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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남정호의 시시각각] 페이스북이 정치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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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부르는 ‘반향실 효과’ 막아야

SNS상 거짓 뉴스 억제도 절실해

중앙일보

남정호 논설위원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으로 지명하자 난리가 났다. 35세 풋내기의 장관 발탁은 명백한 족벌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왜 그랬나”고 기자들이 다그치자 케네디는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다들 잘했다는데 왜들 법석이죠? 우리 어머니도 잘했다고, 우리 동생들도 훌륭한 인사라고 하던데.” 물론 곤란한 질문엔 농담으로 눙치는 케네디식 화법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새겨둘 진실은 있다. 이해관계 때문이건, 혈연·지연 탓이건 편견에 찌든 의견이 모아진들 진정한 여론, 진정한 집단지성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 직후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 중 다수가 선거 결과를 납득하지 못해 패닉에 빠졌다. 승리를 전혀 의심치 않았던 까닭이다. 승리 자축파티가 예정된 뉴욕 제이컵 재비츠 센터에 수천 명이 모여든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주변 누굴 만나도, 페이스북을 봐도 도널드 트럼프 편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 당선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 미 전역을 휩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선거 후 미국 사회, 특히 주류 언론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번 대선의 온갖 문제점들을 뒤졌다. 그 결과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반향실(反響室·echo chamber) 효과’로 인해 인식을 왜곡하고 정치적 극단화를 부추긴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반향실이란 소리를 메아리처럼 울리게 만든 방이다. 여기서는 무얼 말하든 똑같은 소리만 되돌아온다. 이렇듯 페이스북 등으로만 세상을 접할 경우 비슷한 의견에만 둘러싸여 편견에 빠지는 현상이 반향실 효과다.

도대체 왜 이런가. 우선 세상사 유유상종인지라 페이스북 친구끼리는 정치 성향도 대개 비슷하다. 자연 페이스북 친구가 올리는 내용은 본인 생각과 맥을 같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걸 계속 읽다 보면 고정관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으로 늘 반(反)트럼프 소식만 접했던 힐러리 지지자로서는 온 세상이 그를 혐오한다고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탓에 미 언론은 대선 후 SNS에 의한 이념의 양극화와 균형감각의 상실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적으로 규정한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부터 홈페이지에 ‘진보 소식, 보수 소식(Blue Feed, Red Feed)’이란 코너를 마련해 양쪽이 얼마나 다른 뉴스 생태계에서 사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마련된 ‘트럼프’ ‘힐러리’ 등 여덟 가지 이슈 중 하나를 클릭하면 화면 왼쪽에는 진보주의자가, 오른편에는 보수파가 보고 있을 페이스북상 뉴스들이 쭉 나온다. 얼마나 서로 편파적인지 단박에 알게 된다.

게다가 페이스북 측은 특정 사용자로부터 ‘좋아요’ 추천을 많이 받은 기고자의 글일수록 화면 위쪽으로 올라가도록 알고리즘을 짜놨다. 클릭 수를 높이려는 페이스북 전략이 반향실 효과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선거 내내 난무했던 SNS상 거짓 뉴스도 이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였다. 이는 자극적인 스캔들성 이야기일수록 클릭 수가 오르는 인터넷 속성 탓도 컸다. 클릭 수로 돈을 버는 이들에겐 엄밀한 사실 여부는 관심 밖이었다. 실제로 한 네티즌은 “힐러리의 e메일 게이트를 수사하던 FBI 수사관이 살해됐다”는 완전히 날조된 기사를 인터넷에서 퍼뜨려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문제는 가짜 기사를 양산해도 딱히 제재 방법이 없다는 거다.

슬프게도 이런 SNS의 폐단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선 더 심각하다. 대선이 치러지면 선거 후 국민 대화합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지금처럼 정치 성향이 다른 후보라면 가짜 기사로라도 무조건 매도하고, 이런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는 방치해선 안 된다. 이대로라면 누가 대통령이 되던 절반 가까운 국민이 진심으로 그를 증오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온 국민이 단결해 국난을 헤쳐나가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기자 nam.j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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