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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화제의 사이다 일러스트 작가 | 양경수(양치기)의 세단어 ‘지금, 공감,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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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 상에 굉장히 ‘핫’한 콘텐츠가 있다. 직장인, 대학생, 아이 엄마 등 다양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웃음이 터지는 그림과 돌직구 발언이 화제가 된 사이다 일러스트, ‘그림왕 양치기, 약치기 그림’이다. 양치기 작가와의 인터뷰 조율 중 일화가 있다. ‘지금 막 퇴근을 했다’는 에디터의 지나가는 말에 “아, 축하 드립니다!”하고 대답하는 인터뷰이가 몇 명이나 될까(생각해보니 퇴근은 충분히 일상에서 축하 받을 만한 일이다!). 작가와의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했다. 작가는 ‘지금’이라는 단어를 거듭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금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지금 행복하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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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무엇을 하든 내가 행복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변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새로운 것과 공감되는 것을 그려보기로 했다. ‘새로운 것’은 불교를 현대화 시키는 작업이었다. 불교가 가진 종교적인 이미지가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나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다. ‘공감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어린 세대에게 공감을 받는 건 그 시대를 내가 겪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하게 공감이 되는 코드에서 웃음을 주게 된 거 같다.”

일러스트 작가, 양경수(양치기) 작가의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의 일러스트 아래 해시태그를 보면 ‘#양치기 #약치기 #사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이 지금 양경수란 사람을 이루고 있다. 불교미술 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도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삽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기 시작한 그를 만났다.

Q 자주 받는 질문이겠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양치기(梁治己)’라는 예명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양 씨니까 양으로 할 수 있는 단어들을 여러 가지 찾아봤다. 그러다가 양치기란 단어가 상당히 끌렸다. 거짓말쟁이긴 한데,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평소 이중적인 의미를 좋아하다 보니 ‘다스릴 치治, 자기 기己’란 한자를 넣어서 ‘나를 다스린다’는 뜻을 담았다. ‘자아성찰’처럼 거창한 의미보단(웃음), 그림으로 나를 다스리자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지 않은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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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도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이하 <야근수당>)의 삽화를 담당했다. 일본인 저자가 쓴 책이라 그런지, 표지 작가 역시 일본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 어떻게 <야근수당> 삽화를 맡게 되었는가.

-원서의 내용 자체가 일본의 노동 환경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고, 원서에 쓰인 삽화 또한 일본 특유의 느낌이 많이 묻어났던 거 같다. 출판사 담당자 분이 우리나라 문화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SNS에서 내 그림을 보고 연락을 했다. 그땐 직장인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렇게 <야근수당>의 삽화를 맡게 됐고, 그 이후로 큰 반응이 왔다고 볼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난 20년 동안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살아 왔다. 앞으로도 작가로서 내 생활 자체에 변화는 크게 없을 거 같다.

Q 그림체가 상당히 독특하다.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풍자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따로 영향을 받은 그림이 있는가.

-그렇진 않다. 단지 오랫동안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빠져 전공인 서양화나 그밖에 추상화, 비현실적 그림들, 유화 등도 많이 그려왔다. 이제는 그림 자체보다는,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는 소재를 생각하게 됐다. 약치기 그림의 경우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그림 자체는 평범해지고 힘을 많이 뺐다. 많은 시행착오와 분석 끝에 컷의 분할 대신 한 컷으로 그리고, 단색이나 깔끔한 선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공감 있는 대사들이 합쳐지니 ‘반전의 재미’가 생겼다. 가볍게 보면서 웃고 공감이 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림체인 거 같다.

Q 요즘 같은 스낵컬쳐 시대와 시의성이 맞은 셈인가?

-무엇이 ‘유행인가’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때다. 지금을 살아가며 그 흐름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내 경우엔 직장을 다닌 경험이 없다 보니 또래 직장인들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20~30대가 되고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직장 얘기가 나오다 보니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약치기 그림은 시대 풍자라기보다는 지금 보고 듣고 경험한 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리게 된 것이다. 내 가치관 역시 그렇다. 지금만 보면 내일도 지금이고, 모레도 결국은 그 때의 지금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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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양화를 전공했고, 불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팔상도>, <십대제자>) 등이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 전시되며 불교그림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직장인들을 SNS 작가로서 많이 알려졌다. 필모그래피가 화려한데, 그러한 경험 역시 지금을 그리다 보니 생긴 것인가?

