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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전두환이 서울에 일등급 병원 차려준다 약속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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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진~일본~대만 거쳐 남한에 오기까지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일본 도착

남북한 사이 낀 일 정부엔 ‘불청객’

박종철 사건 궁지 몰린 전두환 정권

‘대만 연계’ 카드 압박해 국내 데려와


1987년 1월15일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군 특수부대 군의관이었던 김만철씨는 일가족을 데리고 북한군의 경비망을 피해 탈북했다. 엔진 고장으로 닷새간 표류한 그의 가족은 1월20일 저녁 일본 후쿠이현 미쿠니항에 닿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일본인들이 호의적이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하지만 일본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벌어진 복잡한 외교 상황 때문에 일본 정부에 김만철 가족은 ‘골치 아픈 불청객’이었다.

일본 쓰루가항으로 이동한 김만철 가족이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총련과 한국 정부는 번갈아가며 그를 만나기를 청해왔다. 그가 “우린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총련 쪽 사람들을 쫓아내도 막무가내였다. 이들은 ‘김만철 동무, 수령님이 기다리시는 북으로 돌아가자’는 펼침막을 배에 붙인 채 그의 가족이 탄 배 주변을 돌며 북과 꽹과리를 쳤다. 애초부터 북한을 떠날 생각이 없었던 그의 큰처남이 이 소리를 듣고 “총련으로 보내달라”며 침대에 누워 단식을 했다.

남한 정부 쪽에선 ‘거류민단’ 사람들이 찾아왔다. 김만철씨는 이들도 돌려보냈다. 그러자 민단 사람들을 이끌고 왔던 나고야 총영사는 다시 이웅평과 김신조를 데리고 왔다. 이날이 1월30일 밤이었다. 김신조는 김만철과 같은 청진 출신이었다. 그의 가족이 남한행을 결정한 데엔 김신조와 이웅평의 역할이 컸다. 김만철은 대만으로 다시 찾아온 이웅평을 “내가 알기로 이미 죽은 사람, 안기부가 만들어낸 대타”라 생각했다.

당시 어선 후지산마루호 선장이 불법어로 혐의로 북한에 억류 중이었던 일본의 속내는 복잡했다. 김만철 가족의 한국 망명을 도우면 북한을 자극할 수 있었고, 그렇다고 한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주일 한국대사관엔 그의 가족을 즉각 국내로 오게 하라는 긴급 훈령이 떨어졌다. 그의 가족이 청진항을 출항하기 전날인 1월14일 고문 도중 사망한 박종철의 소식은 19일께 알려져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 입장에서 김씨 가족은 고문치사 정국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시선을 돌릴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 정부는 1월22일 일본 정부에 김만철과 일가의 한국 인도를 공식 요청했다. 대통령 전두환이 김만철 가족의 한국행 협조를 요청하는 친서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에게 보내기도 했다. 김만철 일가 망명이 한·일 양국의 정상 간 교섭 대상으로 격상된 것이었다.

훗날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재춘 당시 주일 참사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일본 외무성이 은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했다. 김만철 가족을 불법입국이란 이유로 한·일 인접수역의 공해상에 추방해 표류시킬 테니 한국 쪽 함정에서 인수하라는 것이었다. 이 참사관이 즉시 한국으로 귀국해 만난 외무부 장관은 그를 데리고 청와대 옆 ‘궁정동 안가’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 참사관은 당시 정권의 실력자인 장세동 안기부장과 이기백 국방부 장관, 오자복 합참의장, 최상화 해군참모총장, 김인기 공군참모총장 등을 만났다. 이날 이곳에서 사실상 군사작전 수준의 회의가 있었다고 이 참사관은 기억했다.

하지만 이후 청진호의 엔진 상태를 이유로 일본이 ‘공해상 추방’ 안을 거둬들였고 ‘대만 연계행’이라는 새로운 해법이 제시됐다. 한국 정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전 대만 대사와 박수길 외무부 차관보 등을 대만에 급파하는 등 가능한 외교 자원을 총동원해 대만 정부를 설득했다. 2월7일 밤 김만철 일가를 태우고 일본 공군기지를 이륙한 자위대의 YS-11기는 이튿날 대만의 중정 국제공항에 내렸다. 김만철 가족은 대만 교외의 특수기관에서 20여 시간을 머문 뒤 다시 2월8일 저녁 대한항공 727기를 타고 한국으로 입국했다.

김만철은 15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남조선으로 오기만 하면 서울에 일등급 병원을 차려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준다고 약속했다.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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