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36156068 0252017021836156068 02 5.15.14-RELEASE 25 조선일보 0

[Why] 가짜 인생이면 어때? 페북 스타면 오케이!

글자크기

연예인·스포츠 선수 사칭하는 '온라인 리플리' 늘어

온라인으로 도피하는 2030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 현실의 '나' 잊고싶어서

리플리에 눈감는 사회

위조·거짓말에 관대… '별 문제없다' 인식 확대

외국에선 제재 엄격

미국·캐나다에선 사칭 계정 형사처벌

A씨는 인스타그램 유명 인사다. 그의 사진을 받아 보는 팔로어만 1만명이 넘는다. 한 홍보대행사 직원으로 알려진 그는 거의 매일 연예인과 함께 팔짱을 끼거나 포옹하며 찍은 사진을 올린다. 탤런트를 성 빼고 이름만 부르는 사이처럼 글을 쓰거나, '언니' '오빠' '동생'으로 부른다. A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세를 타자 각종 파티나 패션쇼, 영화시사회 주최 측에서 A씨를 VIP급으로 초대했다. 화장품·의상 협찬도 생겼다. 하지만 A씨는 함께 사진 찍은 연예인 대다수와 별다른 친분이 없다. 방송국 등 연예인이 자주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팬이라면서 함께 '인증샷'을 찍은 게 대부분이다. 이 같은 A씨의 행각은 방송계에서 널리 알려졌지만 A씨는 여전히 연예인과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온라인에서 가짜 인생을 사는 사람, 즉 '온라인 리플리'들이 늘고 있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부정하고 가상의 나를 만들어, 여기에 맞게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인격장애를 뜻한다. 예일대 학력을 위조해 권력층에 접근한 신정아씨, 주식으로 대박 난 자수성가형 인물이라고 꾸미고 사기를 친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도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분석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성적 지상주의, 서열주의 교육 풍토에서 자라나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30대가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온라인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들이 리플리 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 가짜 인생에 더 만족

사이버 공간은 온라인 리플리들에게 좋은 정보 수집처이자 활동 무대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신이 꿈꿔온 인물에 대한 학교·직업 등에 대한 정보와 사진을 얻은 뒤 이를 자신의 일상으로 가공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퍼뜨리는 식이다.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고급 옷과 자동차 등 사진과 해시태그(#)로 욕망을 간단히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불특정 다수에게 퍼뜨려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사진을 도용해 사칭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유명인 이름을 검색하면, 프로필 사진과 함께 수십 명의 계정이 뜬다. 일부는 팬이라고 밝히지만, '오늘 촬영 힘들었다' 식으로 은근히 자신이 유명인인 양 포장한다. 개그맨 유재석, 방송인 김성주가 대표적인 사칭 계정 피해자다. 스튜어디스나 금융권에서 일하는 고액 연봉자 등 일반인을 사칭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2016년 정보보호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 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를 겪은 경우는 10명 중 1명(9.2%)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연예인 외에도 경제, 과학, 역사 등 특정 분야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이른바 '연구하는 리플리'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누군가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면 이를 다른 게시판에 묻고, 답이 나왔을 때 이를 편집해 자신의 의견인 양 답해준다. 이에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면, 똑같이 다른 게시판에 복사해서 논쟁을 붙인 뒤 다시 의견을 취해 옮기기도 한다.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관련 분야 서적을 표절해 인기를 얻는다. 차세대 전지(電池) 전문가인 박철완 전 드렉셀대 초빙교수는 "요즘 '과학전도사'라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서 지식인으로 대우받는 이들이 있는데 남의 이야기와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리플리 용인하는 사회가 더 문제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가짜 인생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방송인의 학력 위조, 정치인의 청문회 거짓말 사건이 터지면 큰 문제처럼 떠들썩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대수롭지 않게 복귀한다"면서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20~30대에게 '사이버 공간은 적당히 나를 미화해도 괜찮은 곳'이라는 인식을 심고 있다"고 말했다. 박철완 교수는 "연구하는 리플리는 학문적으로 사기를 쳤기 때문에 지식과 학문의 파괴자인데도, 별다른 검증 없이 방송에 나오거나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홍보업체 직원 김모씨는 "파워 블로거 중에 가짜 이력을 내놓는 경우도 있는데, 블로그를 통해 홍보되는 상품 매출에 영향을 미칠까봐 그냥 넘어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거짓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을 제재할 방법은 거의 없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한동훈 경감은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한 경우라고 해도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했거나 이를 통해 금품을 얻는 사기 행위가 입증되지 않는 이상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사칭 계정을 만드는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이나 동영상을 동의 없이 복사해 옮기면 미국은 2년 이하, 캐나다는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Why?' 조선일보 土日 섹션 보기

[전현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