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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트렌드+] 마네킹이 된 사람들, 그들이 멈춰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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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챌린지' 동영상 유행]

카메라만 돌고 일순간 부동자세… 유명인사 동참하며 관심 높아져

마약·음주 수영의 위험성 등 재미 속에 메시지 녹여 눈길

"스마트폰 능숙한 모바일 세대의 새로운 놀이 트렌드로 떠올라"

비틀스(The Beatles) 멤버 폴 매카트니(McCartney)의 작업실. 피아노 건반을 연상케 하는 흰 셔츠와 검정 바지를 입은 매카트니가 악상(樂想)이 떠오른 듯 오른손을 치켜든 채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카메라가 주변을 180도 도는 동안 매카트니는 미동조차 없다. '밀랍인형'이 아니라 '마네킹'을 연기한 것. 매카트니의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달 10일 공개된 17초 분량 영상은 조회 수 73만 건을 기록하며 전 세계 비틀스 팬들 사이에서 회자가 됐다.

'국정 농단' 정국에서 저항 표현

동영상 속 인물이 마네킹처럼 부동 자세를 취하는 '마네킹 챌린지(Mannequin Challenge)'가 유행이다. 지난 10월 미국 플로리다주(州) 잭슨빌에 사는 한 고교생이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 유튜브·페이스북 등 모바일 기반 SNS를 통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미셸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같은 유명 인사가 동참하면서 유행에 불을 댕겼다. 국내에선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촛불 정국에 들어서면서 대학생·직장인 등 젊은 층 사이에서 '저항'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하야'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가 일순간 마네킹처럼 정지한 모습을 담아내는 식이다.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신인 걸그룹 우주소녀·모모랜드 등도 앨범 홍보차 영상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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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로 촬영해 편집… "내가 마술사 탁구 킹" - 유튜브 채널에서‘마술 동영상’으로 인기를 끈 잭 킹의‘마네킹 챌린지’. 높게 점프한 킹(왼쪽)과 공중에 뜬 탁구공 모습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다각(多角) 촬영한 뒤 이를 이어 붙여‘공중부양 마네킹’영상을 만들었다. /유튜브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네킹 챌린지'는 200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플래시몹(Flashmob·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장소에서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행위)'을 잇는 동영상 트렌드다. 차이점은 유통 기반이 '모바일'로 옮겨갔다는 것. 다수 인원이 특정 몸짓을 선보이는 플래시몹과 달리, '마네킹'은 부동자세만 취하면 돼 손쉽게 동영상을 제작·유통하는 모바일 세대에게 적격이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스마트폰 조작이 능숙한 모바일 세대에겐 '재미'를 바탕으로 쉽게 생산하는 콘텐츠가 먹혀든다"며 "'마네킹 챌린지'의 첫 제작자가 고교생이란 점은 이들 세대 입맛에 맞는 놀이란 것의 방증"이라고 했다.

모바일 세대, '메시지' 녹여 트렌드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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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위)는‘마네킹 챌린지’로 비틀스의 이름을 딴 레이 스레머드의 곡‘Black Beatles’에 사의(謝意)를 표했다. 걸그룹 우주소녀(아래)는 앨범 홍보차‘마네킹 챌린지’를 촬영했다. /페이스북 캡처


모바일 세대로부터 '트렌드'로 자리 잡으려면 '재미'에 '메시지'를 버무려야 한다. 2014년 루게릭병(ALS) 환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려 시작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대표적. 참가자가 세 사람을 지목하면, 지목당한 사람은 24시간 안에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ALS 단체에 100달러를 기부해야 한다. '얼음물'은 온몸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간접 체험해 본다는 의미. 빌 게이츠를 필두로 전 세계 정치인·기업인·연예인이 동참하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마네킹 챌린지'도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미국 켄터키주 윌리엄스타운 주민들은 '최악의 결말(The worst outcome)'이라는 영상에서 마약에 중독된 부모와 이들을 마주한 아이들의 모습을 마네킹 챌린지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호주 퍼스의 한 해변에선 비영리 인명구조 단체와 대학생 6000여명이 이 형식으로 '음주 수영'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좋아요(페이스북)·하트(인스타그램) 개수를 늘려가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각종 사회적 '메시지'와 결합해 하나의 놀이로 소비되는 것이다.

'인증' 욕심만 부리다가 탈이 나기도 한다. 지난달 27일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된 민간구조단체 '화이트 헬멧(White Helmets)' 대원들은 시리아 알레포 공습 현장에서 부상자를 앞에 두고 마네킹 챌린지를 선보여 논란을 빚었다. 화이트 헬멧 관계자는 "몇몇 자원봉사자들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마네킹 챌린지를 통해 시리아 참상을 알리려고 촬영한 영상이었다"며 사과 성명을 발표했지만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마네킹 챌린지'의 소비 행태는 웃음을 유발하는 단순한 '놀이적 소비'와 메시지를 담아내는 '의미적 소비'가 혼종돼 있다"면서 "스마트폰만 있으면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다 보니 트렌드를 소비하는 방식도 다채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네킹 챌린지(Mannequin Challenge)

미국에서 시작된 모바일 동영상 트렌드.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부동(不動)자세를 취하는 동안 카메라만 움직인다. 유튜브·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전 세계 유명 정치인·기업인·운동선수 등이 참여하며 인기를 끌었다. 동영상과 함께 해시태그 '#MannequinChallenge'가 붙는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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