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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정윤수의 오프사이드]‘그라운드 밖’ 강화할 수장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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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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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위원으로 유명한 신문선 명지대 교수가 제11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선거에 단독 출마했으나 23표 중 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반대는 17표, 무효는 1표였다. 연맹은 사임 의사를 밝혔던 권오갑 전 총재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게 됐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선거의 의미와 후폭풍은 상당하다.

한국 프로축구는 매 경기 헌신하는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단지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감각과 쾌락과 가치를 위하여 1년 내내 스탠드에서 함성을 지르는 팬들의 열망에 비해, 그 현실적 운영은 다소 불합리하고 그 재정적 기반은 취약하다. 따라서 한국 프로축구의 미래 발전 가치 또한 불투명하다. 프로축구의 본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 이를테면 과연 프로축구가 구매를 유발시키는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제까지 연맹을 이끌어온 집행부는 확신에 찬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야 권 전 총재가 사임 의사를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베트남 등의 축구 시장은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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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프로’라고 한다면 스폰서십, TV 중계권료, 경기 당일의 매출 수입이 일정하게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K리그의 경우 구단의 모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스폰서십을 담당한다. 이 부분이 각 구단의 한 해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모기업의 홍보 전략이 수정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운영에 너무 부담이 될 경우 이 ‘수입’에 의존하는 각 구단은 출렁거리게 된다.

나머지 분야, 즉 TV 중계권료와 경기 당일의 매출 수익은 사실 ‘수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중계권료는 21세기 들어 종목을 불문하고 모든 프로 스포츠가 사활을 건 엄청난 시장이다. 모두가 축구장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축구를 즐기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보는’ 스포츠 시장에서 K리그는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전혀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동북아 3개국이 작년을 전후로 하여 장기적인 중계권료 협상을 마무리했다. 일본의 J리그는 2026년까지 연간 평균 2000억원이 넘는 계약을 했고 중국 슈퍼리그도 2020년까지 연간 평균 2500억원을 상회하는 계약을 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각 지역의 프로축구 활성화를 통한 정치적 중화주의 네트워크 창출이라는 이른바 ‘축구굴기’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중국 프로축구의 성장 속도는 눈부시다. 새로운 축구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호주 리그도 2023년까지 연간 평균 500억원가량의 중계권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K리그는? 연간 평균 65억원가량이다. 그라운드 안의 한국 축구는 동북아를 이끌 만한 수준이지만 경기장 밖의 리그 운영과 수익 창출은 일본과 중국에 비하면 동네 축구만 한 상황이다. 수많은 문화 콘텐츠가 경쟁하는 이른바 문화 소비의 시대에 걸맞게 각국 연맹들은 경기력 향상과 함께 경기장 안팎의 수많은 요소들이 일상적 쾌락과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유독 K리그는 현실적인 구매 유발이나 미래적 투자 가치가 있는 문화 상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다양한 문제들이 파생한다. 무엇보다 K리그의 힘이 총재에게 집중된다. 정몽준(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유상부(포스코), 곽정환(통일그룹), 정몽규(현대산업개발), 권오갑(현대오일뱅크)에 이르기까지 한국 프로축구에 대해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지닌 총재라는 자리의 주인은 언제나 기업인이었다. 총재의 결정적인 역할은 연맹 운영에 필요한 수십억원의 스폰서 수입을 확보하는 것. 역대 총재들은 자신이 직접 관련 있는 기업이나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35억원가량의 스폰서 수입을 충당해왔다. 이것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믿고 쓸 수 있는 안전판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연맹 운영이나 K리그 현장에서의 다양한 실험이나 미래적 가치를 위한 파격적인 모색은 늘 차순위로 밀리게 된다. 기발하고도 다채로운, 당장은 위험해 보이고 그저 돈을 낭비하는 듯하지만 축구장을 매력적인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은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총재 1인에게 기대는 일이 반복돼왔다.

신문선 후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단적이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좌충우돌한다는 인상평이 지배적이다. 사실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그의 당선 가능성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불린 신 후보는 결국 그 오래된 찻잔을 뒤집어엎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또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축구는 영원하고, 총재 선거는 언젠가 다시 다가온다. 신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제시한 비리 근절과 경영 공정성 확보, 프로축구 자생력 확대, 상벌 규정 강화, 구단 재정 건전성 확보, 중계권 가치 확대,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연맹 운영 등은 비단 신 후보의 주장만이 아니라 연맹 안팎의 거의 모든 축구인들이 당장의 문제로 인식해온 것이다.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은 대동소이하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지향과 가치를 안고 K리그를 이끌어 가는가, 그것이 자신의 삶이며 운명인가. 그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신 후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언젠가 이 삶을 자기의 운명으로 여기는 사람이 몸을 던져야만 한다. 이 점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그 가능성이 당분간은 거의 없다는, 다시 말해 앞으로도 오랫동안 K리그는 자생력 없이 기업인 총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또한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유의미’했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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