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투데이] 제주해녀 채지애씨, "해녀가 되고 사람이 다시 좋아졌어요"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YTN라디오(FM 94.5) [수도권 투데이]

□ 방송일시 : 2016년 12월 5일(월요일)
□ 출연자 : 채지애 해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해녀 문화 알리기 이제부터 시작이죠”

- 사람에 치였던 10년간의 도시생활... 해녀 공동체 문화로 치유
- 각자 기량에 맞게 작업... 상군 해녀는 얕은 바다 해산물 가져가지 않아

-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공동체 문화가 매력
- 서로 경조사 챙기고 80넘은 고참 해녀도 직접 빗자루질
- 모두 바다에서 나올 때 까지 기다리고 무거운 망태기 함께 드는 정이 있어

- 올 여름 이상고온으로 소라 등 많이 줄어
- 바다가 살아야 해녀가 살아... 환경오염으로 예전만큼 수확 안 나와

◇ 장원석 아나운서(이하 장원석): '제주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해녀문화는 제주의 상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사실상 이런 문화를 어떻게 계승해야 할지, 또 해녀들의 실제 생활은 어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요. 제주 해녀로서 해녀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는 34세의 젊은 제주 해녀가 있습니다. 채지애 해녀 전화연결 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채지애 해녀(이하 채지애): 네, 안녕하세요.

◇ 장원석: 아시겠지만 재주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았습니까?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 채지애: 무엇보다 기쁜 일인 건 맞는데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대로 해녀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게 없고,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보니까요. 그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장원석: 네, 채지애 씨는 해녀로 활동하신지 얼마나 됐습니까?

◆ 채지애: 지금 3년차 되었습니다.

◇ 장원석: 3년 정도 되셨는데, 제주도에서 활동하고 계신 거죠?

◆ 채지애: 네, 서울 생활을 하다가 귀향해서 어머님과 같이 바다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장원석: 아, 고향이 제주도시군요?

◆ 채지애: 네.

◇ 장원석: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걸 ‘물질’이라고 하잖아요. 물질을 제주도 어디에서 주로 하세요?

◆ 채지애: 저는 성산읍 삼달리 어촌계 소속으로 되어 있고요. 거기에서 13분의 선배 해녀 분들하고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장원석: 보통 물질은 몇 시쯤에 나가세요?

◆ 채지애: 그건 바다가 정해주는 때가 있는데요. 365일 바다에 들어가는 건 아니고요. 조금부터 여덟물이라고 해서 바다 물때가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서 보통 한 달에 15일에서 18일 정도 작업하는데요. 그마저도 해상 날씨가 좋지 않으면 다 채우지 못하고, 한 열흘 정도 보통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 장원석: 오늘도 물질 하셨습니까?

◆ 채지애: 아니요. 지금은 물때가 아니고요. 내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물때여도 저희가 무엇을 잡을지 회의를 거쳐서 들어가는 거고, 무작정 들어가는 건 아니어서요. 해녀 회장님께서 뭘 잡을지 정해주면 그때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 장원석: 그렇군요. 해녀 경력 3년차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전에 좀 특이한 경력이 있으십니다. 서울에 살다가 귀향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전에 헤어디자이너로 일하셨다고요?

◆ 채지애: 네, 제가 원래 전공을 피부미용과를 나와서,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가서 미용실에 취직해서 헤어디자이너 일을 한 10년 정도 하다가요. 아무래도 오랜 도시 생활에 지치고, 고향이 그립더라고요.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서, 아무래도 서비스 직종에 있으면 아이와의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고 하다보니까 다른 일을 찾다가, 둘째를 갖고 잠깐 제주도에 와서 출산 준비를 하다가 해녀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와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 장원석: 제주도에 산다고 해서 무조건 다 바닷가에 사는 것도 아닐 텐데요. 채지애 씨가 어려서부터 제주 바다하고 특별한 추억이 있었나요?

◆ 채지애: 아무래도 저희 어머님이 해녀셨고요. 저희 할머니도 해녀셨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님이 바다에 가면 물마중을 많이 나가서 봐온 터라서, 다른 일을 찾는 게 힘든 시기잖아요. 사회에서도 30대면 조금 늦은 나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어머님이 하시는 일이 눈에 들어오고, 같이 하면 괜찮겠다 싶어서 하게 되었죠.

◇ 장원석: 10년이나 헤어디자이너 기술을 습득하셨는데, 기술이 아깝지는 않으셨어요?

◆ 채지애: 지금 집에서 아이들 머리 잘라주거나, 아니면 해녀 어르신들이 찾아오시면 봉사? 재능기부 식으로 조금씩 해드리고 있어요.

◇ 장원석: 그렇군요. 해녀라는 게 숙련도에 따라서 깊이도 다르지 않나요? 활동 반경이 좀 나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채지애: 네, 저희가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상군 분들은 보통 10m 이상으로 들어가시고요. 중군은 5~7m 하군은 5m 이하에서 작업을 하세요. 그 경계는 위계질서 등이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군 분들이 중군이나 하군 분들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물질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걸 잡는 건 아니고요. 각자 기량에 맞게 정해진 곳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 장원석: 채지애 씨는 어느 군에 속하나요?

◆ 채지애: 저는 지금 중하군 정도인데요. 그건 제가 많이 잡는다고 해서 제 스스로 정하는 건 아니고요. 선배님들이 보면서 ‘너는 이제 어느 정도 됐다.’ 인정을 해주세요. 그렇게 정해지는 거지, 제가 스스로 해산물을 많이 잡았다고 해서 ‘내가 이제 중군이야’, 이렇게 본인 스스로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해주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 장원석: 그렇군요. 워낙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보면서 판단해주시는 건데요. 깊이 들어가는 분들이 얕은 곳에 있는 해산물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네요. 사회 생활하다가 지쳐서 제주도로 돌아가셨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서 굉장히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고요.

