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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한민국 조폭 리포트②]'주먹에서 머리로'…대한민국 조폭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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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1조원대 불법스포츠 사이트 운영 조직폭력배 일당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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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경찰, 전국 주부 전문도박단 검거


'주먹'과 '정치'의 결탁시대…지능·기업형 거쳐 해외 원정까지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국내 조직 폭력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진화는 날이 갈수록 더욱 교묘해진다. 실루엣만 보여줄 뿐 실체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합법을 가장한 위장전술에도 능하다.

오랜 풍파를 겪으면서 요령을 체득해서다. 어떻게 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미 배울 만큼 배웠다.

조폭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합법을 가장해 몸을 바짝 낮춘 채 '음지'를 지향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때가 되면 온갖 불법을 일삼는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발뺌한다.

조직원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세를 과시하던 시절은 이제는 '옛말'이다. 조직원들이 검은 양복 차림으로 어깨에 힘주고, 돈벌이가 되는 유흥업소나 성인오락실 등 이른바 '나와바리(관할구역)'를 지키거나 확장하기 위해 '사시미칼(회 뜨는 칼)'이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조폭들은 집단 난투극이나 칼부림을 벌여 조직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 사법당국의 타깃이 돼 존폐 위기에 처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전면전과 같은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충돌을 가급적 피한다.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을 치더라도 위로는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피한다.

조폭이 이렇게 변하게 된 계기는 '못된 짓'을 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돈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흥업소 갈취와 성매매 등 전통적인 수입원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나 건설·부동산 등 합법적인 기업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돈줄을 물색하고 있다. 합법적인 돈줄이 아니면 조직이 노출돼 자칫 자멸할 수 있는 탓이다.

대한민국 조폭은 시대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골목 상인을 보호했던 1세대부터 유흥업소를 장악하며 칼부림과 패싸움을 서슴지 않던 2세대를 거쳐 기업 인수합병(M&A), 건설시행, 주가 조작 등 기업의 모습을 갖춘 3세대에 진입하더니 어느새 해외 원정 도박과 성매매로 눈을 돌린 4세대 조폭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호박에 아무리 줄을 그어도 수박이 될 수 없듯 조폭이 아무리 탈바꿈해도 조폭은 조폭이다.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하더라도 언제든지 결정적인 순간에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 1세대 조폭, '주먹'과 '정치'의 결탁 시대

대한민국 조폭 역사를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백파 홍성유가 집필한 소설 '장군의 아들'의 주안공으로 잘 알려진 김두한이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항일 전투로 꼽히는 1917년 청산리 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도 유명하다.

그는 일제강점기 서울 종로의 극장 '우미관'을 장악한 뒤 국내 주먹계를 평정했다. 1930년 후반부터 해방 직전까지 일본 야쿠자에 맞서는 '항일 주먹'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180㎝가 넘는 큰 키에 양손과 양발을 자유롭게 쓰고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한다.

뛰어난 싸움 실력과 조직 장악력으로 '명동파 두목'으로 자리 잡은 이화룡도 대표적 인물이다. 일본 상인들이 물러난 명동 일대를 휘어잡고, 금융회사 등 기업을 장악해 한때 '경제 주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야쿠자에게 골목 상인들을 보호했다는 점에서 흔히 아는 조폭들과 다른 평가를 받는다.

김두한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서울은 사실상 무주공산이었다. 이때 정치깡패로 악명을 떨친 '동대문파'를 이끈 이정재가 등장한다. 그는 반공청년단에 주도적으로 참여, 1960년 이승만 정권에 항의하는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를 앞장서서 진압했다. 주먹과 정치의 결탁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치깡패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척결 대상 1호였던 그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렇게 1세대 조폭 시대가 막을 내렸다.

