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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밀착취재] "무료급식 5명 중 1명꼴 2030"…거리의 '취업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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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취업난·가정해체 압박/ 정서적 불안감 등 심각성 더해/ ‘IMF형’ 중장년 노숙인과 달리 독립심 옅어 홀로서기 어려움/ 빈곤 등 사회구조적 문제 영향/“특성 맞춘 프로그램 마련해야”

세계일보

사진= gettyimagesbank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 13일 오후 서울역 근처의 무료급식처 ‘따스한채움터’에 300여명의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구석에 앉아 떡국을 먹던 김정훈(가명)씨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원봉사자에게 식판을 내밀었다.

“조금만 더 먹을 수 있을까요?” “재료가 떨어졌어요. 죄송해요.”

노숙인치곤 매우 ‘어린’ 31세. 김씨의 현실은 그래서 더 처참했다. 지난해까지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꿈을 키웠다. 그는 “시험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결국 실패하고 나니) 방법이 없었다. 심리적 압박감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에 노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준(34·가명)씨는 5년째 노숙과 쪽방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정 불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온 뒤 돈을 모아 24세에야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는 돈’이었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학자금 대출로 4000만원의 빚을 졌다. 설상가상으로 주식에 손을 댔다가 돈을 날렸다. 학교 도서관에서 먹고자며 버텼지만 결국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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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청년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노숙인 하면 중장년의 남성을 떠올리기 쉽지만 20·30대가 노숙인의 10∼15%를 차지할 정도로 적잖은 청년들이 노숙을 선택하는 실정이다. 극심한 취업난과 가정해체 등의 문제에 짓눌리고 중장년과는 다른 정서적 불안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

15일 따스한채움터에 따르면 최근 무료급식처를 찾는 청년노숙인들이 부쩍 늘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 300여명 중 20%가량이 20·30대들”이라며 “잠을 자고 가는 사람들 대상으로 인적사항을 받을 때마다 (나이가 어려) 놀랄 때가 많다”고 전했다. 2012∼2015년 서울의 노숙인 쉼터 및 응급 잠자리를 이용한 이들 중 20·30대가 꾸준히 10%를 상회했다는 통계도 있을 만큼 거리로 내몰린 청년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가 청년들을 노숙으로 내모는 요인으로 꼽힌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청년노숙인들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박사라 활동가는 “청년노숙인들은 거처가 불분명하다 보니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이는 다시 주거불안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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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정서적 빈곤’ 등 개인적 경험도 문제로 지적된다. 청년노숙인은 특히 ‘IMF형’ 중장년 노숙인과 차이를 보인다. 결혼 등을 경험한 중장년 노숙인과 달리 사회생활 초입의 청년노숙인은 독립심, 책임감 등의 정서가 상대적으로 옅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청년노숙인들이 홀로서기에 보다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김소영 박사의 ‘청년노숙 경로에 관한 연구’는 이들의 사정을 좀 더 내밀하게 보여준다. 연구에 따르면 청년노숙인 대부분이 빈곤 등 구조적 문제와 가족 갈등을 겪었다. 이로 인한 정신건강 이상과 일탈, 취업 실패로 노숙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병원, 교정시설 등을 거친 후 노숙을 시작하기도 했다. 청년노숙인들이 노숙인시설에서 감내해야 하는 문제도 만만찮다. 중장년노숙인들의 타박과 소소한 시비, 도난 문제 등을 맞닥뜨려서다. 중장년노숙인들이 섞이다 보니 ‘나는 이제 청년이 아니다’라는 자괴감, ‘낙오된 느낌’에 시달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젊은 사람이 왜’라는 차가운 시선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가락질과 멸시가 청년들에게 좌절감과 무력감을 내재화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빈곤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음에도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라며 “청년들의 특성에 맞춘 청년노숙인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창수·임국정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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