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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Why] 경품 노리는 사연꾼… 라디오의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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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들 거짓 사연 감별법

인터넷 화제의 글 숙지… 경품 맞춤 사연도 의심

비슷한 문체, 같은 주소지… 인적 사항 기록해 공유

조선일보

MBC 라디오 작가 김모씨는 처음 막내 작가로 일하게 됐을 때 선배가 건네준 파일을 잊지 못한다. 파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씨, '거짓 사연꾼'이라는 청취자 제보 두 번 있었음. △△△씨, 매일 사연 보내는데 어떨 땐 본인이 재수생이라고 하고 어떨 땐 주부라고 함….' 김씨는 "그게 라디오 방송가에서 나도는 '사연꾼 블랙리스트'라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거짓 사연을 꾸며 적어 보내거나, 하나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이름을 바꿔가며 여기저기 보내 경품을 타내는 이들을 방송가에서는 '사연꾼'이라고 부른다. '블랙리스트'는 사연꾼을 가려내려고 방송작가가 만들어 공유하는 명단이다. 많은 방송작가들이 매일 쏟아지는 사연 속에서 진짜 이야기와 사연꾼의 거짓 사연을 가려내느라 애쓰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감별법을 갖게 되고 블랙리스트도 만들게 된다.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을 오래 써온 KBS 라디오 작가 박모씨는 "직업병처럼 종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화제의 사연을 검색해본다"고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회자되거나 SNS에 공유되는 화제의 사연을 숙지하는 건 사연꾼 감별의 첫 관문이다. 많은 사연꾼이 이렇게 유명한 사연을 조금씩 바꿔가며 재탕·삼탕해서 글을 보내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런 유명한 사연들과 비슷하게 쓴 글은 일단 소개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름과 주소도 모두 기록해 놓고 예의 주시한다"고 했다.

'경품 맞춤형 사연'도 작가들의 의심을 받는 경우다. KBS 라디오 작가 황모씨는 "예를 들어 경품이 면도기라면, 면도기가 주제인 사연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특정 선물을 달라고 이처럼 강하게 어필하는 경우를 확인해보면 꾼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글쓴이 주소 등 인적 사항은 매번 바뀌는데 글쓴이 문체가 비슷한 경우, 이름과 전화번호는 매번 다른데 당첨자 주소지는 계속 같은 곳일 때도 의심 대상이다. 실제로 2013년엔 한 40대 남성이 180여명의 주민번호와 주소지를 도용해 2000여건의 거짓 사연을 방송국에 보내 백화점 상품권·압력밥솥·전기요 등 경품 8000만원어치를 챙겼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이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지를 경품 수령지로 적어놓고 택배원이 확인 전화를 하면 자신의 주소를 알려주는 식으로 물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CBS 라디오 작가 권모씨는 "이젠 방송국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취합해 공유하기도 한다"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사연 속에서 청취자의 진심이 담긴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탐정 청취자'는 큰 힘이 된다. 방송작가 김모씨는 "'이 사연은 몇 달 전 다른 프로그램에서 들은 내용'이라는 식으로 청취자들이 제보해주는 경우가 제법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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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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