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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Why]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최순실과 고영태, 애증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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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인가, 동업자인가? 검찰 조사 과정서 드러난 그들의 관계

조선일보

▲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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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최순실(61)씨와 고영태(41)씨의 내연관계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에서 "대통령의 40년 지기로서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최순실씨가 고씨와 불륜에 빠지면서 사건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고씨는 "역겹다. 신성한 헌재에서 인격을 모독하는 게 국가원수 변호인단이 할 얘기인지 한심하다"고 맞섰다. 이 사건 다른 연루자들도 두 사람의 내연관계 여부에 대해선 검찰과 법원에서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2014년 크게 싸워 결별설 돌아

최씨와 고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12년 말 가방 사업 관계로 만났다고 공통된 진술을 했다. 이보다 오래전인 2006~2007년 고씨가 '호스트바'에서 남성 접대부로 일하다 손님으로 온 최씨를 알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고씨를 최씨에게 소개했다는 말도 있었으나, 최씨와 고씨는 그들의 첫 만남에 대해 같은 진술을 유지하고 있다.

고씨는 "2012년 말쯤 가방 업체인 '빌로밀로'를 운영하던 중 악어가죽으로 만든 지갑과 소가죽으로 만든 핸드백 한 개를 산 여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최순실이었다"고 했다. "여러 차례 가방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겼고, 2013년 중순쯤부터 대통령 전용 의상실을 운영했다"고도 했다. 바로 청와대 행정관들이 최씨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된 강남구 신사동의 비밀 의상실을 말한다.

이 무렵 최씨와 고씨를 함께 만났다는 기업인도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 기업인에게 고씨는 가방 사업에 투자해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 최씨를 데리고 나왔다는 것이다. 고씨는 이 기업인에게 최씨를 '애인'이라 소개했고, '저런 나이 많은 여자를 왜 만나느냐'는 기업인의 핀잔에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드는 대단한 여자"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씨와 최씨를 청담동 카페 등에서 두 차례 만났던 이 기업인은 고씨에게 1억여 원을 빌려줬으나 돈을 다 돌려받진 못했다고 한다.

고씨는 2014년 초까지 비밀 의상실을 운영했으나, '영세 가방제조업체가 대통령 가방을 만들다 망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최씨가 고씨를 의심하면서 대통령 옷과 가방 만드는 것을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이후 고씨는 최씨의 개인 사무실로 출근하다, 2014년 말 최씨와 크게 싸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변호인 측도 "2014년 말 최씨와 고씨의 특별한 관계는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둘의 갈등을 검찰에서 구체적으로 진술한 인물은 차은택(48)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다. 작년 11월 14일 검사가 작성한 차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2014년 말쯤 최씨가 매우 화를 내며 '아침에 고영태에게 갔는데 어떤 젊은 여자만 침대에서 자고 있더라. 그래서 그 젊은 여자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여자가 아줌마는 누구냐고 물어보더라. 어쩌면 저럴 수 있냐. 그래서 내가 선물했던 시계와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고 하더라. 그렇게 최씨와 고씨 사이에서 양측 입장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 사이를 내연관계로 확신하게 됐다." 당시 고씨가 살던 집은 최씨가 보증금을 댄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런 곳에 낯선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최씨가 화가 났고, 그들의 그런 모습이 차씨에겐 바람 피우다 걸려 헤어지는 전형적인 연인 사이로 비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씨는 작년 말 국회 청문회에서 조금 다르게 설명했다. 최씨의 딸인 정유라의 강아지 때문에 싸웠다는 것이었다. 그날 고씨는 기자들과 만나 "최씨가 유라의 개를 키우는데 그 개를 나한테 맡긴 적이 있다. 그런데 골프 치느라 개를 혼자 두고 나갔다고 싸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 사건 기록에도 정유라의 강아지가 등장한다. 최씨의 진술 중에는 "2014년 말 고씨의 집에 갔는데, 그 방 안에 어떤 젊은 여자가 유라의 애완견을 안고 있어 '누구냐'고 물어보자, 그 여자가 '고씨가 있으라고 해서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더라"는 부분이 나온다. 최씨 입장에선 고씨의 집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도 싫고 그 여자가 딸의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당시 최씨는 고씨에게 줬던 시계 등의 선물을 챙겨 나왔고 고씨에게 보증금 3000만원을 돌려달라고 하는 등 돈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됐다. 최씨의 변호인 측은 "2012년 만난 이후 고씨는 신용불량 회복 명목으로 5000만원, 고씨 형의 빚을 갚는 명목으로 4000만원을 받는 등 최씨로부터 많은 금전적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주변 인물에게 고씨는 왕의 남자

