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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현종 칼럼] 트럼프로 인해 국정 어젠다로 부활한 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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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논리 안 따르는 트럼프

그의 일관된 특징은 예측 불능

한국, 수동적 골키퍼 정신 버리고

한·미 FTA로 317억 달러 투자와

미국에 1만8530개 일자리 창출

78억 달러 무기 수입을 강조해야

중앙일보

김현종 WTO재판관·외대 교수


트럼프 당선인이 트위터 메시지를 날릴 때마다 전문가들은 진의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트럼프의 표현은 모호하고 일반 전문가들의 사고방식으로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곧 완성시킨다는 발표에 트럼프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반박했다. 뒤이어 불공정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쓸어 가면서도 북핵 문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중국을 맹비난했다. 영문을 보면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지만 중국을 압박해서 북핵 해법을 찾거나 직접 협상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일반 전문가들 논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특징은 예측 불능이다. 아마 예측 불허가 더 정확할 것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중 “우리는 국가로서 예측 불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핵시설 폭격 여부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는 “나는 예측 불능하고 싶다”고 답했고 대만 총통의 당선 축하 전화를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받으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역린을 건드렸다. 사실 치밀한 준비로 연출된 것이라 한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수중 드론을 나포하자 트럼프는 반환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은 5일 후 반환했다. 생각 없이 그런 언급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2001년에 중국 전투기가 미국 전투기를 하이난섬에 상륙시켰을 당시 정찰기 안에 들어가지도, 분해하지도 말라는 경고를 중국이 따랐던 사례를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차기 정권이 트럼프를 상대할 때 염두에 둘 것은 트럼프 반대자들은 그의 모호하고 즉흥적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숨은 뜻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반면 그의 지지자들은 트럼프 메시지의 진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모호한 트럼프의 메시지는 ‘마초’적인 각료들과 백악관 보좌진이 치열한 경쟁을 해 해석하고 이행할 것이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보다 더 정확한 번역은 ‘중국으로 인한 죽음’)을 저술한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과 파산한 철강공장들을 인수해 억만장자가 된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레이건 대통령 당시 철강 분야에서 수출자율규제를 철강 수출국들에 강요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정책을 수립할 것이다.
중앙일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제조업을 대표하는 부서가 백악관에 들어섰다. 트럼프는 중국 때문에 미국의 5만 개 공장이 폐쇄됐고 2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3600억 달러 상당의 기술이 도난당했다고 생각한다. 중국 상품에 징벌적 관세 45%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고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술 접근을 차단시킬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GDP 2조5000억 달러와 2만8000개 기업 중 30%가 중국 자본과 기업이다.

트럼프는 보호주의 무역을 원하는 미국 중산층의 깊은 정서를 잘 파악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동안 113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미국인들은 트럼프로 인해 캐리어 에어컨 제조 일자리 1100개가 멕시코로 이전하지 않은 것에 열광한다. 트럼프는 공장이 해외로 이전할 경우 징벌적 관세 35%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심지어 일본 도요타가 신설 중인 멕시코 공장에서 제조되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자 주가가 3% 하락했다. 포드는 멕시코에 16억 달러의 공장 설립을 취소한 대신 미시간주에 6억 달러를 투자, 증설해 7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도 트럼프의 예측 불능함에 자진해서 1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일본 기업인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가 트럼프를 만나 500억 달러의 투자와 수만 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고 중국의 마윈 알리바바 대표는 100만 개의 일자리를 약속했다. 각 회사들의 주가는 6%, 1%씩 상승했다. 우리는 김관진 안보실장이 방문했다. 트럼프를 만나고 있어야 할 우리 기업인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특검 검사들을 만나고 있다. 손정의나 마윈 같은 기업인들은 벤처정신이 뚜렷하다. 반면 뉴턴의 사과와 잡스의 애플 이후로 제3의 사과를 창조해야 할 우리 기업인들은 창업주의 3, 4세로서 골키퍼 정신에 머물러 현재의 경제위기에 비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317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1만853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미국의 대한국 서비스 무역흑자가 10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78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했음을 강조해야 한다. 장명진 방사청장의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언은 골키퍼 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국익·국격·국력 증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는 백전백패다.

◆약력
전 통상교섭본부장·유엔 대사


김현종 WTO재판관·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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