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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찬욱 "여배우 강압 노출? 노동현장 인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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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라제기의 영화담담] "감독 힘들다... 영화과면 전과를"

한국일보

박찬욱 감독이 19일 한국일보 페이스북 영화채널 '영화, 좋아'의 라이브 방송 '오동진 라제기의 영화담담'에 출연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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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려고 감독이 됐나 자괴감이 들었다.”

박찬욱(54) 감독이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8회 올해의 영화상(주최 한국영화기자협회) 시상식에서 올해의 영화인 상을 받은 뒤 밝힌 수상 소감 중 일부다. 지난해 ‘아가씨’를 선보인 뒤 “49일 동안 해외를 돌아다니며 몇 백 개 인터뷰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하루라도 감독을 그만 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자괴감’을 거론했다. 대중은 잘 모를 감독의 고충을 토로하는 우스개에 시국 비판을 담았다. 뚜렷한 자기 색깔로 사회에 대한 시선을 명확히 드러내온 박 감독다운 발언이었다.

박 감독의 ‘아가씨’는 지난해 충무로가 남긴 주요 성과를 넘어 세계 영화계의 커다란 성취로 남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서 꼽은 주요 영화 중 하나였고, 연말 수상 소식도 이어졌다. 로스앤젤레스(LA)비평가협회와 샌프란시스코비평가협회 등 여러 지역 비평가협회로부터 외국어영화상을 릴레이로 받았다. 박 감독의 근황과 행보, 영화계에 대한 생각 등이 어느 때보다 궁금할 수 밖에. 한국일보 페이스북 영화채널 ‘영화, 좋아’(www.facebook.com/movielikekorea)의 라이브 방송 ‘오동진 라제기의 영화담담’은 19일 박 감독을 초대해 그와 ‘아가씨’, 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네티즌들의 실시간 질문 댓글에 박 감독이 답하는 식의 실시간 문답도 이뤄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아직 ‘아가씨’ 감독으로서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 영화를 완성하면 그 작품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칸영화제 가야지, 와서 홍보 인터뷰 해야지. 그리고 개봉하고 무대 인사 다니지… 또 확장판 만들어야지, 블루레이DVD도 만들어야지… 아직까지 일하고 있다. 2월초엔 개봉을 앞두고 일본을 가야 한다. 지난해 4월에 영화가 완성 됐는데 여태까지 이렇게 지낸다.”

-그래도 좋은 성과가 있어 기쁘지 않나.

“미국 여러 지역에서 비평가협회상을 정말 많이 받았다. 20개 가까이다. 그런데 상금도 없고 트로피도 아직 받은 것은 없다(웃음).”

-LA비평가협회 상 받았을 때 특히 화제가 많이 됐다.

“LA가 영화의 중심 도시니까. 제가 받은 상보다도 류성희 미술감독의 미술상이 더 기분 좋다. 촬영, 미술, 음악 감독 분들이 영화에 기여가 큰 데 비해서 대중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없다. 그래서 이런 상을 받으면 집안 어른들, 특히 부모님이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냐며 뿌듯해하고 대견해 하신다. 그래서 이런 상은 참 가치 있고 보람 있다.”

-박 감독은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 이후 10년 정도는 무명 감독이었다. 부모님이 언제쯤 놀라시고 대견해 하셨나.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JSA) 때문에 떴다. ‘JSA’ 전엔 걱정만 많이 끼쳐드렸다. 유명한 건 둘째치고 생활이 어려웠으니까. 애는 낳았는데 분유 값 벌기도 힘들었으니까.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 벌리고 얻어먹고 살진 않았고, 그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야 만 했는데 그 모습 지켜보시며 걱정 많이 하셨다. 그나마 ‘JSA’ 이후로는 적어도 그런 걱정에선 벗어났으니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됐다.”

-‘JSA’로 흥행에 성공할 때까지 8년 정도 힘든 생활을 하며 영화 평론도 많이 썼지 않나?

“그렇다. 글뿐 아니라 라디오, TV 등 여기저기 나갔다. 케이블TV가 그때 막 생겨서 출연해서 신작 소개 등을 많이 했다.”

