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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고]올바른 ‘불행 사용법’ 몰랐던 류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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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 문양이자 인류 최고의 길상 문양 ‘스와스티카’와 나치의 상징 문양 ‘하켄크로이츠’의 유사성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다.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혈통과 인종적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스와스티카를 회전시켜 나치의 상징물로 채택했다.

경향신문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해 12월31일 정유라의 성적을 조작해 학사 특혜를 준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류철균은 그해 11월20일 카카오톡에서 자신의 기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상태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변경했다. ‘나는 불행의 사용법을 알고 있다.’ 류철균과 나는 카톡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순간 류철균이 불행을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다루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류철균을 내리덮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마음이 일어났다.

세상만사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라 해도, 적어도 불행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를 취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자신의 불행에 대한 것이라 해도 마침내 그것은 타인의 불행에 대한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눈을 감고, 우리 시대에 만연한 불행의 면면을 떠올린다. 얼굴이랑 가슴이랑 여기저기가 불붙듯이 매우 화끈거린다. 다음 순간 중국으로 전래되어 만(卍)자로 자리 잡은 스와스티카 문양의 신비로움을 떠올리며, 머릿속의 실타래가 풀린다.

언젠가 류철균이 카톡 상태메시지를 ‘나는 불행하다’로 변경하기를 바란다. 만약 류철균에게 ‘불행에 대한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류철균은 구속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박근혜에게 ‘불행에 대한 진정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박근혜는 탄핵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박근혜가 눈물 흘리며 ‘나는 불행하다’라고 혼잣말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박근혜의 머릿속에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의 비명이 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발파음처럼 자꾸만 터지지 않을까.

박근혜를 비롯하여 최순실, 차은택, 우병우, 류철균 등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의해 소환, 체포, 구속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불행에 대한 진정성, 타인에 대한 공감의 단서를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기고 다시는 그것을 가지고 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단번에 늙어버린 자의 피로감이 발견될 따름이다.

류철균이 <인간의 길>이라는 소설에서 미화했던 박정희 대에 시작되었고 박근혜 대에 이르러 한층 증폭된 우리 사회의 병폐는 ‘불행에 대한 진정성’과 ‘타인에 대한 공감’의 실종이다. 어처구니없는 불행의 폭탄을 우리 사회 한복판에 작렬케 한 세월호 아이들의 사망 및 실종 사건의 장본인이 박근혜인 것도, 그로 인해 박근혜가 탄핵에 이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위로와 치유, 힐링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상황이 나빠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인이 된 문화평론가 이성욱은 이인화(류철균)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몇 개의 소설을 고스란히 표절한 것임을 낱낱이 밝혔다. 이인화는 그것을 온전히 시인하는 동시에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혼성모방 기법이라고 강변했다. 혼성모방 또는 패스티시 또는 문학적 조각이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면, 혼성모방의 ‘끝판왕’으로 스와스티카를 모방한 하켄크로이츠만 한 것이 있을까. 리얼리즘 또는 모더니즘의 정색이 진부하다고 해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농담은 ‘류철균과 이인화’(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단군 이래 최고의 농단인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한복판에서 발군의 학자·문학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류철균이 카톡 상태메시지에 다음의 문장을 덧붙이기를 바란다. ‘나는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기 위해 나의 불행을 사용한다.’ 부디 류철균 그리고 박근혜가 마음속 깊이 불행을 경험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불행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 수 있기를. 소망컨대, 하켄크로이츠가 스와스티카 또는 만자로 회귀할 수 있기를.

<강영희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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