◆ 채지애: 네.

◇ 장원석: 요즘에 겨울이라 바다도 춥지 않습니까? 들어가기 힘들 것 같은데, 어떤가요?

◆ 채지애: 아직까지는 수온이 조금 높은 편이라서, 바다 속이 조금 따뜻하더라고요. 조금 춥기는 하지만 활동하는 데에 문제는 없어요.

◇ 장원석: 겨울에 언제까지 물질을 할 수 있습니까?

◆ 채지애: 겨울에도 물때 맞춰서 거의 들어가긴 하는데요. 저희가 쉬는 기간은 오히려 여름이에요. 8월, 9월 산란기에 금태기를 정해서 그때는 쉬고요. 겨울에는 저희 동네에는 밭농도 같이 하시는 분도 많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확철 같은 경우에는 서로 바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금태기를 하고요. 다른 지역에서는 물때 맞춰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장원석: 네, 물때만 맞으면 겨울에 춥다고 해서 작업을 하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군요?

◆ 채지애: 네, 뭐 마을에 경조사가 있거나 이럴 때에는 저희는 공동체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해녀 분들 중에 한 분이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결혼식이 있거나, 잔치가 있거나, 이럴 때에는 자체적으로 금태기를 정해서 하고 있고요. 그 외에는 바다에 나가서 하고 있습니다.

◇ 장원석: 요즘 해산물은 뭐가 제철인가요? 뭐 하나 추천 좀 해주시죠.

◆ 채지애: 저희 동네는 소라를 잡기 시작했거든요. 이것도 지역마다 다른 게 있어요. 나오는 해산물이 조금 다르긴 한데요. 봄 같은 경우에는 성게나 미역 정도를 하고 있고요. 그 외에는 소라를 주로 잡고 있습니다.

◇ 장원석: 그렇군요. 요즘 환경오염이 심하다고 하는데, 선배들이 말하기로 수확량이 예전에 비해 적어졌다고 하시나요?

◆ 채지애: 네, 안 그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희가 바다가 살아야 해녀가 산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아무래도 자연과 공존해서 살아가는 의식이 있다 보니까, 그래서 예전만큼은 수확물이 많이 안 나오고 있고요. 바다에 가게 되면 소라나 전복들이 감태라는 걸 먹고 사는데, 올 여름에 많이 덥다보니까 먹잇감이 떨어져서 소라 같은 것도 많이 줄고 있는 추세예요.

◇ 장원석: 네, 해녀 분들이 흔히 하는 말씀으로, 바다는 우리가 빌려 쓰는 거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생각이 나네요. 해녀 분들 중에서 연세 높으신 분들이 많잖아요. 채지애 씨처럼 젊은 해녀들도 있습니까?

◆ 채지애: 지금 제주도에서 30대로 활동하시는 분이 11분 정도 계세요.

◇ 장원석: 그래도 꽤 많네요?

◆ 채지애: 그리고 관심을 갖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해녀 자체가 완전히 명맥이 끊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장원석: 그건 참 다행이네요. 이렇게 명맥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던 차에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면서 인류가 계승해야 할 문화로 인정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해녀문화에 대해서 청취자 분들에게 알리고 싶은 점 있으신가요?

◆ 채지애: 앞서 말씀드렸듯이 해녀문화 같은 경우에는 선배가 후배에게 잠수 기술을 전해주기도 하고요. 약자를 위한 배려심이 깊으세요. 그러다보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아이가 아프거나 하는 경우에 잘 못 나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럴 때 잡은 해산물을 좀 나눠주시기도 하고요. 선배라고 해서 하군이나 저 같은 새내기를 부린다고 할까요? 그런 게 없으시고, 청소 하자고 하면 80대 분들도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고, 그리고 바다에 나올 때도 내 작업이 끝났다고 먼저 가시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은 분들이 있는지 살펴봐주시고, 수확 채취한 망태기가 굉장히 무거워요. 소라 같은 경우에는 기본이 30kg이 넘거든요. 그런 걸 서로 나눠 드는 정도 있으시고요. 그런 문화들이 따뜻한 정도 있고, 그런 게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장원석: 네, 해녀들 사이의 이런 문화와 따뜻한 정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신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으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 채지애: 네, 저는 미용 일을 할 때는 어느 순간 사람이 조금 무서워지더라고요. 사람한테 치이는 일이다보니까, 그래서 사람을 좀 피해서 온 것도 있거든요. 과수원 같은 경우도 나무는 말이 없다고 해서, 싫든 좋든 간에 내가 잘 하면 좋은 수확을 주는 게 나무이기도 한데, 바다도 내가 혼자 일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공동체가 있더라고요. 항상 위험 상황이 닥쳐올 수 있기 때문에 2~3명씩 짝을 지어서 서로의 안전을 보살펴주기도 해야 하고요. 사람하고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 일깨워주는 문화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시 사람이 좋아지게 되었고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 한 해 바다 속에 들어가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정말 몸은 고되지만 마음속으로는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 장원석: 그거 참 다행입니다 .요즘 같이 팍팍한 사회에서 해녀 문화가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채지애: 네, 감사합니다.

◇ 장원석: 지금까지 채지애 해녀였습니다.

▶ [원포인트생활상식] 생활 속 아이디어 공모전
▶ 뉴스 덕후들의 YTN페이스북 ▶ 내가 만드는 뉴스! YTN제보

[저작권자(c) YTN(Yes! Top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