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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FOCUS] 처참하게 막내린 전세계 공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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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장면 1. 2011년 10월 20일.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하수구에 숨었다가 뒤쫓던 성난 시민군과 맞닥뜨렸다. 무려 42년간 무자비한 철권 통치를 했던 그는 최후의 순간에 "쏘지마"라고 외치며 목숨을 구걸했다. 휴대폰으로 촬영된 마지막 영상에서 카다피는 피가 흥건하게 묻은 옷을 입은 채 잔뜩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를 붙잡은 젊은 청년들은 활짝 웃었고, 결국 한 시민의 권총에 의해 사살되고 말았다.

장면 2. 비밀경찰을 동원해 국민 6만여 명을 처형한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그는 1989년 크리스마스날 헬리콥터를 타고 도주하려다 부인 엘레나와 함께 시위대에 붙잡혔다. 길바닥을 질질 끌려다녔고, 결국 시민들이 체포 2시간 만에 구성한 인민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현장에서 총살되고 말았다. 1971년 북한을 방문한 뒤 김일성의 우상화 정치를 모방한 것으로 유명했던 독재자다.

테러리즘에 기반한 독재를 가리켜 '공포정치(La Terreur)'라고 부른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당은 1만5000여 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정부가 공포정치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는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행한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생생히 웅변한다.

집권 기간 4500만명을 숙청했던 스탈린,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히틀러 그리고 그들의 공포정치를 모방했던 수많은 독재자들의 최후가 예외 없이 그랬다.

성난 시민들의 손에 그 자리에서 목숨이 끊긴 독재자들에 비하면 정식 재판을 받거나 해외로 망명한 독재자들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1979년 집권 후 '바빌론의 영광'을 부르짖었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을 주도했고 쿠웨이트를 침공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량살상무기(WMD) 조작 논란 속에 2003년 12월 외딴 농가에서 미군의 '붉은 새벽' 작전에 의해 붙잡혀 2006년 사형이 집행됐다. 칠레의 무자비한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7년간 군사독재에 저항한 좌파 인사, 민주화운동 인사 등 무려 3197명(공식 기록)을 숙청했다. 그의 통치 체제는 '피의 독재'라고 불렸다.

하지만 칠레 국민은 무력 시위가 아니라 비폭력 저항을 택했다. 1991년 선거에서 패한 뒤 피노체트는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귀국 후 300여 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 중 사망했다. 국민이 자신의 시신을 훼손할까 두려워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옛 유고슬라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전쟁범죄와 학살죄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200만명을 죽인 킬링필드의 학살자 폴 포트(캄보디아)도 1979년 베트남군 침공으로 정권을 상실한 뒤 수년간 게릴라전까지 벌였으나 결국 체포됐다.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는 1989년 미국의 침공으로 실각한 뒤 미국으로 압송돼 재판에 회부됐다. 1992년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한 다음 2010년에 다시 프랑스로 인도돼 징역 7년형을 받았다. 파나마로 송환된 2011년에는 무려 징역 60년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차가운 감옥에 있다.

지구상에는 여전히 공포정치를 자행하는 몇몇 독재자들이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는 이복형과 고모부마저 눈 깜짝하지 않고 죽이는 북한의 김정은이 있다.

앞서 살펴본 독재자들의 최후에는 몇 가지 분수령이 발견된다. 무자비한 철권 통치로 민심의 저항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주변 국가들도 결국 동요하게 된다는 점이다. 때로 주변국과 내부 저항세력이 결탁해 정권을 전복시켰고, 때로는 강대국의 비호가 끊기며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독재자는 결국 길바닥을 끌려다니다 성난 군중에 의해 처형되거나 국제전범재판소의 냉엄한 심판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쳤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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