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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조호연 칼럼]박근혜 리스크, 트럼프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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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박근혜-트럼프 조합의 이중 위기에 처할 뻔했다. 미국 우선주의, 예측불가의 도널드 트럼프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런데 한국 외교를 벼랑으로 몬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직전이다. 덕분에 박근혜 리스크와 트럼프 리스크가 동시에 발호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한국 외교의 재앙적 상황이 해소된 건 아니다. 박근혜 리스크는 유령처럼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방침을 확인하면서 “중국이 반대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불에 기름을 끼얹자는 것인가. ‘사드 보복’ 행태는 불만스럽지만 공연히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당장 “한국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트럼프의 ‘경제교사’로 알려진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을 만나 “대미 무역 흑자를 축소해 나갈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도 부적절하다. 고도의 외교적 전술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공식 요구가 없는데 먼저 한국의 입지를 좁힐 필요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지난 연말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 “알아서 긴다”고 지적받은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떠오른다. 이 정도의 역량과 인물로 국제질서의 대변환을 예고하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감당해야 한다니 답답하다.

트럼프의 아시아 전략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부상하는 중국 견제다. 하지만 방법은 크게 다르다. 오바마는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견제 수단으로 삼았지만 트럼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미·소 냉전 시절 리처드 닉슨이 핑퐁외교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압박한 바로 그 수법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미국을 강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국제사회 규범과 상식에 반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고립정책을 펴온 유럽연합과 미국의 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게 국제관계라지만 그것이 원칙은 될 수 없다. 우크라이나 군사개입 등 러시아의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하는 것도 곤란하다. 한국으로서는 기존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에 러시아가 가세하는 G3 체제로 바뀌는 국제질서의 지각변동 움직임이 더 절박한 문제다. 이런 중대한 변화가 국제사회 평화와 안정보다 이해당사국들의 이익보호 차원에서 안배되는 퇴행성도 비정상이다.

트럼프는 국내외 정책에서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 예측불가능하고 통제불능의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면 겁먹은 상대가 알아서 긴다는 전략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 흔들기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타협하거나 양보할 카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핵심 이익을 건드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한 포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선 기간 중에도 한밤중에 트위터를 날리고 수시로 정책적 입장을 바꿨다. 충동조절을 못한다거나 자기절제를 안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동맹국이건 적대국이건 협상 파트너들은 불확실성에 혼란을 느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취임 전 지지율이 44%로 역대 대통령 당선자 중 최저이고, 취임 축하 노래를 할 가수를 구하지 못해 망신당하는 트럼프는 현실의 반쪽 모습일 뿐이다. 워싱턴의 희극적인 풍경과 별개로 자국 이익만 생각하며 국제사회적 책임은 회피하는 ‘트럼프 리스크’가 한국과 세계를 점점 옥죄고 있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한국 외교 자산의 곳간은 텅 비어 있다. 대외관계의 지렛대인 남북관계는 진작에 파탄났고, 균형외교의 핵심 축인 한·중관계는 사드 한 방에 험악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한·일관계 역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 묶여 있다. 북한은 핵보유 완성 단계로 달려가고 있다. 외교 역량을 북핵에 올인하면서 전략적 카드를 소진했지만 결과는 이처럼 초라하다. 박 대통령이 위기 때면 동원하는 ‘이순신의 배 열두 척’ 전략도 별무소용인 형국이다. 천재 전략가인 이순신 장군인들 배 한 척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게도 구럭도 다 잃은 한국 외교의 출구를 유일호식 저자세 외교, 김관진식 호기 외교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대변환이 필요하다. 갈라진 국론을 결집하는 작업이 최우선이다. 사드, 위안부 합의, 북핵 모든 현안을 광장에 펼쳐놓고 토론하는 것이다. 대외 협상력은 국민적 공감대에서 나온다. 소통과 통합, 박근혜 정부가 가장 소홀히 한 바로 그 지점이 새로운 외교의 출발선인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리스크의 맞춤 대처법이기도 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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