◇ 2세대 조폭, '유혈(流血)'의 시대

1953년 육군 상사로 전역해 '신상사'라는 별명이 붙은 신상현씨가 서울의 패권을 차지했다. '신상사파'는 서울 명동을 거점으로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를 꽉 쥐고,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서울 지역 최대 폭력조직이었던 신상파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서울에 진출한 호남 출신 젊은 조폭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범호남파로 불리던 '오종철파' 행동대장 조양은은 1975년 1월2일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신년회를 열던 신상사파를 급습했다. 이 기습으로 신상파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사시미칼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유혈(流血)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범호남파 '박종석파' 행동대장 김태촌이 1876년 3월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주차장에서 실질적인 범호남파 두목인 오종철을 칼로 찔렀다. 조양은과 김태촌의 악연은 이로부터 시작했다.

이후 서울에서는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 호남에 근거를 둔 신흥 조폭 '3대 패밀리' 시대가 열렸다. 이들은 다른 조직과의 전쟁에서 사시미칼, 야구방망이, 쇠몽둥이 등 '연장'을 사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들은 전국구 규모로 성장했다.

이들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지역상권을 장악한 뒤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냈다. 특히 유흥업소 관리와 주류 판매, 성매매,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호남 3대 패밀리가 활개를 치자 전두환 정권은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조폭 소탕에 나섰다. 검·경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1986년 김태촌이 구속돼 징역 5년을 사는 등 3대 패밀리 두목 모두 징역을 살았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조폭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1990년 10월 노태우 정권 역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조폭 소탕 작전을 벌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경찰에게 총기와 실탄까지 지급하며 조폭 소탕을 지시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 2년 뒤 조폭 274개 파를 색출하고, 조직원 1421명을 검거해 이 중 1086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경찰관 126명이 순직했고, 2200여 명이 부상했다.

유혈 시대를 부른 2세대는 조폭들은 사분오열하며 퇴장했다.

◇ 3세대 조폭, 지능·기업형 시대

3세대 조폭은 합법을 위장한 기업형 조폭으로 진화했다. 사업가처럼 행세하며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력을 확장했다.

범행 수법도 나날이 지능화했다. 탈세, 횡령·배임 등을 저지르고 정·재계 유착 비리나 선거에 개입하기도 했다. 3세대 조폭들이 지능형 범죄를 저지르자 '지능형 조폭'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됐다.

이들은 무자본 M&A, 회사 자금 횡령, 상장 기업 주가조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법적인 이익을 얻는다. 심지어 기업 경영까지 참여해 금융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화이트 범' 양상까지도 보인다.

특히, 이들은 다른 조직과의 출동을 최대한 피한다. '노출되면 자멸한다'는 사실을 이미 체득해서다. 10명 이하 소규모로 활동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필요에 따라서 다른 조직과 합종연횡하기도 한다.

◇ 4세대 조폭, 해외 진출의 시대

4세대 조폭은 보폭을 해외로 넓히고 있다. 수사당국의 지속적인 단속과 추적으로 전통적인 수입원이 점점 줄어들자 조폭들은 한 발 나아가 해외 원정도박과 성매매에 나서고 있다.

홍콩이나 마카오 등 동남아 지역 카지노를 빌려 도박을 시켜주는 이른바 '정킷방(카지노업체에 보증금을 주고 빌린 도박 VIP룸)'을 운영하며 불법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동남아 일대 호텔 카지노의 일부를 빌리거나 VIP룸을 개조해 사설 도박장을 운영하는 조폭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국내 알선책을 통해 항공료와 숙박료, 유흥비까지 무료로 제공하며 도박꾼을 모집한다.

조폭들은 도박꾼들이 현지에서 돈을 잃어도 고금리도 돈을 계속 빌려준다. 돈을 갚지 않으면 여권을 빼앗거나 국내에 있는 가족에 연락해 빌린 돈을 받아낸다. 일부 돈을 갚지 않은 여성에게는 현지에서 성매매를 알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온갖 불법 행위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또 일부 조폭은 해외 원정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해외에서 젊은 여성을 모집해 국내에 공급하기도 한다. 4세대 조폭들은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해외로 영토를 확장하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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