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금요스토리]업무 중에도 폰 못 놓는 직장인…'스몸비 워커'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근무시간에도 게임·주식에 빠진 직장인 많아
LG화학은 '스마트폰 경계령' 내리기도
기업 경쟁력 갉아먹는 골칫거리
안전사고 취약·업무 효율성 하락으로 이어져 문제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독일의 한 완성차 업체 경영진은 협력사 점검차 LG화학의 국내 배터리 공장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공장 직원들이 근무 중에 스마트폰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모습이 너무나 생경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공장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경영진들은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좋은 품질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겠느냐"며 실망감을 내비쳤다. 이 일이 있은 후 LG화학 공장 전체에는 '스마트폰 경계령'이 떨어졌다. 일하는 중에는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시아경제

일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몸비 워커'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몸비 워커'는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를 뜻하는 '스몸비'에 직장인을 덧댄 말이다. 스마트폰에 온 정신이 뺏겨 일을 소홀히 하는 직장인들을 일컫는다.

스몸비 워커는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 사고에도 취약하다. 실제로 올 2월 90여명의 사상자를 낸 독일 바이에른주의 열차 충돌 사고는 신호제어 담당자가 스마트폰 게임에 정신이 팔린 것이 화근이 됐다. 2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철도기관사가 지인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승객 1명이 숨지는 끔찍한 열차 사고를 낸 경험이 있다. 기업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서 스마트폰 때문에 각종 안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밀착돼 있긴 하지만 적어도 산업 현장에서는 일정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공장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생산 현장 근무자들이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스몸비 워커는 생산현장 분위기가 그만큼 느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생산현장 분위기는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 약점으로 꼽히곤 한다. 현대자동차는 생산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통화를 하는 것에 대해 큰 제약이 없다. 반면 도요타 공장은 1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구조를 철저히 지키면서 근로 활동에 집중하는 편이다. 국내 기업의 노무 담당자는 "현대차 노조와 도요타 노조의 이같은 근무 태도가 종종 회자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조선 현장에서도 산재를 신청해놓고 다른데서 일하는 일명 '나이롱 환자'가 많아 골치를 썩었던 적이 있었다. 2년 전에는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가 나흘간 무단결근을 하고 가족 여행을 다녀와 해고처분을 받는 일이 있었다. 휴가서를 내지 않고 조장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 근무태도가 불량했지만 소송에서 승소해 해고는 무효처리가 됐다. 당시 법원은 "현대차의 느슨한 인력운용이나 노무관리 관행이 일탈행위를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고 판시했다.

근무 환경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사업장도 있다. 포스코 철강공장 내 조업부서(운전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업무 시작 전 휴대폰을 상자에 따로 모아둔다. 철강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봐야하는 일인 만큼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현대중공업은 이동 또는 작업 중에 스마트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하지 못 하도록 했다. 금연 사업장도 점점 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는 사업장 내 흡연을 금지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구체적인 규칙을 마련하는 등 문화 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근로자들의 안전사고와 제품 품질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만 노조 반발을 우려해 사실상 방치해두고 있는 것이다.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운운하면서 근무 형태는 여전히 저개발국에 머물러 있다"며 "한국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회라고는 하지만 게임, 주식에 빠져 일까지 소홀히 하는 문화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