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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박근혜 막장’의 시작은 박정희…박정희 신화 깨트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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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보수 원로사학자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한겨레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가 7일 강원도 춘천의 자택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 문제와 촛불시위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춘천/김종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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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헌법 정신을 저버리고 법률을 위반한 혐의가 날마다 새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국민이 촛불을 주말마다 들면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날마다 새롭게 쓰이는 시절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역사학자의 유장한 눈으로 듣고 싶었습니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 국정교과서 문제부터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일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정년 은퇴 뒤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 내려가서 혼자 지내고 있는 정옥자(74) 서울대 명예교수는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듭 사양했다. 만절(晩節)을 실천하는 삶을 흩트리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시대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어른의 책무”라고 설득한 뒤에야 겨우 방문을 허락받았다.

막상 기자를 앞에 둔 원로 사학자는 에두르거나 이것저것 재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몸으로 겪은 현대사의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짚었다. “이승만이 무슨 우라질 국부냐”고 호통쳤으며, “박정희부터 노태우까지 30년 동안 민주주의를 까먹었다”고 일갈했다. 그런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것은 국민의 힘”이었다며 “최근의 촛불시위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 시내에 위치한 선생의 아파트 거실에서는 시내 한복판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촛불시위로 시작됐다.

-보도를 보면 춘천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데, 여기에서 주말마다 촛불시위 행렬이 잘 보일 것 같다.

“그렇다. 사람들의 구호소리도 선명하게 들린다. 춘천은 원래 조용하고 보수적인 도시인데 시민들이 많이 화가 났다. 왜 아니겠는가. 나도 박근혜 정부가 쏟아내는 막장드라마를 뉴스로 보면서 이런 꼴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싶었다. 약간의 우울증이 올 정도였다. 그런데 촛불시위 등 국민들의 대응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더라. 국민들한테 희망을 찾았다. 평화적인 시위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요즈음 활기를 찾았다. 박정희부터 노태우 정부 때까지 30년 동안 까먹었던 민주주의를 국민들이 키워온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뉴라이트 등에서 최근 많았는데 선생님은 다른 것 같다.

“1980년에 정권을 잡은 신군부(전두환 세력)가 박정희를 평가했다. 자기들이 박정희 꼬리니까 박정희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저희도 같은 부류가 되니까 박정희가 청렴했다는 둥 경제개발을 해서 민생 문제를 해결했다는 둥 높게 평가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긴 있지만, 그게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서 한 것이지 박정희가 한 게 아니지 않나. 박정희가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하는 것도 엉터리다. 그건 굉장히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지 민주주의 지도력이 아니었다. 박정희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긴 했고 물질문명의 시대여서 그동안 과대 평가한 면이 있다. 민주주의 발전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박정희가 30년을 꿇어먹은 거다.”

“박정희 5·16 동기 불순해
통치는 억압적이고 강제적
결과주의로만 평가하면 안돼
민주주의 30년 후퇴시켜”

“건국절·이승만 국부론 한심
이 나라 민주주의 이룬 것은
일제때 저항한 독립운동 결과
공존공영 평화사관 역사 필요”


과대평가된 박정희의 업적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다.

“말이 안 된다. 쿠데타 세력이 뒤집은 장면 정권이 그렇게 무능하고 엉터리 정권이 아니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장면 정권은 4·19가 동력이 돼서 민주주의에 의해서 탄생한 정권이다. 그들이 무능하다고 어쩌고 하는데 1년 동안에 어떻게 무능하고 말고를 얘기하나. 또 하나는 결과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결과주의만 갖고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시켰네 어쩌네 하는데 모든 일은 동기와 과정도 중요하다. 5·16은 한마디로 동기가 불순하지 않나. 국민들이 언제 저보고 쿠데타 일으켜 달라고 했나. (정권 운영) 과정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군대 동원해서 경찰국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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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가봉의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 부부의 내한 환영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당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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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국정교과서는 박정희에 대한 미화로 가득 차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려고 한 것 아니냐. 지금 박근혜가 도마에 올랐으니 국사편찬위원회가 박정희의 독재 부분 등을 조금 반영하면서 약간 희석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박정희를 미화하는 쪽으로 썼다. 박정희가 우리나라 민주화를 크게 후퇴시키고 독재로 치달으면서 지금의 여러 문제를 낳았다. 그런 것을 보고 배운 딸이 결국 나라를 이렇게 막장으로 끌고 갔다. 비극이 거기에서 시작됐는데 그것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국정교과서는 이승만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자기가 프린스라고 말하면서 다니긴 했지만 어쨌거나 독립운동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문제는 해방 뒤 귀국해서 독립운동하던 사람을 다 제거한 점이다. 대신 친일파를 기용했다. 게다가 6·25 때 어떻게 했나. 자기는 남쪽으로 도망가놓고는 국민들한테는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거짓말하지 않았나. 역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를 인정할 수 없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두 사람이 남긴 빛도 물론 있지만, 그림자가 너무 크다. 그것을 제대로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승만이 국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국부는 무슨 우라질 국부냐. 자기가 국부라면 귀국해서 통합을 했어야지. 특히 상해임시정부 사람들을 다 아울렀어야지.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을 다 제거하고 친일파만 감싸지 않았나. 게다가 독재체제로 나라를 운영하다가 4·19 때 국민들한테 총을 쏘지 않았나. 그런 것 생각하면 대한민국 역사가 창피하고 참 비극적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신군부를 거치면서 우리가 불행한 세상을 살아왔다. 그런데 국민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

-뉴라이트 쪽에서는 1948년은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한다. 국정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돼 있다.

