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커버스토리] 3000여 후손 남긴 500살 ‘의자왕 은행나무’ 여전히 노란 청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볼거리 많은 가을 보령

중앙일보

오서산 능선에 활짝 핀 억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충남 보령의 가을은 세 가지 색깔이 뚜렷하다. 단풍의 붉은 색과 은행의 노란 색, 그리고 억새의 하얀 색이다. 전국의 가을여행 명소 중에서 단풍과 억새, 은행 세 색깔을 모두 지닌 고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보령은 여름 여행지로 알려진 곳이어서 더욱 신선하다.

노랑 - 청라 은행마을
중앙일보

보령 청라 은행마을의 500년 묵은 은행나무는 조선시대 고택과 어우러져 그윽한 풍경을 자아낸다. [사진 은행마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령시내에서 북동쪽 청양군 쪽으로 자동차로 20분쯤 가다 보면 청라면이 나온다. 청라면에 들어서면 세상이 갑자기 노래진다. 은행나무 세상이 펼쳐져서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청라면 북쪽 장현1리 은행마을이다. 가로수는 물론이고, 여염집 마당에도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큼지막한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높이가 20m에 달한다. 밑동 둘레는 3m쯤 된다. 김문한(51) 이장이 나무를 가리키며 “의자왕 은행나무”라고 소개했다. 수령이 500년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은행나무 이름이 백제 의자왕이라고?

“지금 우리 마을에는 은행나무가 3000그루가 넘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저 숫 은행나무 한 그루가 이렇게 많은 후손을 거느렸다고 해서 농담 삼아 ‘의자왕 은행나무’라고 부릅니다.”

의자왕 은행나무는 오백 살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이파리가 무성했다. 주변에 있는 백 년쯤 되는 은행나무보다 건강해 보였다. 의자왕 은행나무는 조선 후기에 지었다는 고택과 어울려 그윽한 풍광을 자아냈다.

중앙일보

청라 은행마을의 질 좋은 토종 은행 알. [사진 은행마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한때 은행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 은행알 시세가 좋았던 시절 은행나무 두 그루만 있어도 자식 한 명은 거뜬히 대학에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깐 은행알 1㎏ 가격이 당시 시세로 1만~1만2000원이었습니다. 은행나무 한 그루에서 깐 은행알이 60㎏ 정도 나왔지요. 당시 대학교 1학기 등록금이 70만원쯤 했으니까 은행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1년 등록금이 나왔던 셈이지요.”

지금은 깐 은행알 1㎏에 5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올해는 가뭄 피해도 컸다. 은행이 열리기 시작할 때인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너무 가물어 지난해의 20% 정도 밖에 은행이 달리지 않았다. 은행이 많이 열리지 못했어도 노란 이파리는 무성했다. 해마다 은행잎이 가장 노란 주말이면 하루 3000명씩 마을을 방문한다고 한다. 마을을 다 둘러보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 이용정보=청라 은행마을(은행마을.org)에서는 오는 29일과 30일 은행마을 단풍축제를 연다. 은행두부 만들기(1인 1만원), 은행빵 만들기(1인 6000원) 등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마을에는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을 활용한 오토캠핑장이 있다. 차량 한 대 3만원. 은행마을 축제추진위원회 070-7845-5060.

하양 - 오서산 억새산행
중앙일보

오서산 능선을 따라 하얗게 핀 억새꽃.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뭐꼬 이게. 억새로 억수로 유명하다고 카더니만 와 이래 적노. 별로 볼 게 없데이.”

지난 21일 경상도에서 왔다는 산악회원 서너 명이 오서산(791m)에 올라 내뱉은 불만이다. 산악회원 얘기가 틀린 건 아니다. 경상도에서 억새로 유명한 창녕 화왕산이나 합천 황매산, 영남알프스 등에 비하면 실망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경상도에서 억새는 군락을 이루며 피기 때문이다. 억새 군락지를 흔히 ‘억새밭’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오서산에서 억새는 군락을 이루지 않는다. 산 서쪽의 가파른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억새 명소는 일부러 나무를 베거나 불을 놓아 억새가 잘 자라도록 하지만, 오서산에서는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다. 오서산 서쪽 자락이 곧장 서해바다로 이어진다. 서쪽 능선은 바닷바람이 워낙 거세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 억새만 남았다. 희한하게도 오서산 동쪽 자락, 그러니까 홍성군 내포평야 방면에는 억새가 없다. 참나무 같은 활엽수만 빼곡하다. 오서산에서 억새가 차지한 지역은 서쪽 기슭 7부 능선에서 9부 능선 사이다. 억새 능선은 어림잡아 1㎞ 길이다. 폭은 20m쯤 된다. 억새가 피는 면적은 작지만 오서산의 경치는 여느 억새 명산 못지 않게 전망이 빼어나다.

오서산은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어서 예부터 등대 같은 역할을 했다. 억새 능선에 들어서면 서쪽으로 보령방조제와 천수만, 그리고 서해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바다로 해가 떨어진다. 오서산은 억새로도 유명하지만 낙조로 더 유명하다. 해가 질 무렵 억새는 황금색으로 갈아입는다. 억새가 하얗게 빛나는 시간은 해가 뜨고서 두어 시간 뒤,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이다.