-당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인터뷰도 했던데.

“타란티노 감독이 ’펄프 픽션’(1994) 만들어서 한국 와서 홍보할 때 영화 전문 월간지 ‘스크린’ 의 의뢰를 받아서 인터뷰 하러 갔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이무영 감독(‘휴머니스트’)이 통역으로 함께 갔다. 그땐 이 감독도 아니었다. 둘이 가서 B무비라든가 여러 컬트 영화들에 대해 신나게 대화를 나눴다.”

-영국에선 한국영화하면 박찬욱 감독과 ‘올드보이’를 첫 번째로 거론한다. 여러 국가 다니며 가장 환대 받는 곳이 따로 있나.

”영국이 확실히 그렇다. 배운 변태들이 많아서(웃음)… 다 비슷한데 제가 좀 놀란 건 멕시코 등 중남미 쪽에 (나와 내 영화에 대해)정말 열광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멕시코에서는 어떤 뜨거운 반응이 있었나.

“‘올드 보이’를 당연히 좋아한다. 내 진정한 팬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내 나름대로 있는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봤느냐, 보고 좋아하느냐이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멕시코에 많이 있더라.”

-한국에선 그리 흥행하지 못한 영화인데.

“애초에 흥행을 목표로 기획된 영화는 아니다. CJ엔터테인먼트가 당시 HD 장비를 기술적으로 시험해보기 위해 기획된 저예산 영화였다. 상업적 부담 없이 실험적이라 할 수까진 없지만 자유분방하게 (여러가지를)시도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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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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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엉뚱한 질문이 들어와 있다. ‘‘아가씨’에 등장하는 냉면과 냉면 사발은 자체적으로 준비한 것인지 냉면집에서 구매한 것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음식은 맛보는 게 아니라 보는 거니까 ‘플레이팅’ 잘하는 분들 모셔다가 선발해서 했는데 그분들이 양식, 일식, 한식 등 다 만든 듯하다. 특정한 냉면집에서 배달해온 것은 아니다.”

-아가씨’가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한국대표로 출품됐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서 ‘아가씨’를 배급하고 있는 아마존이 굉장히 큰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었고 반드시 무언가를 받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아예 (대표로)뽑히지 못해서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심사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받아들 일 수 없다. 내가 (문화계)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서 배제됐다고 한다면 (출품작으로 뽑힌)‘밀정’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변호인’의 제작자와 주연배우(송강호)가 참여한 작품이다. (’밀정’의)김지운 감독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데 나보다 더 까만, 더 블랙이다.”

-유명 영화제 수상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뽑혀 간다거나 상을 받는다거나 하면 혹시라도 한국에서의 흥행에 도움될까, 홍보 효과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실제로 외국에 (영화를)팔 때 가격이 좀 차이가 난다. 경쟁부문에 들었던 영화라면 조금 더 받게 되고, 계약상에 무슨 상을 받으면 얼마를 더 낸다는 조건이 달리기도 한다. 저처럼 아주 저예산 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감독 입장에선 영화에 제작비를 댄 사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손해보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친다. 그런 의미에서 (칸영화제는)굉장히 가치 있는 영화제이니 제가 무관심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그런 영화제 입맛에 맞는 영화를 기획하는 게 아니냐고 질문한다면 그건 전혀, ‘1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소신을 위해서라도 블랙리스트 사건 같은 게 없어야 할 것 같다.

“블랙리스트의 관건은 어떤 불이익을 명단에 있는 사람에게 주느냐이다. 나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아 영화를 못 만들진 않았다. 나는 그렇다 쳐도 이런 일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영화, 연극 하나 못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라서 끝까지 파헤쳐서 뿌리를 뽑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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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촬영장에서 배우 하정우 김민희와 촬영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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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에서 여배우에게 강압적으로 노출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최근 일고 있다.

“그런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다 계획되고 다 공유되어야 한다고 까진 주장하지 않는다. 감독의 연출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심지어 각본도 없이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신체 노출이나 강도 높은 정사 장면을 찍을 때는 반드시 어떤 내용이고 왜 찍는 지 등이 배우와 공유되어야 한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상식으론 예술이란 이름으로 합리화되긴 어렵다. 노동현장에서의 인권문제라고 생각한다.”

