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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뉴스 깊이보기]"결국 노동자 계급에 못 박을 것" 전문가들이 본 '트럼프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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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자를 위해 아주 좋은 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취임과 함께 ‘트럼프노믹스’(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 것이다.

과연 트럼프노믹스는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약일까 독일까.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노믹스가 미국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트럼프 적자... 빚으로 고통받은 역사적 경험 되돌아봐야”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 적자’ 문제를 지적했다.

로고프는 16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쓴 칼럼에서 보수 정부가 재정적 신중함을 선호하고, 재분배에 경도된 진보주의자들이 거대 적자를 ‘공짜 점심’으로 본다는 금융위기 이후의 신화는 보다 근본적인 ‘적자의 정치 경제’를 놓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당이 정부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을 가질 때마다 우선사항들에 자금을 대기 위해 대출하려는 강한 인센티브를 가지는데, 이는 그들이 굳이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가 세금과 지출이라는 우선사항들에 공격적으로 예산적자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로고프는 트럼프 재임시 보다 빠른 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막대한 대출이 따른다면 국제금리가 급등하기 쉬울 것이고, 이는 이탈리아 공공부문 대출 같은 전 세계의 취약 부문들과 신흥국 시장의 기업대출에 심대한 압박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만약 트럼프가 무역장벽을 동시에 세우지 않는다면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성장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 보수 정부가 적자를 내켜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가 여전히 낮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적 교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기적인 부채 경감을 위해 많은 빚을 떠안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들로 고통받은 역사적 경험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식 접근은 혁신의 심장은 물론, 노동자 계급에도 못을 박을 것”

노벨 경제학을 수상한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의 협동조합주의(coporatism)가 미국의 ‘혁신’을 죽음으로 이끌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펠프스는 17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쓴 칼럼에서 트럼프 대선 승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러스트벨트(제조업이 쇠퇴해 낙후된 중서부 공업지대)에 거주하는 보수적 백인 유권자들의 분노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면서 “이들이 의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의 ‘좋은 일자리들’이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배움, 승진의 전망을 제공했지만, 이런 일자리들을 잃어버리면서 삶에서의 중심적인 의미의 원천을 잃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펠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단지 규제를 철페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열어나가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트럼프는 혁신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그의 팀은 오히려 혁신을 훼손시키는 위험한 접근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전통적인 ‘혁신국가들’에서 남성의 경제활동참가가 감소하고 있는 반면,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무역국가들’에선 증가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주범은 잃어버린 혁신이지 무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펠프스는 또 트럼프는 세후(after-tax) 기업들의 이윤을 높이는 공급 측면에서의 조치가 소득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또한 공공부채의 폭증과 궁극적으로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트럼프가 포드나 캐리어 같은 기업들을 괴롭히고 구글 같은 기업을 돕는 것이 생산과 고용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라면서 “이는 1930년대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정부 이후 볼 수 없었던 협동조합주의”라고 비판했다.

펠프스는 “트럼프가 이런 주장을 유지한다면 기존업체를 보호하고 신규기업들을 막기 위한 사업 분야에서의 더 많은 간섭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경제의 동맥을 막고, 혁신을 막을 것”이라고 했다. 특정 기업을 비난하는 트럼프의 행태가 유망한 기업들의 시장 진입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펠프스는 “정책결정자들은 되살아나는 협동조합주의의 위험성을 반드시 일깨워야 한다”면서 “그러한 접근은 혁신의 심장에 못을 박도록 위협할 것이고,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정실인사와 기업 괴롭히기 사이를 오갈 것”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도 트럼프의 산업정책의 ‘결함’을 지적했다.

로드릭은 10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성공’ 이면에는 기업과 정부 간 밀접한 상호작용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기술적인 혁신의 상당수가 대출 지원이나 정부 구매 등 구체적인 정부 프로그램들에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나 인텔 같은 기업도 기업 공개 전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지점이 트럼프식의 산업 정책이 시험받아야 할 곳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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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 정부 경제팀 인사들의 지명은 트럼프가 정부가 월스트리트나 거대 금융과의 유대관계를 끊으려는 의도가 거의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로드릭은 지적했다. 또 한편으로 트위터를 통한 정책구상은 트럼프가 제도화된 대화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로드릭은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정책이 정실인사와 (기업) 괴롭히기 사이에서 왔다갔다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한다”면서 “그것은 일부에게 이득을 줄 것이지만 미국 노동자의 대다수 또는 전체 경제에는 조금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기업 괴롭히기는 중세 시대 초야권의 현대판”

하이디 무어 디지털뉴스 미디어 컨설턴트는 기업을 괴롭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트럼프식 경제 정책의 허상을 보다 더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20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기업 CEO들이 트럼프를 달래도록 설득하고,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을 자신의 공으로 차지하는 트럼프의 방식은 중세 시대 영주의 초야권(droit de seigneur·영주가 부하의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던 권리)의 현대경제판”이라고 비꼬았다.

무어는 “주요 미국 기업들은 지금 트럼프가 주고객인 고객서비스센터에 있다”면서 “그러나 트럼프의 기교에는 한계가 있고, 그는 자신이 완전연소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들은 복잡한 조직이고, 한정된 자원들을 갖고 있다”면서 “어떤 기업이 트럼프의 자랑질을 지원하고 그의 후광을 얻기 위해 일부 일자리를 남길지도 모르지만 백악관의 눈길을 덜 끌면서 다른 부문의 일자리를 아주 쉽게 자를 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의 에어컨 제조업체 캐리어는 트럼프 당선 직후 멕시코로의 공장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캐리어가 인디아나 공장에 투자할 것이라고 약속한 1600만달러의 대부분은 공장을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무어는 예상했다. 이는 일부 일자리들이 결국 없어진다는 뜻이다. 무어는 또한 그런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700만 달러의 세금 감면이 필요했던 점도 지적하면서 “만약 트럼프가 임기 내 매달 이같은 거래를 한다면 3만5000개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3조3600만달러를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무어는 미국 경제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그러한 바늘을 손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수천개의 기업과 작은 사업들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데 트럼프는 그에게 신문 1면을 줄 수 있는 대여섯개 대기업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나 혼자 그걸 고칠 수 있다’는 약속이 그를 백악관으로 보냈지만, 실제 경제는 선거운동 홍보영상처럼 간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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