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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청춘직설]침묵은 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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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묵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흔히 새해와 함께 언급되곤 하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호기롭게 새 출발을 하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앞날을 향한 기대보다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크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보다는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앞선다. 새해 인사말을 뭐라고 건네야 할지 고심하다가 나는 겨우 “평안하다”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새해 복을 받는 것보다 탈이 없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무사히 잘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았다.

경향신문

청문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청문회에 소환된 주요 증인들은 불출석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리 코치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연출을 잘해서인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과히 평안해 보였다. 중요한 질문에는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 소관이 아니다같이 준비된 답변을 했다. 청문회는 말 그대로 문제의 내용을 ‘듣는’ 자리인데 물어보는 사람만 있었다. 침묵 혹은 침묵을 가장한 회피가 청문회 내내 이어졌다. 계속해서 청문회를 시청하다가는 화병이 날 것 같았다.

입에 자물쇠를 걸고 침묵하는 자는 도리어 화를 내고, 진실을 말한 자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잠적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침묵은 하나의 표현 방식이고, 그것이 믿음이나 기대감을 가져다줄 때도 있다.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의 침묵은 더없이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큰일이 닥치면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함구하게 된다. 이때의 침묵은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반면 청문회에서의 침묵은 신중함이 아닌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다. 침묵이 대책 없이 길어지면 얼마나 답답한지를 절절히 깨닫는 현장이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침묵의 소중함에 대해 역설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침묵을 통해 자신들의 이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 금을 그었다. 이때의 침묵은 금(金)이 아니라 너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긋는 금이었다. 그들의 침묵은 정치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화에서 소통이 될 리가 없다. 우리가 박근혜 정부에 가장 크게 실망한 것도 다름 아닌 ‘불통 정치’, 그야말로 막무가내식 정치가 아니었던가.

영국의 역사가이자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침묵은 말보다 웅변적이다”라고 했다.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청문회를 지켜보며 확실히 침묵이 웅변적이라고 느끼는 때가 많았다. 침묵이 긍정임을, 국정농단이 분명히 이루어졌음을, 우리가 피땀 흘려 낸 세금이 사익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게 사실임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었다. “말할 수 없다”거나 “모른다”는 말이 아무런 숙고 없이 기계적으로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높이 들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토요일마다 광장에 모이는 시민들을 보면 경이롭다. 새 마음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 무너져버린 희망을 어떻게든 재건하기 위한 의지가 맹추위에도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집회 도중에 소등 행사를 하기도 했다. 기나긴 웅변 속에서 잠시 침묵이 있을 때 침묵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된다. 묵묵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촛불은 침묵이되 침묵이 아니다. 하나의 촛불은 한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기에는 작고 힘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꺼질 듯 말 듯 하늘거리기 때문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둘 모여 한 공간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면 간절한 ‘말’이 된다. 우리의 ‘대화’가 된다. 정부를 향한 힘찬 ‘웅변’이 된다. 여기서 타오르고 저기서 흔들리며 촛불은 더 생생하게 말하고 있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쓴 글 <나는 고발한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땅속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진실이 자라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땅 위에 있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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