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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빠! 왜 경찰 아저씨들이 뒤로 비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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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26일 오후 7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9길 사거리에 모여선 시민 수십명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곳은 같은날 오후 5시30분까지 행진이 허가됐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두 블록 차이다.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을 향해 많은 시민은 계속해서 물러나라고 외쳤다. 다소 격한 어조로 비키라는 이가 있었지만, 다행히 시민과 경찰 간에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넘실거리는 촛불과 밤공기가 한데 합쳐진 이곳에서 시민들 마음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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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트럭을 타고 사거리로 접근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측은 “오후 8시가 이제 3분 정도 남았다”며 “8시가 되면 다 같이 촛불을 끄고 근처 상점도 조명을 잠시만 꺼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퇴진행동은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근혜 정권 생명 연장의 꿈이 꺼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분 소등에 동참해달라”고 밝혔다.

8시가 되고 꺼진 촛불 사이로 한 상점이 소등에 동참하자 퇴진행동 측은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근처에 서 있던 시민들도 해당 상점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다만, 여전히 조명이 환한 것과 관련해 퇴진행동 측은 “간판에 불이 들어온 것”이라며 “간판까지 끌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다시 켜진 촛불 사이로 트럭에 오른 퇴진행동의 권영국 변호사는 제일 먼저 “경찰들은 퇴근하라”며 “박근혜를 하옥하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다. 앞선 25일 청운효자동사무소까지 행진을 허가한 법원 판결을 언급한 권 변호사는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청와대를 향한 행진은 국민의 명령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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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 사임을 말한 권 변호사는 박근혜 정권이 외부에서 무너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경찰에게 요구한다”며 “국민을 위한 경찰로 돌아오라”고 거듭 소리높였다. 현장에 몰린 시민들도 권 변호사를 따라 “돌아오라!”고 외쳤다.

국민발언대로 방향을 바꾼 퇴진행동은 크리스마스 캐롤 ‘펠리스나비다’를 개사한 또 다른 퇴진 요구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때 경찰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일반 성인이 한쪽 팔을 편 정도만큼 물러난 경찰은 국민발언대 개시 예고와 더불어 캐롤이 울리자 뒤에서부터 병력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에 띄게 자리를 비켰다. 어림잡아 30m 정도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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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환호했다. 여기저기서 “와!” “경찰이 물러난다”고 소리쳤다. 갑자기 뒤로 물러선 경찰과 이를 미는 시민들로 다소 소란이 일자 퇴진행동 측은 “경찰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뒤로 물러서고 있다”며 “질서 있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고 요청했다. 안전사고를 우려한 듯 물결 속에서 “천천히 갑시다” “다치니 밀지 마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왜 경찰 아저씨들이 뒤로 비키는 거예요?”

근처에 서 있던 초등학생 1~2학년쯤으로 추정되는 남자아이가 옆에 있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소년의 작은 손에는 ‘하야하그라’고 적힌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뭐라고 했을까?

“응,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경찰이 들어준 거야.”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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