놨다. 북한의 주장과 의혹을 검증해 보고 그 의도를 분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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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문가 ‘北의 국제법 위반 주장’ 지적

조선법률가위원회는 23일 말레이시아 당국의 김정남 시신 부검과 관련해 “사망자가 외교려권(여권) 소지자로서 윈(빈)협약에 따라 치외법권 대상이므로 절대 부검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시신 인도 문제에 대해 “말레이시아법에 따라 사망자 가족 측에서 DNA 견본을 제출하기 전에는 시신을 넘겨줄 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붙이며 아직까지 시신을 넘겨주지 않고 있다”면서 말레이시아가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승진 단국대 교수(국제법·국제인권법)는 “외교 여권을 소지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외교관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라며 “해당 국가(말레이시아)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이라면 조사를 하거나 처벌을 할 때 면제나 특혜가 있지만 이번 사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외교관인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부검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을 위반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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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당국의 DNA 제출 요구가 국제법적으로 부당하다는 북한 주장도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강병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국제법에서 국가는 자국 국적인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이를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런 논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개인을 뛰어넘어 국가가 우선한다는 국제법은 없다”면서 “최근친에 의한 신원보증이 먼저이고, 그 최근친 개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말레이시아가 자국 내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망사고라고 보고 자국 내에서 먼저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시신을 인도할 수 없다고 밝히는 상황에서 개인을 뛰어넘어 국가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는 북한 입장은 국제법상으로도 받아들여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선법률가위원회는 이날 “말레이시아 경찰은 현지 우리 대사관에 알리지도 않고 말레이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공민의 살림집에 불의에 들이닥쳐 무작정 그를 체포했다”고도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체포 시 사전통보 의무는 없다고 본다.

오 교수는 “북한 국적의 시민을 체포하는 데 미리 대사관에 알려야 할 의무는 없고 체포 후에 알리면 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말레이시아 당국이 체포된 리정철(또는 리종철)에 대한 북한의 영사접견권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오 교수는 “체포된 리정철에 대한 영사면담 권한은 허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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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이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 2청사(KLIA 2)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는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이 일본 TBS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왼쪽부터 김정남이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에게 독극물 공격을 받은 뒤 공항경찰에게 독극물 공격 피해 내용을 설명하며 현기증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진 김정남이 메디컬 클리닉에서 의료진에 의해 실려나가고 있다. TBS 유튜브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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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의학전문가, 北 의혹 제기 반박


조선법률가위원회는 23일 “살인용의자들이 진술했다고 하는 ‘손바닥에 짜주는 기름 같은 액체를 머리에 발라주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독살당했다는 것인데 손에 바른 녀성(여성)은 살고 그것을 발리운(발려진) 사람은 죽는 그런 독약이 어디에 있는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의학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여성 용의자가 김정남 눈 부위를 손으로 감싼다”며 “눈 안쪽 점막은 손 피부와는 구조가 달라서 약물이 쉽게 투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독감 바이러스라도 손 피부를 못 뚫지만 눈 점막으로는 침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박의우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실 교수는 “보통 피부에는 각질층이 있어 인체에 침투하는 세균 등을 막아준다”며 “점막에는 각질층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 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 코, 입은 피부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도 22일 기자회견에서 두 손으로 두 눈을 감싸는 모습으로 범행을 재연(사진)했다.

현지 중국보(中國報)에 따르면 두 여성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우리가 (김정남에게) 장난을 친 뒤에 곧장 몸에서 따갑고 얼얼한 자극적 통증이 생겼다. 그러자 그 남성(용의자)이 우리더러 빨리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성 용의자들은 세수 후에도 통증이 계속 있어 왜 자신들에게 이런 자극적인 통증이 나타나느냐고 따지자 남성이 연고를 건네줬다고 했다. 연고가 일종의 해독제일 수 있다. 김정남 피습 직후 사진에선 T셔츠 가슴 부분에 액체가 묻은 듯 얼룩이 보여 독극물 흔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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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이 피습 직후 쿠알라룸푸르 공항 의무실 소파에 정신을 잃은 듯 누워 있다. 연합뉴스


③ 北 “단서 없이 사인 밝혀” 주장


조선법률가위원회는 23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아무런 단서 없이 독살로 고집하고 있다”, “남한이 퍼뜨린 독살설을 무작정 따랐다”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김정남 사망의 원인이 독살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말레이시아 보건부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모든 가능성을 조사 중”이라고만 밝혔다. 경찰과 보건 당국 모두 기자회견이나 공식발언에서 독살이나 심장마비 등 사인을 정확히 규정한 바 없다.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언론이 “심장마비이냐 독살이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심장마비라는 증거도 아니라는 증거도, 독살이라는 증거도 확정하지 않는다”라며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 사인이 공식 발표될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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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사건 용의자로 18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북한 국적의 리정철(또는 리종철·46·왼쪽 두 번째)이 조사받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세팡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조선법률가위원회는 이날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의 리정철(또는 리정철) 체포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리종철)의 가족들까지 구타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현지 소식통은 “말레이시아 공권력은 시민을 때려도 용인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권력”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폭행이 사실로 확인되거나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직까지 폭행을 당한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경찰도 폭행을 인정한 적도 없다. 해당 국가에서 정당한 공무집행 범위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문제삼기도 힘들다.

오승진 단국대 교수는 “정당한 공무집행에 저항이 있는 경우 합리적 범위 내에서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범위를 넘은 것인지는 아직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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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에 둘러싸인 北 차량 2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 앞에서 각국 기자들이 대사관 차량을 둘러싸고 취재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④ 北 “대표단 파견 준비”


조선법률가위원회는 23일 “이미 이번 사건의 정확한 해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제기하고 우리 법률가 대표단을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률가대표단을 직접 현지에 보내 살인용의자들을 만나 그들의 진술도 들어보고 그들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확인하며, 체포된 우리 공민도 만나보고, 사건현장과 동영상 자료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해 사건 수사를 공정하게 결속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도 21일 공동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경찰청장은 전날(22일) 기자회견에서 이를 거부한다고 분명히 했다.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실현 극히 가능성이 작은 공동조사 요구를 계속 주장하는 것에 대해 “자기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공동조사를 제안하며 물타기를 하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 수법”이라고 말했다.

김예진·박수찬·김민서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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