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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탄핵 '운수 대통', 황교안은 '용꿈' 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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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극우' 지지 받는 '구체제의 막둥이'는 왜?

2015년 6월, 제 44대 국무총리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임명됐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임기를 시작할 무렵 여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보수 세력의 '옥동자'다. 보수 진영 안에서는 황 총리를 유력한 대선 주자로 밀어주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있다. 보수 진영의 유력 인사 여럿에게 들었다. 황 총리가 차기 대선 주자로 어떻느냐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은 아무도 황 총리를 주목하지 않지만, 그의 외모, 목소리 등 이미지부터, 두 번의 청문회를 거친 '청렴'의 모습, 그리고 통진당 해산 때 보여준 뚝심 등이 점수를 많이 얻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전이다. 이 대화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지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여전히 보수 진영 내 주류가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낡은 보수'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 첫째고, 박근혜라는 희대의 캐릭터 이후 보수 진영 내에서 차기 리더로 내세울만한 인물의 맥이 끊겼다는 점이 둘째다.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제군주' 리더십에서 기인한 것이다. 배신자가 생기면 골라내고 찍어내고 갖은 망신을 줘 내쫒았다. 물론 박 대통령의 그것을 '리더십'으로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입증됐다.

이제 황교안 국무총리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경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대,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3기), 그 후 평검사에서 시작해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린 후 박근혜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그는 비단길을 걸었다. 검사장 승진에서 물을 먹은 적이 한번 있지만, 그는 대체적으로 '모범생'이면서 정권의 요구에 충실한 '관료'로 평생을 살아왔다. 군대는 '만성 담마진'으로 면제를 받았다. 군 미필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프레시안

▲ 황교안 국무총리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황 권한대행이 국무총리직에 오른 것 자체만 해도 드라마틱한 일이었다. 예측 가능한 정치 일정에 없던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친박계 충청 주자인 이완구 전 총리가 낙마하면서다.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지만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 지 모를 일이다. 당시에는 누구도 이 전 총리의 낙마를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민련, 한나라당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충청권의 맹주로 떠오른 이 전 총리가 '실세 총리'로 롱런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예기치 않은 총리 낙마의 어부지리는 '반공 보수의 모범생'이자 '걸어다니는 국가보안법'으로 통하는 공안 검사 출신 황교안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기름장어'같은 말솜씨로 이틀에 걸친 청문회를 넘겼고, 박근혜 대통령의(혹은 최순실이 했을 수도 있는) 국정 운영 관련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왔다. 국회를 상대로 황 관한대행은 박 대통령의 좋은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깔끔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과정도 '운'이 크게 작용했다. 원래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궁지에 몰린 뒤 국무총리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노무현 정부에 몸 담은 적 있는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새 총리에 지명되자 황 권한대행은 곧바로 이임식을 준비하는 일종의 '기행'을 보였다. 청문회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내정자가 발표되자마자 이임식 준비를 지시한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본인이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을 감지했거나, 적어도 '항명성'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권좌를 지키지 못했다. 대국민담화는 자신에 대한 탄핵을 스스로 유도한 결과를 낳았고, 촛불 민심에 밀린 국회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을 불신임했다. 그때, 청와대 기자실에서는 "황교안이 또"라는 장탄사가 흘러나왔다. 이임식을 준비하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직에 올랐다.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황교안, '만용'인가 '소신'인가?

그런데 억세게 '운'이 좋은 황 권한대행의 행보가 아슬아슬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 '관리형 권한 대행'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 보수 진영의 든든한 '믿음'을 뒷배로 두고 있어서일까? 일례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사모 일부 회원이 꼽은 차기 대선주자 4인방 중 하나에 포함됐다. '막말'이라면 둘째 가라고 해도 서러워할 이정현, 홍준표, 김진태가 나름 '신사'로 불리는 황 권한대행과 함께 촉망받는 경쟁자로 제시됐다.

황 권한대행의 행보를 '자기 정치'를 위한 행보로 봐야 하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다. 그러나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는 일부 보수, 특히 극우 진영의 요구를 받아안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수 인사들과 국정 운영 방안을 논의하는가 하면,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깨알 지시'를 내리고 대통령의 권한인 인사권을 행사할 뜻을 내비쳤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부터 일주일 동안 황교안 권한대행이 보여온 특이점은 세 가지다. 하나는 '안보'와 같은 보수 세력이 결집할 만한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다. 또 하나는 '관리형 권한 대행'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행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야당이 제안한 '국정 협의체' 등을 거부할 뜻을 보이며 '불통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점이다. 마치 정치인들처럼 '각 세우기'를 통해 박수와 비난을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마자, 황 권한대행이 내세운 열쇳말은 '안보'와 '불법 집회 엄단'이었다. 황 권한대행은 국방부, 외교부,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전화해 '긴급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이날 곧바로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황 권한대행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군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했고, 홍윤식 행자부 장관에게는 "불법 집회를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안보' 행보를 따랐다는 설명이 나왔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황 권한대행이 내놓고 있는 발언들의 무게는 훨씬 무겁다.지난 13일 자신이 주재한 두 번째 국무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은 "북한과의 사이버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며 "지난 3월 테러방지법이 통과돼 대테러센터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테러에 대처하고 있는 것처럼 사이버 테러에도 종합적인 대비 체계를 강화해 달라"고 말했다.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인식과 표현은 관료의 것이 아니다.