“교묘한 말장난이다. 건국절은 무슨 얼어죽을 건국절이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을 때 대한민국이 선 것이다. 나는 그게 맞다고 본다. 48년은 정부 수립이다. 그런데도 건국이니 뭐니 하는 것은 결국은 친일파가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파는 친미파다. 강자한테 붙는 것이지 별거 아니다. 구한말에도 이완용 등 같은 사람이 세에 따라서 친러파가 되기도 하고 친일파로 변신하기도 했다. 지금도 똑같다. 역사 청산이 안 된 탓이다.”

조선시대 문화사를 전공한 정 명예교수가 서울대 국사학과에 교수로 부임한 것은 1981년이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지성사>와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등이 있다. 선비 정신을 강조한 그는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는 언행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학생운동하는 제자들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국정교과서 저절로 곤두박질칠 것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내년부터 국정교과서를 일단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과 교육청이 안 받겠다고 하는데 채택이 될까. 나는 안 되리라고 본다. 애쓸 것도 없이 내버려두면 저절로 곤두박질칠 거다. 물론 그러기 전에 정부가 당연히 국정교과서를 폐기해야 한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찍으려면 돈 드는데 왜 밀어붙이나. 예산 낭비, 국력 낭비가 더 되지 않도록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베트남도 국정을 포기하고 검정으로 간다고 하지 않나. 우리가 북한과 쿠바를 따라갈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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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1일 세종문화회관 예술아카데미에서 열린 ‘건국 60주년 기념 연속 강연’에서 정옥자 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이 ‘건국 60년, 우리 역사를 보는 눈’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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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지난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유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애들한테만 큰 피해를 주는 국정교과서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국정을 앞으로 2, 3개 더 만들자(지난 6일치 <동아일보> 인터뷰)고 주장한다.

“있는 것도 없애야 할 판에 두서너개 더 만들자는 게 말이 되나. 정부에서 국정교과서 하자고 할 때 김정배 위원장은 ‘이걸 왜 하나, 이것은 학계를 욕보이는 것이고, 국편도 문제에 휘말린다면서 딱 내쳤어야 한다. 자리 욕심인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정부가 시키는 대로 다 해놓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국정교과서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자기 아버지 명예회복시키고 원수를 갚는 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는 얘기가 나돌지 않았나. 그런 차원에서 추진했다고 본다.

그러나 교과서를 국가에서 쓴다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해석의 다양성이 있고, 역사관이라는 게 다 다르지 않나. 우리가 그동안 민족주의 역사관을 가졌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본 등 제국주의에 당하니까 민족주의 사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너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자 대 피지배자 논리다. 이제는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 민족만 내세우고 다른 민족을 배타할 수 있나. 이제 민족주의는 한물간 거다. 모든 국가나 민족이나 종족들이 자기 고유의 문화는 자기가 알아서 보존하든가 지키되, 세계 사람이 공존하고 공영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평화사관으로 이제 가야 한다.”

그는 그런 점에서 전통시대의 가치관인 유교를 높게 평가했다. 개인이나 국가 간에 예로써 서로를 대하고, 명예를 존중했던 유교의 장점을 오늘에 맞게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촛불시위에도 명예를 존중하는 정신이 명백하게 살아 있다고 말했다.

고차원적이고 품격있는 촛불시위

-촛불시위에 우리 전통이 살아 있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시위를 보면 질서있고 굉장히 평화적이다. 그리고 시위 뒤끝이 깨끗하고 무엇보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가 간단명료하고 맥락을 짚어낸다. 그리고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건 문화국가의 저력이다. 이런 전통의 힘으로 일제시대를 살아남았다.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 안 하고 힘만 숭상하고 그랬으면 무자비한 일본의 경찰국가적 통치에 다 녹아들어가서 오키나와처럼 됐을 것이다. 선조들이 자존심과 국가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있어서 끝까지 독립운동하고 저항운동도 해서 지금 분단이나마 독립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환골탈태해서 문화국가로 거듭나리라고 본다.”

-일부에서는 촛불이 곧 꺼지고 별거 아니라고 얘기한다.

“이 동네 출신인 김진태 의원이 바람에 흔들리면 꺼진다고 했는데 그건 본질도 모르고 한 소리다. 이번 촛불은 이명박 정부 시절 쇠고기 파동 때 있었던 촛불보다 훨씬 고상하고 고차원적이고 품격있다. 보수 진보 따질 것은 아니지만, 시위 뒷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 이번 촛불에는 보수들도 들고일어났구나 하고 느꼈다. 시위 끝나고 청소하고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수의 문화다.”

-국민들이 뭐라고 하든 박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상황을 바르게 판단한다면 빨리 그만두고 수사 받아서 정리하고 수습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빨리 그만두는 게 최선이다. 몇달 버티다 나간다고 뭐가 달라지나. 국민들은 격앙되고, 국력은 소모되고, 국가적 위상은 추락할 뿐이다. 시간끌기는 단견이고 미봉책이다.”

정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잘 된 인사”라는 평을 받았던 그는 재임 때 뉴라이트 인사들을 국사편찬위원으로 임명하라는 정권의 요구를 거절했다. 인터뷰 도중 “내가 국사편찬위에 있었더라면 국정교과서 요구를 단번에 거부했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실감났다. 평생 중도와 중용을 강조했던 선생의 삶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중도를 회색분자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게 중용 정신”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춘천/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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