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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최순실 수렴청정 "꿈에도 몰랐다"는 허수아비 참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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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이 실장 뒤에 자리한 김재원 정무수석도 곤혹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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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종 “평범한 주부로 알아”

이병기, 김기춘 前 실장도 같은 반응

朴, 대면 꺼리는 폐쇄적 스타일

극소수 참모만 최씨 역할 안 듯

“정말로 아무 것도 몰랐다.”

최순실(60)씨의 국정 개입 논란에 대해 청와대 전ㆍ현직 참모들이 한결 같이 내놓는 반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최씨 의혹이 사실일 리 없다고 믿었다”며 “우리가 최씨를 꽁꽁 숨겼다가 들킨 것이면 차라리 충격이 덜할 것”이라고 허탈해 했다.

박 대통령을 상대적으로 가까이에서 보좌한 대통령 비서실장들도 다르지 않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최씨를 제가 알았던 적도 없고, 평범한 시민이나 주부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20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작성 의혹을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부인했던 것이, 최씨의 존재를 실제로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병기ㆍ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최씨의 역할을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며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 주변에 있는지는 의심한 적이 있지만, 최씨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최씨의 흔적이 별로 남지 않은 것은, 대다수 참모들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하게 한 폐쇄적 내부 구조 탓이다. 박 대통령은 관저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주로 전화통화와 서면 보고서를 통해 국정을 논의했다. 관저로 측근ㆍ지인들을 초대해 비공식 오찬과 만찬을 하거나 참모들을 따로 불러 토론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동선과 의사 결정 과정 등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고, 굳이 알려고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며 “여성 대통령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더 강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청와대 안에 박 대통령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비서관)’ 등 극소수로 구성된 ‘이너서클’이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안보ㆍ경제 등 굵직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의 핵심참모인 비서실장들이 소외되는 일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대다수 청와대 인사들을 ‘겉도는 무능한 참모’로 만든 셈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박 대통령의 ‘권위’에 눌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측면도 있고, 일부 참모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영선ㆍ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은 2014년 11월 최씨의 ‘비서 역할’을 하는 모습이 공개됐고, 26일엔 최씨의 태블릿PC가 김한수 행정관 명의라는 보도가 나왔다. 몇몇 참모들이 최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둘러싼 소문이 나지 않은 것은, 보안 단속이 그 만큼 강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정권 초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지만, 2015년 이후엔 청와대 업무에 외부 인사가 손을 댄다고 의심할 만한 일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한 전직 참모는 “대통령 연설이나 인사, 정책 등이 대체로 대통령비서실 차원에서 논의한 대로 결정됐다”며 “박 대통령의 설명 대로, 집권 초에 최씨를 곧바로 잘라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정권 초 이후에도 최씨가 개입한 흔적이 나온다면, 청와대 참모들은 그야말로 ‘허수아비 참모’였음을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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