황 권한대행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인 '인사권'도 챙겨들었다. 그는 12일부터 이틀간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이례적으로 서열상 후순위인 인사수석 비서관의 보고부터 챙겨 들었다. 16일 황교안 권한대행은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차기 마사회장에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최고위원은 "급하지도 않은 마사회장 자리에 황교안 대행이 인사권부터 행사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지난 13일 황 권한대행은 학계, 언론계 원로를 만나며 국정 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면면은 화려하다.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등 보수 인사 일색이었다. (☞관련 기사 : 황교안, '조언' 받는다며 "핵 무장" 주장 교수 불러)

야당과의 관계는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오는 20일과 21일 예정된 대정부 질의에 황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 대행이 국회에 출석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출석을 거부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야당 지도자들은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된 것 아니다(추미애, 우상호)", "불출석은 있을 수 없는 일(박지원)"이라고 비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당당하게 대통령 '의전'도 요구했다. 법으로 규정된 의전 외에 정치적 관행으로 굳어진 의전까지 황 권한대행은 원하는 것 같았다. 지난 14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하면서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에게 국회 본청 앞으로 마중을 나와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회 사무총장이 마중나가는 사람은 관례상 대통령밖에 없다.

황교안, '극우 보수' 환영받는 구체제의 막내?

윤태곤 '의제와 전략 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황교안 대행은 지금 대통령과 대통령이 아닌 경계선에 있으면서 선을 넘지는 않고 있다"며 "야당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고 있고, 보수층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여러가지 포석을 둘 수도 있다. 정치를 할 수도 있고, 어딘가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심스러운 '간 보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략가들은 조금 더 적극적인 '경계'의 모습을 보인다. 이철희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부 수구라는 세력이 순순히 권력을 내놓으려 하겠느냐. 황교안 총리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교안을 움직이는 '황교안의 사람들' 중에는 친박 진영과 가까운 인사들이 꽤 있다.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인물들 중에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있다. 여야정 협의체 관련 야당과 메신저 역할을 했던 심오택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광주 살레시오고 출신으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동문이다. 이 대표가 16회, 심 실장이 15회로 심 실장이 1년 선배다.

김외철 정무운영비서관은 친박 인사다. 달성고, 경북대, 1991년 민자당 사무처 공채 1기 출신의 정통 새누리당 당료로, 그는 당 내에서 전략기획국장, 기조국장 등을 지낸 '전략통'으로 꼽힌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전문위원을 지내며 '친박'으로 분류된다. 전영창 정무기획비서관도 새누리당 중앙당 사무차장을 지낸 당료 출신 인사다.

이태용 민정실장도, 자민련 출신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지냈던 인사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5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민정실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 역대 총리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황 권한대행이 정무 분야에서 이들 정치권 인사들의 조언과 기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황 권한대행 주변에 친박계와 가까운 정무 기획자들이 꽤 포진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치권에서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2017년 1월과 3월 각각 임기가 끝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후임 인선을 단행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황 권한대행의 고등학교 동기 동창인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황 권한대행에 대한 권한대행의 역할이라거나 거취 문제에 민심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다시 촛불 민심과 정면 충돌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들은 기우에 그칠까?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박근혜 정권 탄핵 정국은 40여 년간 지속돼 왔던 '박정희 체제'와 '정경 유착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새누리당의 지분을, 밑바닥 수준에서 절반까지 늘려온 비박 진영의 보수 정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보수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 박근혜의 그림자와 '반공'의 유물을 가지고 이미지를 구축한 황교안 권한대행은 어쩌면 보수 진영에서도 '구체제'의 막내일 가능성이 있다.

점차 외면당하고 있는 뉴라이트 식의 보수주의나, '종북 좌파 척결'을 앞세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황 권한대행이 보수 진영 내부에서 이뤄지는 변화의 민심을 과연 읽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은 아직 없다.

기자 : 박세열 기자,김윤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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