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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윤 일병은 왜 국가유공자가 아니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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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하나와 진이의 갈등 속으로

(9) 여전히 안식하지 못하는 윤 일병


한겨레

김광진 전 국회의원(오른쪽)이 지난 21일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왼쪽)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서울 동작구 동작동) 충혼당에 안치된 윤 일병 앞에 서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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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깃든 현장이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갈등 공간이 전국에서 부스럼처럼 솟아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갈등이 오래 묵어 삶을 곪게 하는 사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씨가 갈등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를 경험한 두 전직 의원이 현장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며 현직 국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우리에게 국립묘지란 어떤 공간일까요? 법률에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 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를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곳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국립묘지를 찾곤 합니다. 시민으로서 뉴스를 통해 정치인의 국립묘지 방문을 바라볼 때는 너무 뻔한 형식 같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4년 전 국회의원이 되어 첫 참배를 갔을 때 이곳에 있는 선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무게감이 엄습해옴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국립묘지는 신성하고 예우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오랜만에 국립서울현충원(서울 동작구 동작동)을 찾아갔습니다. 가을의 향기가 묻어나는 묘지의 한쪽에서는 화려한 색의 옷을 입은 등산객들이 왁자지껄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현충원에 새로 안치되는 분을 추모하는 검은 상복의 행렬과 예포 소리가 파란 하늘의 적막을 깨웠습니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처럼 된다’는 슬픈 말이 있습니다. 지난 21일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윤 일병과 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현충원 중턱에 있는 ‘충혼당’으로 향했습니다. 약속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생각했는데 이미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와 매형 김진모씨가 먼저 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도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윤 일병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유골함 신분패찰은 그의 짧은 삶을 몇 개의 단어와 숫자로 요약했습니다.

육군 상병 윤승주. 1993. 06. 13. 서울 출생. 2014. 04. 07 경기 의정부 순직.

순직으로 일계급 특진을 하여 상병이 되었지만 그에게 일병과 상병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 사진 말이에요. 우리 승주가 자대배치받고 처음 찍은 사진이에요. 살면서 마음이 가장 졸아 있을 때 표정이라 마지막 모습도 웃는 얼굴이 아니네요.”

윤 일병 어머니의 첫마디였습니다. 좀 좋은 사진으로 바꾸지 그랬냐는 제 말에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그냥 부대에서 대대장과 같이 찍은 저 사진에서 대대장 잘라내고 승주 얼굴만 붙여 둔 거예요.”

그러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2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지만 아들 사진만 보면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흐른다고 했습니다.



2014년 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
죽음의 책임자들 처벌 없이 승진
매머드급 위원회 구성해 권고하고
병영혁신안 국회 제출해도 변화없어
윤 일병 죽음 순직 아니라는 보훈처

그의 억울한 죽음 직무관련 없다면
어떤 죽음이 군인 직무와 관계있나
유족 2년반 넘도록 국가 상대 재판
“끝까지 잘못을 묻고 또 물을 생각”
죽음 진실 찾는 것이 보훈의 시작




현충원 ‘만남의 집’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묻기도 전에 어머니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그냥 하는 표현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야. 자다가도 밥 먹다가도 문득문득 떠올라요. 가슴속에서 떠나지를 않아.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승주를 보러 왔는데 이제는 한달에 한번 정도 와요. 하지만 승주의 명예를 지키고 승주에게 나쁜 짓 했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나쁜 사람이야’라고 알리고 싶어서 계속 재판정에 갑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싸울 거예요.”

2014년 4월7일 국방부는 “육군 일병이 회식 중 음식물을 섭취하다가 기도가 폐쇄되어서 사망했다”는 발표를 합니다. 하지만 국방부 발표는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윤 일병은 부대에 전입해 온 3월초부터 거의 매일 폭행을 당했고, 고참들은 새벽 3시까지 기마자세로 세워둔 채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선임병들은 치약 한통을 통째로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거나 심지어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개처럼 기어서 핥아먹게 했습니다. 표현하기조차 힘든 가혹행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가 사망하던 날엔 심한 폭행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윤 일병을 포도당 수액주사로 회복시킨 뒤 다시 구타하는 천인공노할 일까지 벌였습니다.

그렇게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스물두살의 청년이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것이 윤승주 일병 죽음의 진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단죄받지 않았고 국가는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 일병 사건은 죽음 경위의 조작, 왜곡, 은폐, 부대 관리 부실, 군내 가혹행위, 군사재판의 불합리성, 국가 보훈체계의 모순까지 방산비리를 제외한 우리 군의 모든 부조리를 총망라하는 종합판이었습니다.

