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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수입 고기 담보로 6000억 중복 대출… '미트론' 사기극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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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유통업체가 냉동창고 인수한 뒤 계열사 쪼개서 대출

최대 피해자 동양생명, 사기 금액 2800억원… 업계선 "최대 1조 피해"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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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동양생명은 '미트론(meat loan)'이라 불리는 육류담보대출 사기를 당했다며 소·돼지고기 수입업체인 워너기업과 그 관계사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동양생명이 파악한 대출 사기 금액은 2800여억원 규모였다. 검찰은 워너기업 측이 대출 중개업자 수십명과 짜고 불법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터질 게 터졌다"며 "이번 사건 피해 금액이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트론이란 수입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수입육 가격도 주식처럼 등락이 있기 때문에 수입·유통업자들은 가격이 오를 것을 대비해 냉동 창고에 보관해 둔 고기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다른 고기를 수입하고 나중에 고기를 팔고 나서 대출금을 갚는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이후 투자처를 찾던 신안저축은행과 효성캐피탈, 동양증권 등 제2금융권에서 미트론 상품을 내놓으면서 이 대출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트론을 받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수입육의 90%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는데 이때 받는 선적 번호인 BL번호와 해당 수입육이 냉동창고에 도착했을 때 발급되는 이체증만 금융기관에 제출하면 곧바로 대출이 된다. 이때 금융기관들은 냉동 창고에 물건이 실제 들어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동으로 창고를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 냉동창고가 수입업자 손에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대형 육류 수입·유통업체인 워너기업과 그 계열사들은 지난해 초 경기도에 있는 1만3000~1만9000㎡(4000~6000평) 규모의 냉동창고 3곳을 차례로 사들였다. 창고 소유주로는 워너기업 대신 대표이사 정모씨의 친척 등을 내세웠다. 냉동창고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데다 초기에 많은 자본을 들여 넓은 땅을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현금 유동성이 중요한 수입·유통업자들은 창고에 투자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업계에서도 워너기업이 냉동창고를 인수했을 때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워너기업은 이 창고를 이용해 대규모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육류가 창고에 들어올 때마다 발급할 수 있는 이체증을 금융사에 제시하고 대출을 받았던 것이다. 같은 고기로 여러 번 중복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한 물건으로 동양생명을 비롯한 제2금융권 최대 18곳에서 대출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해당 창고들이 수천t의 고기를 보관할 수 있는 규모인 데다 창고 소유자 명의 역시 워너기업과 무관해 사기성 대출을 의심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금융 기관들이 대출 조회를 할 때 기존의 대출 규모는 알 수 있지만 그 대출에 어떤 물건이 담보로 설정된 것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중복 대출이 가능했다고 금융권 관계자는 설명했다.

미트론은 기업별로 대출 한도를 설정했지만 워너기업은 회사를 여러 계열사로 쪼개는 방식으로 대출 금액을 늘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워너기업과 계열사 10여곳이 중복해서 대출받은 금액만 총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동양생명은 "해당 업체로부터 밀린 대출금이 28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을 우리도 작년 12월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번 미트론 사기 사건을 주도한 워너기업 관계자 3명이 지난 10일 구속되면서 워너기업 측의 추가 범행은 중단됐다. 하지만 워너기업 측이 자신들이 수입한 고기뿐 아니라 냉동창고에 들어온 다른 업체의 고기도 마음대로 반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 피해는 커지고 있다.

검찰은 워너기업 측이 대출받은 수천억원 중 대부분이 행방이 불투명한 점 등으로 미뤄 대출받은 돈을 외국으로 빼돌리거나 다른 곳에 은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수사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나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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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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