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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송지은(26)씨는 1년 전 에미레이트항공에서 79만원대 항공권을 구입해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값이 싼 대신 두바이를 경유하는 노선이었지만 장점이 많았다. 두바이에 하루 머물면서 오전엔 부르즈칼리파 등을 보는 시내관광, 오후엔 석양이 멋진 사막 투어를 하면서 이국적인 관광을 즐겼다. 송씨는 “한국인 스튜어디스나 한식메뉴, 한국영화 등이 다 있어 기내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며 “올여름 휴가 땐 또 다른 중동 항공사인 에티하드항공으로 아부다비를 경유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동(中東) 지역에 기반을 둔 항공사들이 한국-유럽, 한국-남미, 한국-아프리카 등 장거리 노선을 ‘초특가’ 판매하면서, 장거리 여행객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 국적 대형 항공사들은 중·단거리 노선 시장은 LCC(저가항공)에 잠식당하고, 장거리 노선은 중동 항공사에 빼앗기는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바르셀로나 최저가 65만원… 정부 보조금 덕분?
현재 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를 경유하는 인천-아테네 왕복 노선을 최저가 74만원에 팔고 있다.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인천-취리히 노선을 69만원대에, 카타르 항공은 카타르 경유 바르셀로나행 노선을 65만원대에 내놓고 있다. 국적기로 가는 파리·로마 등 유럽 직항 노선은 최소 100만원은 줘야 하지만, 중동 항공사들은 훨씬 싼 값에 더 다양한 취항지를 선보이고 있다.
유럽뿐 아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티켓도 부에노스아이레스 136만원, 케이프타운 116만원(이하 에미레이트항공) 등 국적기의 절반 이하 가격에 내놓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남미는 주로 미국을 경유해 가지만, 최근 절반 가격의 티켓으로 중동을 경유해 가는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항공 3사는 흔히 ‘대형항공사’로 불리는 ‘FSC(Full Service Carrier)’여서 기내 서비스도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최고급 항공기로 불리는 A380이나 B787 등 신형 기종 보유 대수는 에미레이트항공이 92대, 에티하드·카타르 항공이 30여대로, 10여대 수준인 우리 국적기보다 더 많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신형 기종 50대를 추가 주문한 상태다. 에미레이트항공 관계자는 “비즈니스석을 구매하면, 집까지 고급 세단을 보내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며 “이른바 가성비(가격대비 성능)가 좋다”고 말했다.
국제 항공업계는 중동 항공사의 특가 공세가 중동 정부의 보조금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미국 3대 항공사는 2015년 중동 항공 3사가 2005년부터 10년간 약 496억달러(약59조원)의 보조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하고 제재를 요청해놓고 있다. 정부의 무이자 대여금이나 대출 보증, 공항세 면제, 공항 인프라 무상 제공 등의 불법 보조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선 프랑스·독일 정부가 같은 해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중동항공사의 불공정 경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동항 공사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아직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팀 클락 에미레이트항공 사장은 당시 “정부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며 “우리의 사업 확장은 탁월한 실적으로 쌓인 풍부한 현금 유동성과 금융기관을 통해 확충한 어음으로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장·중·단거리 모두 입지 좁아지는 대형 국적기
국내 대형항공사들은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면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미 중·단거리 노선은 저가항공(LCC)에 급속히 잠식되고 있다. 국내선은 이미 LCC에 57%까지 점유율을 내줬다. 국제선 역시 일본·중국·동남아 등 중·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수요를 뺏기면서 2014년 50%였던 점유율이 작년 말 44%까지 떨어졌다.
장거리 노선은 중동 항공사들의 공세로 위협받고 있다. 중동 항공 3사의 한국-중동 운항 횟수는 2010년 주 19회에서 현재 주 27회로 늘었고, 그 사이 중동 3사가 한국에서 중동으로 실어나른 여객 수는 2011년 50만명에서 지난해 70만명(11월까지) 수준으로 늘었다. 중동 직항이 있는 대한항공이 지난해(11월까지) 8만명 수송한 것과 대비된다. 중동 항공사들은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운항 횟수를 더 늘려달라고 국토부에 지속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는 국내 항공업계의 우려와 반발로 추가 운항에 관한 항공협정에 미온적이지만, 향후 소비자들의 요구가 늘면 추가 개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항공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정부와 업계가 불공정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제소·제재 등으로 시장을 어지럽히는 ‘황소개구리’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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