-그렇다. 집안이 불교미술을 하고 있고, 가업을 물려받길 바랬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달랐다. 그래서 일찍 자립했다. 그땐 오로지 생존이었다. 벽화도 그려보고 인테리어 일 등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래도 가장 잘 하는 직업은 그림이었다. ‘예술가란 직업을 가져야지’라는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때도 밤에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나를 다스린다(治己)’는 말은 그때 내 모습일 것이다. 그때의 모든 경험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순간순간을 즐기는 타입이다. SNS는 몇십, 몇백 명 등 더 넓은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내가 그림을 올리면 곧바로 좋아요 등의 피드백이 오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가능하게 됐다. 이런 인터뷰도 SNS를 통해 가능해지지 않았는가(웃음). 그 자체가 소통이고, 내겐 또 다른 힐링(치유)이기도 하다.

Q 포털사이트에 본명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양치기’, ‘약치기’, ‘일하기싫어증’ 등이 함께 나온다. 혹시 ‘이런 검색어가 올라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는가?

-지금 이렇게 될 줄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지금 나오는 단어들만으로 충분하다. 다만, 작가 이름을 약치기로 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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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그림 속 에피소드 소재는 주로 카페 등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서 많이 얻는다는 기사를 봤다. 그럼에도 직장인들의 애로사항이나 디테일을 상당히 잘 잡어낸다.

-직장인 시리즈에 대해서 유독 그러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직장 생활을 디테일하게 그렸다기 보단, 다 아는 소재를 재미있게 표현을 한 것이다. 우주를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를 더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직장을 다녔으면 이렇게 표현을 못했을 것이다. 내 직업이 그렇다. 지금 직업군 일러스트를 진행 중인데 사람들과 인터뷰를 통해 세세한 걸 찾아내곤 한다. 직업별 고충이나 버릇 등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을 캐치하기도 한다.

Q ‘직장인 시리즈’를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이 ‘다양한 웃음’을 띤다. 현실에선 웃을 상황이 아니지만 웃음으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이러한 표현법에 있어서 스스로가 의도한 부분이 있는가.

-작품 속 인물들, 그림자, 흑과 백, 무늬 등 세세한 부분까지 의도한 부분이 많다. 작품 인물들의 ‘영혼 없는 표정’ 역시 마찬가지다. 단맛을 더욱 느끼기 위해 짠맛을 넣기도 하지 않는가. 오버된 이야기에 오버를 가미하면 재미가 없더라. 오버하지만 평온한 느낌을 주는 것, 그것이 맥락이다. 반전을 주는 거다. 예를 들어 은행 광고에 ‘우리 거래는 안전합니다’라는 문구에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늘 반전 같은 요소를 좋아하다 보니 그런 주변의 상황을 많이 살펴본다.

Q 일러스트 옆에 ‘어릴 땐 동자, 지금은 노동자’나 ‘빚이 많아 Busy’ 등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구를 구상하는 과정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습관이다. 억지 라임을 붙이거나 친구랑 말장난을 많이 하기도 했다. 실제로 힙합을 하기도 했고. 그때 길러온 습관이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리고 한자와 영어 단어를 많이 찾아서 조합을 해보곤 한다. 예를 들어 ‘자유(프리덤)는 덤인가요’ 처럼, 조금 억지스러우면 아재개그가, 잘 쓰면 펀치라인(힙합에서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중의적 표현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사-네이버 국어사전)이 된다. 많이 찾아보고 그 사이에 절충선을 찾는 게 작가로서 내 일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가장 큰 재산이다. 연습장에 많이 써보고 생각이 나는 틈틈이 메모를 하는 편이다.

Q 몇몇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의 꿈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금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어떤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역시 오늘과 같은 삶을 사는 것, 끊임없이 그림 작업할 수 있는 게 행복하다. 더불어 내 그림과 노력이 알려지고, 경제적 보답을 받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정당하게 노력을 인증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재능기부가 당연하단 인식이나 예술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이중적이다. 예술가 역시 직업이다. 예술가 스스로와 그를 즐기는 사람 모두, 직업으로서 예술을 인정하고 그만큼 대가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지금 내 실력을 통해 밥을 먹고 돈을 버는 것. 그것에 행복을 느낀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및 그림제공 양경수 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51호 (16.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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