하지만 최씨와 고씨 관계는 다시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은택씨는 "당시 둘이 헤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최씨가 고씨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지 고씨의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었다"면서 "나중에 K스포츠재단 일을 같이 하는 것을 봤다. 언제 어떻게 그들이 다시 결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차씨는 고씨의 소개로 최씨를 알게 된 인물이다. 2014년 초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한 홍보물을 기획 제작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달라"는 최씨의 부탁을 받은 고씨가 찾아낸 인물이 차씨였던 것이다. 이후 차씨는 문화융성 위원으로 발탁되는 등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게 된다. 차씨에게 고씨는 '은인'이었던 것. 하지만 고씨는 "최씨가 차씨를 알고 나서부터 인사에 개입하는 등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차씨의 잘나가는 모습을 고씨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와 가까웠던 인물들이 나눈 대화가 녹음된 이른바 '고영태 파일'에도 최씨와 고씨의 관계를 암시할 만한 부분이 있다. 파일의 대화 내용을 보면 2014년 말 최씨와 고씨가 크게 싸웠으나 이후 다시 관계가 개선됐음을 짐작할 만한 대목이 등장한다.

2015년 4월 7일 녹음된 파일에서 당시 최철 문화체육부장관 정책보좌관은 고씨에게 "형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 소장(최순실)하고 관계만 잘하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너한테도 말 못 하는 게 내가 소장하고 관계가 완전히 되게 심하게 틀어졌었어"라면서 "VIP(대통령)가 믿는 사람은 소장밖에 없어"라고 답했다. 최 전 보좌관이 "어떻게 알아?"라고 묻자, 고씨는 "소장밖에 없고 소장이 믿는 사람이 VIP하고 나밖에 없어. 다른 사람 말은 아예 듣지도 않아"라고 답했다.

지난해 5월 3일 고씨의 한국체대 선배인 류상영 더블루K 부장이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에게 말한 내용 중엔 더욱 구체적인 묘사가 나온다. "지금 얘(고영태)는 솔직한 얘기로 왕(최순실)의 남자인데, 여기에서 비즈니스 하고 앉아 있으면 되겠냐? 왕의 남자는 왕권을 받는다든지 왕이 갖고 있는 것을 받는 것이지. 벨(김종 당시 문체부 차관)이 왕의 남자는 아니잖아. 벨은 파트너란 말이야. 왕의 남자랑 파트너랑 이게 비즈니스 게임이 되냐. 이미 회장님(최순실)도 우리가 보기엔 뭐 60대 아줌마 멍청하다고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우리보다 높을 수 있어."

그러면서 류씨는 "영태가 회장님 비자금 만들고 이런 것에 대해 좀 더 똘똘하게 해가지고 사업 기획을 하는 게 맞지. 그런데 지금은 늦었을 것 같고, 이미 다 만들어놓고 명의만 영태를 데리고 가는 거니까. 그러면 이거 뭐냐, 회장님은 영태를 그냥 남자로 데리고 가고 싶은 거야. 그 지랄을 하면서 다시 만나고 또 데리고 가는 이유는 사람이라는 게 제 감정이 있기 때문에"라고 했다. 한국과 독일에 각각 K스포츠재단과 비덱스포츠를 만든 최순실씨가 특별한 관계에 있는 고씨에게 이권을 챙겨주려는 정황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녹음 파일을 근거로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단은 "고씨와 몇몇 측근들이 대통령과 가까운 최씨를 이용해 이권을 챙기려 했다"면서 "2015년 7월 기업 자금을 빼돌리려고 독일에 회사를 만들 때도 고씨는 최씨와 함께 출국했다"고 말했다.

내연관계 아니라는 주장도 많아

그러나 둘의 관계가 업무적 관계였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조성민 더블루K 전 대표는 9일 헌재에서 "최순실과 고영태가 남녀 관계로 보였느냐"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질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제 관점에서는 둘의 관계가 저와 최씨와 마찬가지로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로 보였다"며 "최씨가 고씨의 의견을 더 많이 들어준 것은 고씨가 저보다 최씨 말에 더 순종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도 "(최씨와 고씨는) 사장과 직원의 관계이며 수직적 관계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사자인 고씨가 내연 관계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고, 최씨 역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최씨 측 변호인은 "고씨가 주변에 최씨와의 관계를 과장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선 "박 대통령 측이 탄핵 사건의 논점을 흐리고 시간을 끌기 위해 내연 관계와 불륜 문제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했고, 대통령 대리인단 측에선 "최씨와 고씨의 관계를 아는 고씨 주변 인물들이 이권을 챙기려다 엉뚱하게 대통령에게 불똥이 튄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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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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