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불길 속 아이들 구한 '굴착기 영웅'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장비 운전 20년 안주용씨

화성시 방교초등학교 화재 현장 학생·교사 굴착기에 태워 구출

지난해 12월 16일 안주용(46)씨는 경기 화성시 방교초등학교에서 300m 정도 떨어진 택지 조성공사 현장에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쯤 방교초교 본관 왼쪽에 있는 급식실 건물 1층 주차장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나며 연기가 건물 위로 솟아올랐다. 학교에는 131명의 아이와 교직원들이 있었다. 4층짜리 신축 건물이 30분 만에 타버렸다.

그는 "아이 수십 명이 우르르 학교를 빠져나오길래 모두 대피한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10여 분 뒤 연기를 피해 2층 난간으로 몰려든 아이들을 발견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어요. 타고 있던 굴착기를 그대로 몰아 정신없이 학교로 갔어요." 운동장 쪽 철문이 굳게 닫혀 소방차도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씨의 굴착기가 영화처럼 철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덕분에 소방차가 줄줄이 들어와 화재를 진압했다.

조선일보

안주용씨가 경기 화성시 작업장에서 굴착기를 운전하고 있다. 20년 경력의 안씨는 지난해 12월 16일 방교초등학교에서 불이 났을 때 굴착기로 초등학생들을 구조했다. /안주용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사와 아이 20여명은 4m 높이의 난간에 갇혀 있었다. 1층 주차장에 있던 승용차 10여 대에 불이 붙어 타이어와 연료통이 터지는 상황이라 건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때 안씨는 굴착기 버킷(바가지)에 아이들을 태워 내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굴착기 버킷을 2층 난간에 바짝 대 아이들을 구조했다. 현장에 있었던 교사 이경민(33)씨는 "7~8세 아이들이 접이식 사다리로 내려가기를 무서워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며 "굴착기가 나타나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관들도 안씨의 굴착기 버킷을 타고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중장비 운전 20년 경력의 안씨는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쌍둥이 딸을 둔 아빠다. 그는 "삼 남매가 '친구들이 카카오톡으로 아빠가 나온 기사를 공유한다'면서 자랑스러워 하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안씨는 2년 전 급성간부전으로 고생하다 간을 이식받았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고위험군 환자로 분류돼 몸이 아프거나 다쳐 병원에 가더라도 약 처방을 받기가 쉽지 않다. 아내 장문화(46)씨가 걱정하자 안씨는 "아이들이 고립돼 있는데 그럼 어떡하느냐, 가야지"라고 했다.

경기 화성소방서는 이 '굴착기 영웅'을 찾기 위해 방교초교 인근 공사장을 수소문했다. 처음 소방서에서 연락이 왔을 때 안씨는 화들짝 놀랐다. "저희 작업장에서만 20여 명, 인근 아파트 공사장에서도 20여 명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소방관들을 도왔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저만 상을 주신다니 죄송한 마음에 거절했어요." 화성소방서는 그를 설득해 유공자로 추천했고 지난 13일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표창을 수여했다. "각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남의 자식 같지가 않아요. 그날 현장으로 함께 달려간 공사장 작업자 40여 명 모두에게 주신 상을 제가 대표로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선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