-촬영장은 산업 현장이 아니고 예술의 현장이라 뭐든지 용인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 극단적이고 독특한 예술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예술을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비판도 들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박 감독의 영화 주요 소재가 복수다. 최근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복수의 주체로 삼고 있는 이유는.

“강한 여성 주인공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고, 동성애 소재를 다루고 싶은 생각도 계속 있었다. 마침 ‘핑거스미스’라는 원작 소설을 만나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아가씨’는 그래서 만들 게 된 것이니 꼭 여성이 복수하는 영화여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 건 아니다. 그런데 여성 주인공이 상업영화나 대중 문화에서 약한 존재, 소극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흔하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날 필요가 있고 그러면 큰 쾌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훨씬 더 드라마틱해지고 통쾌해지고 쾌감이 커질 거다. 이런 영화들이 상업적인 면에서 봐도 가능성이 큰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제목 ‘아가씨’는 누구를 가리키는 가. 히데코(김민희)인가, 숙희(김태리)인가.

“하녀인 숙희가 자신의 상전이지만 알고 보면 사기 치려고 하는 목표물이기도 한 히데코를 부르는 호칭으로서의 아가씨였다. 제목을 ‘아가씨’로 하면 그것은 부르는 사람도 포함되어있고 불리는 사람도 포함되어있으니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을 다 대변하는 제목이라 봤다.”

–영어 제목은 ‘The Handmaiden’(하녀)이다.

“원제인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속어로 소매치기, 사기꾼을 상징한다. 숙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영화를 만들면서는 히데코를 가리키는 느낌이 강한 ‘아가씨’로 고쳤다. 영어는 ‘하녀’란 뜻으로, 프랑스에서는 아가씨를 지칭하는 ‘마드모아젤’로 개봉했다. 독일 제목은 하녀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다. 일본 제목은 아가씨를 뜻한다.”

-최근 한국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상업영화계가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고 늘 그래왔다. 그런데 상업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너무 공식에 의존해서 검증된 방식대로만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문제다. 그런 영화만 만들어내면 사람들이 싫증을 내고 상업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럼 또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역사가 항상 작용과 반작용을 겪으면서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에 물렸다면 인디 영화들을 찾아보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대형 투자배급사 영화가 늘 비슷비슷하다고 언론이나 관객들이 계속 지적하고 불평해야 정신 차리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예술영화 감독, 상업영화 감독 둘 중에서 선택하라면.

”내가 외국에 갈 때 예술영화 감독으로 분류된다. 특히 미국에 가면 그렇다, 미국 관객들은 자막 달린 영화를 잘 안 본다. 아무리 오락 영화를 만들어도 외국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주 작은 규모로 배급된다. 거기선 뭘 해도 예술영화 감독이다. 나는 한 번도 상업영화 바깥에서 작업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각본을 쓰고 편집할 때 첫째 대중들이 이해할까 둘째 그들이 좋아할까를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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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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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철이 주연한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을 가끔씩 보거나 떠올리나.

“절대 안 본다. 내 흑역사다. 세계 어디서든지 내 회고전을 한다고 할 땐 데뷔작과 두 번째 영화 ‘삼인조’(1997)는 빼고 한다. ‘JSA’를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계속 그렇게 알았으면 좋겠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있나.

”너무 많아 얘기하기 어렵다. 며칠 전에 영화 ‘클라우드 오브 실스 마리아’를 뒤늦게 봤는데 (프랑스 배우)줄리엣 비노쉬 연기가 그 전과는 또 다르더라. 아주 젊을 때 비노쉬와 다른 새로운 매력을 봤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비노쉬다. 그렇지만 비노쉬를 생각하고 각본 쓰는 식으로 난 작업 하지 않는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특정 배우 생각하고 각본 쓰는 감독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배우고 싶다.”

-차기작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작품들이 몇 개 있나.

