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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대통령 체면 지키려 인천 돈 1000억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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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급 펀드 ‘사기극’ 인지하고도 강행…인천시, 빚 떠안아

안종범 “보도가 나갔으니 할 수 없다”며 슬그머니 발 빼

차은택과 비밀리 UAE 사전 방문…최순실 개입 가능성도

경향신문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해 6월 당초 투자자로 발표했던 두바이투자청이 아니라 두바이스마트시티 CEO와 만나 검단신도시 프로젝트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악수하고 있다. 인천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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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인천시의 공격적 투자 유치가 만들어낸 쾌거로 찬양받던 인천 검단 스마트신도시 프로젝트는 1000억원의 이자비용만 날린 채 지난달 17일 신기루처럼 막을 내렸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이행보증금 등 투자조건이 서로 맞지 않았다고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애당초 4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감당할 능력이 안되는 경량급 펀드를 매머드 펀드로 믿고 협상을 진행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에 맞춰 지난해 3월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아래 사진)과 함께 두바이를 방문한 유 시장은 두바이투자청(ICD)으로부터 36억달러(4조원)에 달하는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실제 투자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최대 국부펀드인 ICD가 아니라 두바이스마트시티였다. ICD는 운영 자산만 175조원에 달하고 두바이 왕족이 운영하는 반면 두바이스마트시티는 ICD와 모회사도 다르고 규모가 훨씬 작은 펀드의 손자회사로 최고경영자(CEO)도 파키스탄인이다.

당시 법정관리 중인 쌍용건설을 1700억원에 인수한 ICD는 경제사절단으로 두바이에 와 있던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ICD는 “한국 신문을 보니까 ICD가 검단에 투자하는 걸로 돼 있는데 검단사업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고 두바이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바로 다음날 안 수석을 찾아가 ICD의 우려를 전달했다. 쌍용건설 측에 따르면 안 수석은 순간 “어, 이거 보도 나갔을 텐데 어떡하지”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바로 “어제 이 얘기를 알았으면 좋았는데 이제 할 수 없지 뭐”라며 사업을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경향신문

안 전 수석은 왜 원점 재검토 지시를 내리지 않았을까. 이유는 인천시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있었다. 인천시는 ‘두바이가 직접 투자한 세계 3번째이자 동북아시아 최초 조성 도시’라며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면서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에서 초대형 성과물을 내놨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 조언에 따라 투자를 접는다면 인천시는 물론 박 대통령마저 ‘국제사기꾼에 걸려들었다’는 수모를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실제로 ICD는 “한국 정부가 미국계 변호사를 낀 브로커들한테 홀린 것 같다”는 의견을 김 회장에게 전달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누군가가 두바이스마트시티의 사기극에 넘어가 그들을 ICD로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우승봉 인천시 대변인은 보도자료에서 “지난해(2014년)부터 ICD와 긴밀히 협의해왔고 (2015년) 2월 초 투자의향을 공식 접수받고 청와대와 지속적인 협의를 해왔다”며 지속적으로 투자 파트너를 ICD로 명시했다. 이 점에서 안 전 수석이 최순실씨 측근인 차은택씨와 함께 2014년 8월 비밀리에 UAE를 방문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2014년 7월 UAE 메모를 작성한 최씨가 두바이스마트시티를 ICD로 믿고 청와대와 인천시까지 끌어들여 박 대통령 중동 순방 일정에 맞춰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D데이로 삼았을 수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 대통령 중동 순방 후 검단 프로젝트는 인천시 자체 사업이 됐다. 청와대는 투자 실패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슬그머니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 시장은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까지도 “검단신도시 프로젝트는 청와대와 아무런 상관 없이 시에서 자체 추진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인천시는 투자의향서(LOI) 접수에 이어 지난해 6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때부터 보도자료에 ICD는 사라지고 두바이스마트시티가 등장했다. 투자자가 ICD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무리하게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결국 인천시는 투자여력이 없는 투자자를 붙들고 1년8개월을 허송하다 부지 매입에 들어간 4조원에 대한 이자로만 1000억원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된 지금도 인천시는 투자자가 뒤바뀐 사실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변주영 인천시 투자유치본부장은 “MOU 체결 이후 2015년 7월에 발령받아 그 이전은 잘 모른다”고 했다. 반면 투자를 제안했던 문성억 인천시장 경제특보는 “2015년 6월 MOU 체결하고 태스크포스에서 제외돼 진행 상황을 잘 모른다”며 공을 후임자에게 떠넘겼다. 투자총괄책임자인 조동암 인천시 경제정무부시장은 “두바이스마트시티나 ICD나 두바이 왕이 만든 회사로 다 서로 연결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강진구·유희곤·최미랑 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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