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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발자국이 말했다, 원시 인류는 一夫多妻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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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시에 ‘오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말처럼 까마득한 옛날 인류의 먼 조상이 남긴 발자국이 진화사 연구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이탈리아 페루자대 마르코 체린 교수 연구진은 지난 14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인류 진화과정을 새롭게 설명해줄 수 있는 366만 년 전 원인(猿人)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자국은 원시 인류의 가족과 거주 형태에 대해 다양한 논쟁을 불러왔다.

◇고릴라와 같은 일부다처(一夫多妻) 사회

탄자니아 연구진은 지난해 박물관 부지 선정을 위한 시추 과정에서 발자국 화석 12개를 발굴했다. 이후 이탈리아 연구진과 함께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이 박물관은 1978년 발견된 또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하려던 참이었다. 당시 발굴지는 이번 발굴지와 불과 150m 떨어져 있다.

체린 교수는 두 발자국 화석이 같은 원인들이 남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곳 모두 발자국들이 북서쪽을 향하고 있고, 보폭이나 발자국이 찍힌 토양도 같다는 것. 원인들은 화산재가 쌓인 곳을 지나며 발자국을 남겼고 여기에 비가 와 시멘트처럼 굳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조선일보

자료=e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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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굴된 발자국 12개 중 11개는 발크기가 261㎜로 키가 165㎝ 정도의 남성이 남겼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아파렌시스 중에 가장 큰 키이다. 나머지 1개는 발 크기가 231㎜에 키는 140㎝로 추정됐다. 1978년 발굴된 발자국의 주인은 모두 3명이다. 발 크기는 180~225㎜로, 키는 111~149㎝다.

체린 박사는 “발 크기와 키로 볼 때 라에톨리를 지나던 일행은 키가 큰 성인 남성 1명과 그보다 작은 성인 여성 3명, 아이 1명으로 구성됐다고 볼 수 있다”며 “고릴라 사회에서 우두머리 수컷이 여러 암컷과 새끼들을 거느리듯 아파렌시스 역시 같은 일부다처(一夫多妻) 사회를 구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오늘날 인류처럼 일부일처(一夫一妻) 사회를 구성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뒤집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윌리엄 하코트-스미스 박사는 “발자국이 여성의 것인지 아니면 키가 큰 청소년의 것인지도 모호하다”고 밝혔다. 즉 이번 발자국은 키 큰 남성이 키 큰 소년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남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미국 채텀대의 진화생물학자인 케빈 하탈라 박사는 “오늘날 인류의 신체 비례에 근거해 아파렌시스의 키를 추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추가 발굴을 통해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발자국은 아주 작은 지역을 시추해서 나온 것인 만큼, 발굴 지역을 넓히면 더 많은 발자국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시’ 생활 형태 두고도 논란

발자국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直立步行)이 오늘날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발바닥의 각 부분이 남긴 깊이와 발자국 사이의 간격, 방향을 볼 때 요즘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직립보행을 한 최초의 원인 ‘루시’를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루시는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32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이다. 복원 결과 키 120㎝의 20세 전후 여성으로, 발 모양을 통해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루시라는 별명은 당시 인기 그룹 ‘비틀스’의 노래 제목에서 땄다.

지난 8월 미국 텍사스대 존 카펠만 교수는 ‘네이처’지에 루시 화석을 컴퓨터 단층 촬영(CT)해 분석한 결과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달 초에는 다리보다 상체의 골격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한 점을 들어 루시가 나무를 잘 탔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즉 루시는 직립보행과 나무 타기를 결합한 생활양식을 가졌다는 주장이다. 이번 발자국 화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립보행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또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두뇌가 커진 후에 몸도 커졌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두뇌가 현생 인류의 조상보다 훨씬 작음에도 몸 크기는 거의 비슷해 앞으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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