“한국영화도, 미국영화도 있다. 미국영화는 각본들을 많이 받고 있지만 좋은 서부극도 있고 공상과학(SF) 영화도 있다. 이들 중 몇 개 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그 중에 과연 얼마나 성사가 될지, 또 언제 성사가 될지 모른다. 미국사람들과의 일은 참 오래 걸리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릴 수 없다.”

-최근 한국영화엔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하나씩 출연한다.

“연기만 잘한다면 좋은 일인 것 같다. 특히 독립영화에서 그런 일이 자주 있던데, (아이돌그룹 멤버가)연기를 잘한다면 서로에게 도움 되는 일이다.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이 아예 그런걸 전혀 안 하는 사람보다는 확실히 연기를 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게임광고를 찍어 화제가 됐다. 어떤 마음이었나.

“내가 운영 중인 영화사 모호필름의 직원들 월급을 생각했다.”

-평소 게임은 하는가.

“광고 출연을 위해 좀 해봤다. 일본에 ‘메탈기어 솔리드’라는 게임을 만든 코지마 히데오라는 개발자가 있다. 친구 사이라서 게임이 새로 나오면 자꾸 보내준다. 친구인데 전혀 안 해보면 미안하니까 조금 해봤다. 광고 촬영한 게임은 찍기 전에 좀 해본 정도다.”

-게임시장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인물이니 모델도 되고 연출도 하게 된 듯하다. 게임에 대한 생각은.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은 게임을 젊은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악마적인 놀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창조적인 분야이고 이를 가지고 노는 일도 개인의 선택이다. 바둑 두는 것과 뭐가 다른가 생각한다.”

-‘JSA’처럼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주는 영화를 더 제작할 계획이 없냐는 질문이 있다.

“늘 그런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나 ‘아가씨’도 따뜻한 영화이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를 가리킨다면 ‘복수는 나의 것’이 그렇다. ‘JSA’에 가까운 영화, 왜 안 하겠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그런 영화 또 만들고 싶다.”

-노래방 애창곡은 뭐냐는 질문이 댓글로 달렸다.

“노래방 안 간다. 송강호씨가 노래방 좋아해서 술을 많이 마시면 가고 싶어한다. 그럼 난 집에 간다. 어쩔 수 없이 몇 번 같이 가는데 대개 듣기만 한다. 꼭 불러야 한다면 ‘JSA’에 사용된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른다.”

-‘아가씨’의 마지막 장면은 동성애 침실장면이다. 반감을 살 수 있는데 굳이 넣은 이유는.

“처음 원작을 읽을 때, 끝까지 읽기도 전에 떠올렸던 장면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굉장히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거창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정사가)자연스럽고 우리가 즐기는 인생의 큰 부분으로써, 행복의 추구로써, 거리낌 없는 쾌락의 추구로써, 또 이렇게 고생 많이 한 두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보상으로써, 그런 행복의 절정으로 영화를 끝내겠다고 생각했다. 사랑 영화를 끝낼 때 사랑의 행위로 끝내는 건 나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런 영화가 없었을까 늘 생각했다.”

-2015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이 서강대 철학과 후배인데.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공연 구경만 해봤다. 좀 만나 볼걸 그랬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만나지겠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됐다. 모르는 사이인데 내가 억지로 전화를 하기도 그랬고, 내가 기다렸다고 할 수 있다. 한번은 만날 뻔 한적도 있다. 2002년 대선 기간에 각자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두고 토론하는 방송이 있었다. 난 민주노동당이 후보를 지지했고 해철씨는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였다. 신해철 이길 사람 누가 있겠나. 난 안 되겠기에 출연을 거절했다.”

-대학에서 영화과 전공하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더 늦기 전에 전과하라고 말하고 싶다(웃음). 영화는 너무 많은 인내와 운도 필요하다. 특히 감독은 쉽게 권하기 힘든 직업이다. 프로듀서는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계속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감독은 참 권하기 힘들다.”

-자신도 감독 활동에 운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나.

