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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라진다던 전세, 다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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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끼고 집 산 뒤 시세차익

‘갭 투자’성행하며 매물 증가

서울은 52%서 55%로 늘어

입주 늘고 금리 인상 예고

내년엔 60%대로 올라갈 듯

중앙일보

주택 임대시장에서 전세 거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증가했고 비교적 적은 돈으로 아파트를 사들이는 ‘갭 투자’ 물건이 늘어난 영향이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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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한 아파트를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내놓은 이모(53)씨는 며칠 전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예년만 해도 일찌감치 계약이 됐을 로열층 물건이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서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결국 전세로 돌려 다시 물건을 내놨다. 이씨는 “요즘은 전세 물건이 넉넉하다 보니 월세를 택하는 수요가 확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의 귀환일까. 최근 주택 임대시장에서 전세 거래 비중이 늘고 월세 비중이 줄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월세가 빠르게 늘면서 전세가 주는 추세가 뚜렷했다. 저금리 여파로 전세금을 은행에 묻어두기보다 월세를 받으려는 집주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임대시장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월세 시대’의 가속화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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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량 중 55.6%가 전세였다. 2012년 66% 수준이던 전세 거래 비중이 지난해 상반기 54%까지 내려간 뒤, 반 년 만에 1.6%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빠르게 줄던 서울의 전세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51.7%에서 하반기 55.4%로 6개월 새 3.7%포인트 올랐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7단지는 임대 매물 10건 중 7건이 전세다. 1년 전만 해도 전세 물건은 한 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씨가 말랐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세 물건이 늘었다. 현재 나와 있는 임대 물건 17건 중 7건이 전세다. 1년 전엔 전세가 전체 임대 물건의 20% 수준에 불과했다. 목동 초이스공인 허균 대표는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전세가 나오면 바로 계약됐는데 지금은 주택형별로 3~4개씩 전세 물건이 나와 있다”고 말했다.

전세가 늘어나는 배경엔 지난 2~3년 사이에 성행하던 ‘갭(Gap)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갭 투자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집값과 전셋값의 차액만 투자해 집을 산 뒤 시세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이다. 서울에선 성북·강서·노원구, 경기도에선 군포시 등에서 갭 투자가 활발했다. 길음동의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전세를 끼고 집을 산 투자자들이 전세로 매물을 내놓으면서 전세 물건이 조금 쌓였다”고 귀띔했다. 전셋값 상승세가 둔화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전셋값이 많이 오를 땐 집주인이 재계약 때 가격 상승분을 월세로 돌린다. 하지만 요즘 같이 전셋값 상승폭이 주춤하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을지공인 서재필 대표는 “집주인이 월세를 내놓는다고 해도 찾는 수요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전세로 돌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증가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29만여 가구로 앞선 3년간(2013~2015년) 연평균 24만여 가구보다 20%가량 늘었다. 신규 아파트는 입주 때 집주인이 아파트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 물건을 한꺼번에 내놓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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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제가 강화된 영향도 있다. 예전엔 집주인이 저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수익률이 높은 월세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출금리가 오르고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이런 투자는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전세 물건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전세 공급처’인 입주 물량이 올해부터 2년간 78만여 가구가 쏟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2년치 물량으론 1기 신도시가 조성된 1990년대 이후 최대치다. 여기다 국내 금리 인상까지 본격화하면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하는 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내년 안에 전세 거래 비중이 60%대로 올라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한국은 소득에 비해 집값이 비싸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집주인이 많다”며 “이들은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기 때문에 임대시장에서의 전세 거래 비중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전세보증금 규모는 450조~500조원으로 추정된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황의영 기자 hwang.eu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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