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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토요 FOCUS] 엘리트 망명·민심 동요…中 지원 끊을땐 김정은체제 `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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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남 암살 후폭풍…정권 위기로 이어지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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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혈통'의 장자였던 김정남이 독극물 테러로 살해당했다. 김정은 공포통치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3대 세습 김씨 왕조가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극단적 방법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외부 시선은 충격 속에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의 잔인한 통치 방식에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더해지면 북한 고위층 내에서 정권 붕괴의 방아쇠가 당겨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고위층의 잇단 탈북 행렬 △중국 내 거부감 확산 △북한 중산층 내 동요 등 북한 내부 균열 신호로 분석되는 현상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 체제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면종복배(面從腹背)' 현상이다. 김정은 앞에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게 태영호 전 영국주재 공사 등 탈북한 북한 고위층의 공통된 증언이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자신의 사저에서 김정은에 대해 비판적 언사를 늘어놓은 것이 도청돼 결국 처형됐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고위층 인사들은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증언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김정은의 공포통치는 권력기반 강화에 기여했으나 장기화하면 북한 체제의 불안 요소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김정남 관련 소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나 고위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이야기가 확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종의 정책을 움직이는 데 김정남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무리할 일이 없다"며 "이렇게 히스테리에 걸릴 정도로 김정은 정권이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은이 공포통치로 사회를 이끌어가지만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긴장 상태가 장기화하면 권력층 내부에서 불안과 동요가 커지면서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공포정치로 김정은과 간부층 괴리

김정은 체제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탈북 유형 변화에서 감지된다. 정부가 공식 집계한 한국 입국 탈북자는 매년 1000명 이상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생활고 등으로 북한을 떠나는 사례가 많았던 반면 최근엔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과 더 좋은 생활 환경에 대한 동경이 결합된 '이민형 탈북'이 늘고 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탈북민에 대한 조사를 보면 과거에는 배고픔이나 생존 때문이었는데 최근에는 미래나 가치, 꿈 등의 답변이 나온다"며 "탈북민이 살던 지역도 과거 북·중 접경, 즉 오지 지역에서 최근에는 대도시 거주민 비율이 급증하고 지식인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작년부터 북한 간부층의 탈북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공포정치로 말미암아 간부층과 김정은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 데 따른 결과라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독일 분단 때도 동독인 대거 서독행

이 같은 탈북 유형 변화는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돼 있을 때 다수의 동독인들이 서독을 오갔고 결국 베를린장벽 붕괴의 배경이 된 것을 감안하면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독일은 분단 당시 동·서독 간 다양한 교류를 통해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추진했던 동방정책의 기본은 '접근을 통한 변화(Change through Approach)'였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독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교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며 "이런 과정이 지속되고 축적돼 결국 통일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정권 유지를 외부에서 돕는 가장 큰 세력인 중국의 태도 변화 여부도 주요 변수다. 독일 통일이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발생한 것처럼 중국 내에서도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 사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중거리 미사일 도발에 이어서 터져나온 김정남 독살은 김정은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안감과 우려가 급격히 올라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중국 내부에서는 "북한의 예측 불허 행태가 당혹스러울 정도"라며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엄호하는 데 지친 상태에서 제3국에서 독살까지 저지르는 상황은 중국 지도부의 국제적 위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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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유지 위한 통치자금 유입 차단

김정은 체제가 스스로 내부 균열을 향해가고 있다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다. 지난해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5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안 2321호는 북한에서 김정은이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현금 유입을 막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석탄 수출에 상한을 정하고, 광물 수출금지 품목을 늘리는 등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해 조치가 세밀하게 추가됐다. 미·일 등이 독자적으로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의 경제 활동을 제한하는 것도 김정은 정권의 현금 창구를 막는 차원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북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한 것처럼 북한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윤활유인 통치자금을 옥죄는 방법이다.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층과 북한 체제의 핵심 계층은 전체 인구의 약 10%로 추정된다.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이고 김정은과 공동운명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 정권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김정은은 그 반대급부로 북한 내에서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호혜적 관계"라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개최된 북한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중국산 45인치 LED 텔레비전을 선물로 받았다. 당대회 참가자는 약 3600명으로 추산됐다. 이와 함께 평양 시민들에게는 한 달치 배급이 보너스 개념으로 지급됐고 가구별로 당과류도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정은이 체제 유지를 위해 들이는 비용의 근원을 차단하면 결과적으로 핵심 계층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올 급변사태 대비해야

김정남 독살로 북한 체제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독일 통일이 어느 순간이 예고 없이 찾아온 것을 교훈 삼아 북한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급변 사태로 이어지기에는 북한 내부의 감시 체제와 정부 조직이 상당히 견고하다는 평가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에 따르면 △북한 최고지도자와 체제의 동일시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이해 부족 △공안기관과 군대의 영향력 과소평가 △경제 중심적 접근의 한계 등은 북한의 조기 붕괴론을 낳은 배경이다.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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