”많이 그렇다. 특히 ‘JSA’를 만들게 된 것이 운이 좋았다. 두 편을 흥행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완전히 말아 먹었는데, 그런 경우 세 번째 기회는 오지 않는다. 한번 망해도 다시 영화 만들기 어려운데 세 번째 기회가 온 것도 놀랍고 그게 ‘JSA’란 건 더 놀라운 일이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뤄지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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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19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오동진 라제기의 영화담담'에 출연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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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도 캐스팅에 어려움 겪나.

“‘JSA’ 이후로는 없다. 그런 의미로 운이 좋다. 물론 항상 첫 번째 각본을 받아 본 배우가 무조건 캐스팅되진 않는다. 거절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더 좋은 대안이 나타났기 때문에 괜찮다. 오히려 거절해준 사람이 고마워질 정도로 좋은 캐스팅을 하곤 했으니까.”

-최동훈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감독 등과 오랫동안 교류해 왔다. 요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

“영화 얘기보다도 다른 잡담을 많이 하는 듯하다. 맛 집 아니면 영화제 갔던 얘기 등을 하고 작품 얘기를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지금 막 각본 완성했다, 편집 중이다 이럴 땐 그 작품에 대해 조언을 서로 구한다.”

-서로 거물이 되고 나이도 있어 예전보다는 조언하기 조심스럽지 않나.

“표현은 조심스럽게 예의 갖추되 내용은 솔직하게 해야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보람이 될 수 있다. 어떻게든지 솔직하게 하려 한다. 나도 내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 그런 것을 요구한다.”

-솔직한 평가 들으면 그래도 불편하지 않나.

”나 같은 경우 아내가 그런 말 할 때 상처를 입는다. 아내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조금이라도 지적이나 비판이 있으면 상처가 된다. 류 감독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내는 내가 못 견뎌 하는 것을 아니까 굉장히 자제한다. 영화 전체를 놓고 틀려 먹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작은 부분, 디테일에 대한 지적들이다. 의견을 많이 받아들여서 고친다. 각본, 편집, 음악 쓸 때 아내 의견이 많이 들어간다.”

-모바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될까.

”세계적인 대가 감독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이제는 슈퍼 히어로 영화만 영화관 가서 보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들이 있다. 미국에선 좀 진지하고 어둡고 무겁고 지적인 이야기는 스토리는 다 TV드라마로 나온다. 한국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 시대를 대비해서 영화를 준비하고, 적응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늘 던지고 있다. 그런데 만들 수 있는 한 극장용 영화를 더 하고 싶다. 나는 색깔이라든가 음향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정말 섬세하게 다듬어서 만든다. 목숨 걸다시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집에서, 또는 이동 중에 작은 화면으로 이런 걸 감상하고 음미할 순 없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못 견디겠다.”

-새해 목표가 있나.

“신작을 빨리 정해서 적어도 두 개의 각본 완성하기를 목표로 정하고 있다.”

-’아가씨’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 관계 때문에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생활이라 내가 언급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가씨’ 만드는 과정에서 나에게 언제나 협조적이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덧입혀서 뛰어난 연기를 한 점, 여러 구설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홍보에 있어서 끝까지 책임 다한 그런 배우로만 김민희를 기억한다.”

-최근에 본 영화는.

“넷플릭스로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게 된다. 최근에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다. 미국 대선 때 진보-보수 대표 논객들의 한 TV토론이다. 정말 흥미진진했다. 영화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재미있게 봤다. 약간 (손발이)오그라드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아주 교묘하게 스토리를 잘 끌고 가서 아주 재미있게 봤다.”

-최근 본 영화는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아수라’를 추천한다. ‘아가씨’때문에 외국 다니다가 ‘아수라’를 최근에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런 영화일 줄 몰랐다. 정우성 연기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김성수 감독님이 흥행결과를 보고 좀 의기소침했다는 말을 듣고 후배들과 모여서 술 한잔을 같이 했다.”

-팬들과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해달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지난해가 최악의 한 해인 동시에 최상의 한 해이기도 했다. 나도 광화문에 자주 갔었지만 광장에서의 활기, 활력, 또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연대가 거의 쾌락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고양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경험 해볼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에 그런 열정과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그런 해를 만들어 가자.”

대담=라제기 기자 정리=최유경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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