● 이용정보=오서산 자락에 국립 오서산 자연휴양림(huyang.go.kr)이 있다. 오서산 억새 산행은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에서 월정사를 거쳐 정상까지 약 2㎞ 거리다. 쉬엄쉬엄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입장료 1000원, 주차료 3000원(중·소형). 자연휴양림에서 야영과 숙박도 가능하다. 야영데크(12㎡ 이하) 주말 사용료 7500원, 오토캠핑장 주말 사용료 1만원. 041-936-5465.

빨강 - 성주산 화장골
중앙일보

성주산 화장골은 예부터 화려한 단풍으로 유명했다. 다음주면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령의 지붕 역할을 하는 산이 성주산(680m)이다. 보령시청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어 보령시민이 산책 삼아 수시로 오른다. 그러나 성주산은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680m밖에 되지 않지만 골이 깊고 숲이 울창한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성주산 단풍 산행에 동행한 숲 해설가 권명혁(58)씨가 “옛날에는 나무가 워낙 울창해 낮에도 어두컴컴했다”고 떠올렸을 정도다. 예전에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컸다는 탄광도 성주산 안에 있었다. 보령탄좌는 지난 89년 문을 닫았지만 지금의 성주산 탐방로 대부분은 옛날 석탄 트럭이 달리던 운탄도로였다.

성주산은 충청도에서 손꼽히는 단풍 산이다. 정상 부근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지만 아랫자락은 활엽수가 빼곡하다. 단풍나무·고로쇠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때죽나무 등 온갖 종류의 활엽수가 가을이면 산허리 아래쪽을 울긋불긋 물들인다.

중앙일보

성주산 자연휴양림의 단풍잎.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주산에서도 화장골 단풍이 가장 유명하다. 화장(花藏)골은 ‘꽃을 숨겨놓았다’는 뜻이다. 신라 도선국사(827∼898)가 “성주산 일대에 모란꽃 모양의 명당 8곳이 있는데 명당 한 곳이 이 계곡에 있다”고 한 다음 ‘꽃을 숨겨놓은 계곡’이 됐다고 한다. 화장골 단풍은 이미 10월 중순부터 곱게 화장(化粧)을 시작했다. 다음주면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화장골 단풍은 성주산 자연휴양림 초입에 있는 매표소부터 계곡을 따라 약 2㎞ 이어진다. 단풍나무 대부분이 단(丹)단풍나무여서 붉은 색이 강하다. 옛날부터 수령 100년이 넘는 단풍나무가 많았던 계곡에 지난 93년 보령시가 자연휴양림을 조성하면서 단풍나무 1000여 그루를 더 심었다.

성주산 단풍 산행은 단풍놀이에 가깝다. 계곡 옆으로 탐방로가 잘 닦여 있다. 탄광이 있던 시절 트럭이 다녔던 도로여서 유모차를 밀고도 올라갈 수 있다.

● 이용정보=보령시가 성주산 자연휴양림(brcn.go.kr/forest.do)을 운영한다. 연중 개방.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400원. 주차료 중·소형 2000원. 휴양림 안에서 야영과 숙박도 가능하다. 야영장(16㎡) 사용료 2만원, 통나무집 4인용(약 30㎡) 사용료 7만원. 29일 하루 동안 성주산 단풍축제가 열린다. 041-934-7133.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령 주변 먹거리

폐광서 숙성 ‘광천 토굴젓’, 김장철 앞두고 인기 절정
중앙일보

폐광에서 숙성되는 광천 토굴새우젓.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계절 충남 보령에 가면 꼭 사야 할 것이 있다. 토굴 새우젓이다. 토굴 새우젓은 홍성군 광천읍 옹암마을이 주산지다. 행정구역은 보령시가 아니지만, 보령과 맞닿아 있다. 오서산 북쪽 자락 아래가 광천이고, 굴로 유명한 보령 천북면이 광천읍 옆 마을이다. 광천과 보령은 천수만 바다를 낀 같은 생활권인 셈이다.

토굴 새우젓의 역사는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옹암마을에 있던 금광 폐광에 새우젓을 넣어 숙성시킨 것이 토굴 새우젓의 시초가 됐다. 이후 광천 토굴젓이 유명해지면서 새우젓 가게마다 토굴을 팠고, 현재는 옹암마을에만 토굴이 40개가 넘는다. 토굴 안은 1년 내내 영상 14~15도가 유지돼 젓갈이 알맞게 숙성된다고 한다.

중앙일보

김장철을 앞둔 지금 광천 옹암마을은 추젓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추젓은 가을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을 말한다. 시세는 하품이 1㎏ 1만5000원, 상품은 5만원 정도다. 옹암마을 ‘돼지네 토굴새우젓’ 심윤애(58)씨는 “1㎏에 2만원 짜리 추젓이 김장용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고 소개했다.‘광천 독배 토굴 새우젓회원’으로 등록된 젓갈가게가 30여 곳 있는데, 새우젓 가격이 똑같다.

제철 해산물 중엔 대하·전어는 끝물이지만, 꽃게는 아직 먹을 만하다. 꽃게는 다음달까지 제철이다. 게딱지가 어른 손바닥만 게 3∼5마리가 들어가는 꽃게탕(사진)은 그때 그때 시세가 다르다. 꽃게 5마리가 들어가는 4인분 꽃게탕이 7만원이다. 2∼3인분 5만원. 대천항에 꽃게 식당 수십 곳이 늘어서 있다.


글=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이석희.임현동 기자 seri1997@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