한겨레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돼 있는 윤승주 일병의 유골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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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힐 것은 죽음의 형식 아닌 이유

사건 이후 국방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국방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 구성을 선언하였습니다. 이유를 알 순 없으나 위원장이 국방장관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으로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민간 전문위원 72명과 자문위원 20명, 군 관계자 100여명의 매머드급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수차례 회의 끝에 22개의 개선 권고안을 만들어냈습니다. 국회 또한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해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방, 문화, 보건, 교육 분야 의원이 두루 참여하여 병영문화 혁신을 위한 최종 합의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합의안은 새누리당 간사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하여 법안으로 제출하였습니다. 물론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되었지요. 부끄럽지만 저도 세 곳의 위원회에 모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열심히 문제제기를 했지만 여전히 군의 부조리는 변화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면 윤 일병 가족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온 국민을 가슴 아프게 하고 세상을 떠난 윤 일병은 비록 국립현충원에 안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국가유공자’가 아닙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5항에 의하면 순직 군인은 ‘국가의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에 사망한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군과 보훈처는 윤 일병의 사망은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단지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윤 일병은 국가의 부름으로 정해진 기일에 입소하여 국가가 정한 부대에서 근무를 하다 부대관리의 문제로 지속적인 구타를 당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조차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사망한 그를 두고 군인의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전시의 사망을 제외하곤 도대체 어떤 죽음을 군인의 직무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2년 반이 넘도록 유족은 이 문제로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윤 일병의 매형은 사건 발생 당일 처남의 멍자국을 사진으로 남기고 지난 2년 반 동안 모든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단 하나의 단서라도 찾기 위해 복사가 허용되지 않는 법원 기록들을 열람하며 손으로 필사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승주를 저렇게 만든 직접적인 가해자들은 법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만 그들만이 승주를 죽인 게 아닙니다. 부대를 잘못 관리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부대지휘관, 거짓을 세상에 말한 초동수사 담당자, 의무기록지 처분을 누락시킨 군의관 등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가고 심지어 승진을 합니다. 군사법원에 고발하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법원에 항고를 하면 또 기각을 시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처벌이 안 된다면 괴롭히기라도 할 생각입니다. 끝까지 승주의 이름으로 그들의 잘못을 묻고 또 물을 생각입니다. 승주는 어찌 보면 운 좋게 죽음의 진실이 밝혀졌고 군 수사의 부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우리가 싸우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군의 개혁은 앞으로도 수십년간 어려울 거라 생각하니까요.”

실제 국방부에서 제출한 2013년 국정감사 자료를 확인해보면 대표적인 군의문사로 언급되는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이 발생한 1998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15년간 군인 사망자는 총 2270명으로 집계됩니다. 이 중 유족이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175건인데, 군 헌병대가 내린 1차 수사 결과가 달라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윤 일병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함께 고민해야 할 죽음들이 있습니다. 전시가 아닌 지금도 매년 군인 150여명이 군복을 입고 사망합니다. 그중 100여명은 군복무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유족은 군이 전하는 초동수사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스스로 목을 매거나 총을 쏘는 자해 사망입니다. 그 정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아들이 그러한 끔찍한 결정을 내리게 된 까닭을 부모는 알아야 합니다. 유족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의 형식이 아니라 죽음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죽음의 형식이 자해사망이라고 해서 순직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있어 보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현행 법률에는 군에서 제시한 조사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밝혀야 할 입증 책임은 유족에게 있습니다. 군부대를 방문할 권한도, 부대원을 자유롭게 만나 질문을 할 권한도 없는 유족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군을 상대로 진실을 위한 싸움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계 11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자해 사망을 한 군인이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하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도 못하고 유족연금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국가가 지급하는 보상금 500만원이 끝입니다. 그조차 사인이 자살이라는 문서에 부모가 동의를 해주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렵사리 근거를 찾아내고 민간 법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재조사를 요구해 군 헌병의 조사 결과와 다른 결론을 도출해내도 국방부는 다른 국가기관의 결정을 잘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시신 인수되지 못한 영현 169기

지금도 진실을 기다리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군으로부터 시신이 인수되지 않고 있는 영현의 수는 169기에 이릅니다. 아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며 길게는 30년이 넘도록 차디찬 냉동고에 시신을 안치하고 있는 부모도 있습니다. 군의문사 토론회에서 그 어머니가 했던 외침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저라고 내 새끼를 따뜻한 땅에 묻고 싶지 않겠습니까? 수십년간 그 차디찬 냉동고에서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누워 있는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제겐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아이가 죽고 부대에서는 종이 쪼가리 한 장 유품으로 건네주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저 몸 하나가 증거로 남아 있는데 좋은 세상이 오면 진실을 밝히고 땅에 묻어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참여정부 시기인 2006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되었으나 정권이 바뀐 2009년 활동기간이 종료되어 단 4년밖에 운영되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처리된 의문사는 390여건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제도 자체를 알지 못해 신청조차 하지 못한 수천건의 진정사건뿐 아니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가 해체된 2009년 이후 사건은 진정을 할 기관조차 존재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조속히 위원회를 상설기구로 만들어 언제든 재심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죽음의 진실을 찾아주는 것이 국가보훈의 시작이 돼야 합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기구입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발생하는 사건을 담당하거나 사건 발생 자체를 막기 위한 제도로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42조에 따른 군인권보호관(군옴부즈맨) 제도도 조속히 시행돼야 합니다. 군 내부의 감시 시스템만으로는 여전히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의 군인권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군의 문민통제라는 민주국가의 기본원칙에 따라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와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윤 일병과 같은 아픔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광진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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